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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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인 내면아이와 화해하지 못하고 자라난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을 대변한 이야기!

이 소설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은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를!

 

 

 

 

 ‘'엄마는 정말이지 내 마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스무 살새로운 시작과 아름다운 미래라는 꿈을 품기에 마땅한그래서 지난한 과거와는 쿨하게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꿈에 젖어들기 딱 좋을 나이주인공 은호는 스무 살이 되면 자신의 인생이 조금은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엄마라는 중력은 너무도 강력해서 오늘도 꼼짝없이 휘청이고 만다교내 상담사에게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라고 한건 엄마가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단 불편한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은호에게 스무 살 전까지는 연애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그랬다가는 인생 조지는 거라고 말했다심지어 엄마는 은호와 동생인 현호를 기르는 내내 아빠 욕을 했다. “네 아빠가 겁탈해서 네가 들어섰다.” 네 아빠처럼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인간은 없을 거라는발정 난 개도 그렇게는 안 돌아다닐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아이러니한 건 그 모든 말을 견디면 견딜수록 그 사실을 제공한 아빠보다 몰라도 될 사실을 굳이 자신에게 말하는 엄마가 더 미웠다는 거다그렇다고 해서 네 엄마처럼 애교 없고 독한 여자랑 만나서 다 망했다.”고 말하는 아빠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은 잔뜩 있었지만 가장의 책임감은 없었던 아빠로 인해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야 했던 엄마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오히려 엄마가 또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인해 엄마가 떠나지 않도록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기로 한 건 그조차도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술 취해서 휘청거리는 것들이 제일 한심해.”

엄마의 잣대는 너무 엄격했고 그만큼 비난은 날카롭고 견고했다그런 비난을 들으면 나 역시 그 기준에 어긋나는 건 아닐지 긴장됐다그리고 말 끝에 꼭 아빠 얘기가 나왔다엄마 인생의 모든 비극의 근원에는 아빠가 있었다술 취한 손님이 화장실 바닥에 토해 놓은 걸 치워야 하는 자신의 신세도서울에 널린 수없이 많은 집 중에 자기 집 한 채 없는 형편도식당 불판에 손가락을 덴 사고까지 모두, “그 인간만 안 만났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 63p

 

 

은호야아빠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거든그런데 애교 없고 독한 여자를 만나서 다 망했어다 망해 버렸어네 엄마 때문에.”

그놈의 네 엄마네 아빠대체 내게 왜들 이럴까아빠는 이런 자기가 딱하지 않냐고도 물었다아빠는 자기를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믿는 것 같았다아내도자식들도 아닌 자기 자신을 제일 가여워하는 사람그게 내 아빠였다. / 69p

 

 

 



 

 

 

 

  소설 이 와중에 스무 살은 스무 살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한 은호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이다은호는 우리 사회가 흔히 ‘K장녀로 일컫는가족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과도한 책임을 떠안고 자라난 청년들의 자화상이다뭘 좋아하고뭘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볼 여유 없이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딸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제자리걸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때론 후퇴하기도 한다는 것을 엄마의 지난한 삶을 보고 일찍이 철이 든 딸엄마를 두고 끊임없이 밖으로 나도는 아빠를 보며 연애를 할 때마다 늘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딸무턱대고 찾아간 교내 상담실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질문을 들은 순간예상치 못한 훅을 맞은 것처럼 눈물을 쏟아낸 은호는 자신의 삶에서 결여된 것들 혹은 막막한 현실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강의 중간에 나온 게 벌써 후회됐다나만큼 진로 컨설팅이 필요한 학생이 어디 있다고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달리다가 눈가리개를 떼고 나니 여기가 어디지하며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는 것이 지금 내 상태니 말이다엄밀히 말하면 지금 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아가도 되는지에 있었다어쩌면 뒤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 21p

 

 

모르겠다세상이 바쁘게 몰아붙이는 대로익숙하고 무난한 방식으로 살았을 때 이르게 될 뻔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어쩌다 생겨났는지는쓸데없이 책만 많이 읽은 나는 회사에 기생하는 일이 아닌 더 의미 있는 일이자본가가 떠구는 콩고물을 받아먹는 삶이 아닌 더 의미 있는 삶이말하자면 일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다는 환상까지 품고 있었다.

문제는그 욕구와 환상을 실현할 과감함과 결단력이 내게 없다는 거였다내 속의 반항심과 소심함은 너무나 사이좋게 손잡고 있었다. / 23p

 

 

 

  설상가상 이혼을 하겠다며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은호의 좁은 방을 비집고 들어온다덕분에 고단한 엄마의 한숨과 날선 감정들은 고스란히 은호에게 전이되고감정의 웅덩이가 커지고 깊어지다 못해 드디어 폭발하게 된다짧은 가출과 자살인줄 알았던 소동이 몇 차례 지나고 난 뒤은호는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경계설정을 명확히 하지 않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또 엄마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느라 보지 못했던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칼처럼 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엄마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어쩌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 우리 곁에 있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저렇게 살면 안 된다며 주변 사람들을 험담했던 건 때론 편한 길로 가고 싶었을 엄마가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아울러 은호는 자기 자신의 문제는 외부에서 찾을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통해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내가 누군지어떻게 살고 싶은지진짜 살고 있긴 한 건지외부의 답이 아닌 내 안의 답을 찾으려고 지금도 계속 고민하니까누군가는 답도 없는 고민을 한다고 한심하게 보겠지만 답이 있는 고민만 하는 건 인간적이지 않잖아인간은 고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고민하는 순간이야말로 살아 있는 순간이고그러다 보면 믿어 왔던 통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낯설고 불편한 것 쪽으로 기꺼이 건너갈 수 있게 되는 거지.” / 54p

 

 

나를 붙잡으려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날 원하면 저럴까 싶었다나는 그런 식으로 사랑을 확인했던 것이다내가 얼마나 상대를 괴롭혀 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만나는 동안 헤어지자는 말로 상대를 긴장시키며 내 곁에 매어 두다가 결국 먼저 떠나곤 했다는 것을사랑받고 싶어 했으면서도 결국 상대의 마음을 불신했다는 것을.

내가 나를 괜찮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지 못하면 그 인정을 외부에서만 찾게 되죠그 과정에서 사실 가장 괴로운 건 자기 자신이고요.” / 110p

 

 

 




 

 

 

 

  은호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때 어른들의 인정과 칭찬이 전부였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먹먹했다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기대를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나의 생각은 거의 신념에 가까웠기에 늘 괜찮은 척아프지 않은 척내 안의 불안을 끊임없이 단속했다때문에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데 보다 열심이었다안타까운 것은 나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이와 유사한 관념과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신체적으로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상처투성이인 내면아이와 화해하지 못하고 자라난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을 대변한 이 이야기가 제 1회 성장소설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건 어쩌면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그만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볼 틈도 없이 성장해버린 청년들의 그늘과 갈증을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한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또한 다정한 위로와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를 균형감 있게 전하는 작가의 필력 또한 안정적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은호들에게 가 닿아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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