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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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 너머에는 이미 다정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생존과 직결되는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친화력에 있다!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고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되어 멸망한다는 뜻의 적자생존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때까지만 하더라도 적자는 자연선택 즉,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을 가리켰음에도 불구하고신체적·정신적으로 우월한 자가 더 잘 생존한다는 의미로 살아남아 우리의 집단의식에 깊이 뿌리내렸다문제는 이 잘못된 해석이 가장 강한 자가 최상의 먹이를 독차지하고강자가 약자를 지배할 수 있으며 가장 매력 있는 짝을 얻어 가장 많은 후손을 낳을 수 있다는 이른바 힘의 논리에 압도되어이를 위시하는 자들에게는 편리한 도구이자 각종 사회현상과 자유시장의 문제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적자생존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1965타임-라이프 북스의 의뢰를 받아 제작된 <인류 진화도역시 우리 종의 진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놓았다이 이미지는 진화가 유인원에서 현생 인류로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어 가장 우월하다는 인상을 준다나 역시 오랫동안 이 이미지로 교육받아왔고아직도 과거에 출간된 인류사와 관련된 교재에는 이 이미지가 교과서처럼 실려 있다하지만 최근에 출간된 다양한 인류학 서적을 읽어보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두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역시 이 이미지는 대중이 진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악영향을 줬으며 이 그림이야말로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우리는 꽤 오랫동안 생존과 진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적자생존만큼 완벽히 설명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믿어왔다이를 바로잡기 위해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덫에 걸린 진화설을 과감히 깨부수고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고 주장한다두 공동저자는(이하 저자자연을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친화력과 협력이 넘치는 세계로 바라본다가장 잘 적응한 개체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제거되는 게 아니라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사실 다정함이 인류의 진화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다심지어 다윈 역시 여러 저서를 통해 생존투생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오로지 주변 모두를 제압하고 최적자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쓴 적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 자신들의 가설을 증명하거나 경고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인간의 근원에는 다정함이 있음을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극복하는 도구 역시 다정함에 있음을 역설함으로써 가장 따뜻한 시선으로 생존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학책이기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 20p

 

 

 

  그렇다면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를 결정 짓게 되었을까사람 종은 약 600만 년에서 900만 년 전 보노보와 침팬지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져나온 이래 호모 속 안에서 다른 수십여 종을 만들어냈다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을 당시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 종과 공존했음이 밝혀졌다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상 가장 너른 영토를 분포했던 탐험가이자 발전된 석기를 능숙하게 사용한 최초의 인류였고빙하시대를 지배한 네안데르탈인은 섬세한 운동 신경을 지닌 기술 좋은 사냥꾼이었으며 불확실한 기후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종이었다.

 

 

 

  앞서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하면 이들 중 네안데르탈인이 진화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고 모두 멸종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저자는 초강력 인지능력즉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친화력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었다또한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게 하여 지식을 세대에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게 해주었다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언어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었으며친화력을 갖춘 사람들이 밀도 높게 결집했을 때 뛰어난 기술을 발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다른 똑똑한 인류가 번성하지 못할 때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특정한 형태의 협력에 출중했기 때문이다달리 말하면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 종과 달리 다정함과 친화력을 더 중요한 전략으로 활용했음을 의미한다혁신은 뛰어난 지적 능력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보람차거나 고통스럽다거나 매력적이라거나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아주 큰 역할을 수행하게 만든다는 것타인의 의도나 욕망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전략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러한 주장은 확실히 우리가 경쟁적 속성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우리는 적자생존의 세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게 아니라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고다정함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협력함으로써 종족의 생존과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따뜻한 그림을 보여준 이 책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마음이론 능력이 있어서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타인과 협력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문제에서 마음이론이 중대하게 작용한다.

(마음이론은 두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환희의 순간이요상대방의 말을 내가 끝맺어줄 때 느끼는 편안함아무 말 없이 손을 맞잡고 있는 순간의 평화다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 행복은 더 달콤한 것이 된다죽음으로 떠나보낸 누군가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리라고 믿는다면 슬픔은 더 견딜 만한 것이 된다. / 40p

 

 

사람은 지난 200만 년 동안 뇌 용적이 사실상 2배 증가했는데침팬지나 보노보 뇌 용적의 거의 3배에 달한다이로써 사람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대뇌피질의 신경세포 밀도가 높은 종이 되었다우리 종의 자제력이 유례없이 강력한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이 된다사람은 자제력이 강화되면서 마음이론계획 수립추론언어 등의 초강력 인지능력이 발달하게 되고 그에 이어서 우리 종 특유의 행동 현대성과 복합적인 문화 전통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 118p

 

 

지금으로부터 5만 년보다 조금 더 전 쯤에 우리 종이 사회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을 경험했다는 점 말이다.

사회연결망은 많은 이유로 중요하지만무엇보다 기술 발전에 필수 요소다더 큰 사회연결망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구 집단은 그저 기술의 진보가 멈추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집단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 / 120p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기가축화 가설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친화력을 높여나갈 수 있었는지까지 다양한 근거를 통해 설명하는 부분이다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다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치아 크기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호르몬과 번식주기신경계에 이르기까지 가축화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가 일어난다하나의 예로 넬슨은 플라이스토세 중기 사람들의 검지 대 약지 비율이 현대인보다 낮은즉 남성화’ 상태로 나타났으므로 태어나기 전 남성호르몬 수치가 더 높았을 가능성을 언급한다넬슨은 또한 네안데르탈인 4명의 검지 대 약지 비율이 가장 남성적이었음을 보여준다이는 가장 여성적인 검지 대 약지 비율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 종의 특성이 다른 사람 종들과 같지 않았음을 시사하며 여성적인 검지 대 약지 비율은 다소 늦게, ‘여성화된 얼굴이 나타나던 시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났음을 보여준다이러한 일련의 조건이 일정해지면 자기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키는데이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고 사실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제스처와 목소리에 반응할 수 있는 동물은 사냥 동반자이자 안내자로 대단히 유용했을 뿐 아니라 온기를 제공하고 늘 함께하는 반려동물로서도 소중했을 것이다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천막 밖에 있던 그들을 불 곁에 오도록 허용했을 것이다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다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이 친화력 좋은 늑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현재 그들의 후예는 개체수가 수천만에 달하며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우리의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으니얼마 남지 않은 야생 늑대 개체군은 슬프게도 끊임없이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 80p

 

 

벨라예프의 연구는 개체의 밀도가 높아지면 개체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대규모의 자기가축화라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보았다이 사건은 선택압의 강도개체 규모그리고 야생 개체군과 가축화 개체군의 유전자격리에 따라서 아주 빠르게 일어날 수도 있다두려움을 매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존하는 데 사람을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동물이라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번성하게 될 것이다. / 84p

 

 

 

  하지만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친화력을 지닌 동시에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닌 종임을 설명해준다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이 있어서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긴다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이를 테면 동물학대인종차별독재자사회지배 성향과 권위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공통적 특성은 자신들의 집단 동질성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외부자들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관용을 보인다는 점이다우수한 유전자를 개량할 목적으로 우생학을 옹호하는 현상도 이에서 비롯된다이처럼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은 자신과 같은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부산물이다하지만 그에 대한 해법 역시 다정함과 친화력에서 찾아야 한다무엇보다 우리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그러한 인식 안에서 보다 다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당부할 것은 이 책에서는 자기가축화 가설을 인류 진화의 근원으로 바라보고 있지만이 역시 고정불변의 창조론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적자생존의 법칙이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었던 것은 그만큼 우리를 정의하는 방법과 방향이 선형적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종이 살아남고 진화하기 위해 선택한 가장 따뜻한 방법을서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우리의 경향을 증명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가설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과학책이지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신보다 연민이 더 깊어지게 되는 책이다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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