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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평점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곤충 멸종의 위기를 알리고 인류에게 경각심을 각인시키는 우리 시대의 환경 고전!
“곤충이 없으면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예전과 같은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겁니다.
모든 사람이 몇 달 만에 죽을 것이라는 예측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수백만 명이 굶주리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 서식스대학교 생물학 교수 데이브 굴슨 15p
2008년 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꿀벌 수백만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독일이 꿀벌의 죽음을 조사한 결과,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일종인 클로티아니딘의 사용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물질은 옥수수 뿌리에 기생하는 외잎벌레사촌 애벌레를 죽일 때 쓰인다고 한다. 지난 해,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른바 대한민국 전역에서 발생한 꿀벌 연쇄 실종 사건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보도에 따르면 이때 추정 피해 꿀벌의 수가 무려 100억 마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방송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벌이 사라질지 모를 세계를 상상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벌이라 말하는 나지만,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프랑스 전국양봉연맹 사무국장 앙리 클레망은 이렇게 경고한다. “만일 벌이 없어지면 과일, 채소, 곡물도 없어질 겁니다. 그런 식량이 없어지면 새와 포유동물로부터 시작해 온갖 동물이 사라질 겁니다. 벌은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초석이니까요.”
눈에 띄지 않기에 더 큰 재앙, 인섹타겟돈
곤충은 지난 4억 년 동안 다섯 번의 집단 멸종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생존했다. 인류는 곤충 없이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지만, 곤충이 급감하고 있다는 증거가 점점 쌓이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곤충의 전멸이 불러올 끔찍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7년 동안 동물 보호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곤충의 총 생물량이 75% 이상 감소했다. 독일에서는 1989년 이후 덫에 걸린 날아다니는 곤충의 연간 평균 무게가 76%나 줄었다. 곤충의 개체 수가 정점을 찍는 한여름에는 평균 무게가 82% 줄어들었다. 미국 전역에서 호박벌이 사라졌고, 일본과 덴마크, 이탈리아 할 것 없이 전 세계에서 곤충의 수가 줄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이에 곤충 멸종 사태를 가리켜 과학자들은 ‘인섹타겟돈(Insect+Armageddon)’이라 불렀다. 이제 그들은 이 재앙이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될지 모른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여러 생태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가 곤충의 멸종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곤충의 감소는 인류에게 필수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의 부재로 이어진다. 곤충 종을 살리는 것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에도 긴급한 일이다.’ / 39p
『인섹타겟돈』의 저자인 올리버 밀먼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곤충의 위기는 다른 동물들의 멸종 위기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곤충은 수가 워낙 많다 보니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다른 동식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게 문제가 된 셈이다. 사실 곤충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의 온갖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고 있다. 파리는 당근이나 후추, 양파, 망고 등 여러 과일나무가 자랄 때 중요한 수분 매개자 역할을 한다. 각다귀는 1,000억 달러어치에 달하는 초콜릿 산업에 기여한다. 검정 파리나 쉬 파리, 등에는 동물의 사체나 썩은 나뭇잎, 똥을 처리한다. 또 동애등에의 유충에서 추출한 기름은 자동차와 트럭에 주유하는 바이오 디젤로 활용된다. 이렇듯 곤충 없이는 식량, 의복 대부분, 다수의 기호 식품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태계에서 막대한 수의 곤충을 배제하면 인간이 포함된 생물망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중요한 건 곤충은 수가 많다고 해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곤충이 멸종해버리면 토양과 식물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생태계의 필수 기능이 약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곤충들을 대량으로 잡아먹는 동물도 있다. 예를 들면 푸른박새 어미는 새끼의 목구멍으로 애벌레를 100여 마리씩 밀어 넣어줘야 한다. 몇몇 곤충 종이 없어진다고 해서 새들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개체 수가 많은 다른 곤충을 잡아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곤충 수가 크게 줄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곤충의 개별적 특성에 감탄하지만, 곤충은 생태계에서 대개 대규모로 집단을 이뤄서 임무를 수행한다. 곤충 세계의 폭뿐 아니라 깊이도 중요한 것이다. / 41p
“딱정벌레는 숲에서 수많은 역할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런 일을 해내는 다른 곤충은 없습니다.” 해리스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베테랑 생물학자 니컬러스 로덴하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생태계에서 이런 곤충 대부분이 없어지면 정확하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로덴하우스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먹이그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삼림지대에서는 긴꼬리산누에나방을 보고 뒤뜰에서는 사슴벌레를 보며 자란 기억이 있다. “우리는 지금 대단히 훼손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우 슬픈 일이죠. 세상이 예전보다 덜 흥미롭고 덜 다채로워졌으니까요.” / 60p



책에서는 곤충이 줄어드는 원인을 다양하게 분석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서식지 파괴, 살충제 혼합물에 대한 만성적인 노출, 기후변화를 예외 없이 꼽는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배기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이지 못하면 21세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지구 온도가 3.2℃나 오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곤충 종 절반의 서식 범위가 현재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미 서식지의 파괴와 살충제의 사용으로 고통 받는 가운데서 살아갈 공간마저 이렇게 많이 줄어들면 곤충의 고통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물론 대멸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던 곤충은 종의 구성만 달라질 뿐 삶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인류세에 살아남기에 적합한 곤충만 살아남는다는 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납작하게 눌러 더 작고 단조로운 집단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인간이 가치 있게 여기는 곤충은 사라지는 대신, 없애버리려 애쓰는 곤충은 번성하리라는 점을 기억하라는 저자의 경고는 섬뜩하게 느껴진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곤충이 줄어들고 있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줄어들고 있거든요. 하지만 학자들이 ‘곤충이 70% 감소했다’라고 말했다가 알고 보니 20%밖에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모두가 ‘아, 그렇다면 별문제 없네’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됩니다. 저는 기후변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기온이 5℃ 올랐을 수도 있는데 2℃밖에 안 올랐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할까 봐 우려됩니다.” / 88p
인간의 공감 능력은 유용하지만 대중의 행동을 촉구하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특히 사람들이 그 문제가 자신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 많은 사람이 곤충에 혐오감이나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는 곤충을 죽이기 위해 만든 화약약품을 찬장에 쌓아둔다. 대중문화 역시 곤충을 살충제나 괴물과 연관시킨다. 언어조차 곤충에게 적대적이다. / 99p
“인간은 농사를 깔끔하게 지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곤충을 말살시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행위의 대가를 치를 겁니다.”
곤충은 우리가 주변 세상을 바꾼 방식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물리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화학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살충제를 일상적으로 쓰는 바람에 곤충에게 해로운 독기가 생겼다. / 166p
그동안 우리는 폭풍, 가뭄, 미세먼지 등 각종 기후 위기가 불러일으킨 경고 앞에서 미적지근하게 대응해왔다. 하물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곤충의 위기 앞에서는 과연 발 빠른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곤충에게 호의적인 서식지를 복구하고 서식지를 유독 물질이 거의 없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다 같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목표라 말한다. 우리가 소소하게나마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잔디를 깎는 횟수를 줄이거나 밤에 불을 너무 밝게 켜놓지 않는 것이다. 집게벌레, 딱정벌레, 거미 같은 곤충은 잔뜩 쌓여 있는 낙엽 아래를 돌아다니길 좋아한다고 하니, 마당에 쌓인 낙엽을 얼마나 자주 치울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또 무질서하고 관리되지 않은 초원과 잔뜩 뒤엉킨 덤불을 흉물스럽다고 생각한다면, 곤충이 서식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관대한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곤충의 위기가 지닌 역설적인 면은 재앙이 어떤 식으로 닥치든 그 여파를 감당해야 할 존재는 곤충이 아니라는 것이다. 곤충은 종의 구성만 달라질 뿐 삶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지구상에 남은 생명체 대부분은 기반이 흔들리면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따라서 ‘곤충 보호’라는 목표를 내세우는 대신 새, 식략 공급망, 인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 115p



이처럼 『인섹타겟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곤충 멸종의 위기를 알리고 인류에게 경각심을 각인시키는 우리 시대의 환경 고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순간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책 속의 수많은 경고는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마주해야 할 메시지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더듬어 헤아릴 줄 아는 시선이 너무나 간절한 시점이다. 이 책의 귀한 가르침이 꼭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