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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11_11.jpg)
상처투성이인 내면아이와 화해하지 못하고 자라난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을 대변한 이야기!
이 소설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은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를!
‘'엄마는 정말이지 내 마음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스무 살. 새로운 시작과 아름다운 미래라는 꿈을 품기에 마땅한, 그래서 지난한 과거와는 쿨하게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꿈에 젖어들기 딱 좋을 나이. 주인공 은호는 스무 살이 되면 자신의 인생이 조금은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엄마라는 중력은 너무도 강력해서 오늘도 꼼짝없이 휘청이고 만다. 교내 상담사에게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라고 한건 엄마가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단 불편한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은호에게 스무 살 전까지는 연애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랬다가는 인생 조지는 거라고 말했다. 심지어 엄마는 은호와 동생인 현호를 기르는 내내 아빠 욕을 했다. “네 아빠가 겁탈해서 네가 들어섰다.” 네 아빠처럼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인간은 없을 거라는, 발정 난 개도 그렇게는 안 돌아다닐 거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 모든 말을 견디면 견딜수록 그 사실을 제공한 아빠보다 몰라도 될 사실을 굳이 자신에게 말하는 엄마가 더 미웠다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네 엄마처럼 애교 없고 독한 여자랑 만나서 다 망했다.”고 말하는 아빠,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은 잔뜩 있었지만 가장의 책임감은 없었던 아빠로 인해 억척스럽게 살림을 꾸려야 했던 엄마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또 자신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인해 엄마가 떠나지 않도록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기로 한 건 그조차도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술 취해서 휘청거리는 것들이 제일 한심해.”
엄마의 잣대는 너무 엄격했고 그만큼 비난은 날카롭고 견고했다. 그런 비난을 들으면 나 역시 그 기준에 어긋나는 건 아닐지 긴장됐다. 그리고 말 끝에 꼭 아빠 얘기가 나왔다. 엄마 인생의 모든 비극의 근원에는 아빠가 있었다. 술 취한 손님이 화장실 바닥에 토해 놓은 걸 치워야 하는 자신의 신세도, 서울에 널린 수없이 많은 집 중에 자기 집 한 채 없는 형편도, 식당 불판에 손가락을 덴 사고까지 모두, “그 인간만 안 만났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 63p
“은호야, 아빠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거든. 그런데 애교 없고 독한 여자를 만나서 다 망했어. 다 망해 버렸어. 네 엄마 때문에.”
그놈의 네 엄마, 네 아빠. 대체 내게 왜들 이럴까. 아빠는 이런 자기가 딱하지 않냐고도 물었다. 아빠는 자기를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믿는 것 같았다. 아내도, 자식들도 아닌 자기 자신을 제일 가여워하는 사람. 그게 내 아빠였다. / 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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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와중에 스무 살』은 스무 살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한 은호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이다. 은호는 우리 사회가 흔히 ‘K장녀’로 일컫는, 가족을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과도한 책임을 떠안고 자라난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볼 여유 없이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엄마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딸.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제자리걸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때론 후퇴하기도 한다는 것을 엄마의 지난한 삶을 보고 일찍이 철이 든 딸. 엄마를 두고 끊임없이 밖으로 나도는 아빠를 보며 연애를 할 때마다 늘 상대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딸. 무턱대고 찾아간 교내 상담실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질문을 들은 순간, 예상치 못한 훅을 맞은 것처럼 눈물을 쏟아낸 은호는 자신의 삶에서 결여된 것들 혹은 막막한 현실이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강의 중간에 나온 게 벌써 후회됐다. 나만큼 진로 컨설팅이 필요한 학생이 어디 있다고,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달리다가 눈가리개를 떼고 나니 여기가 어디지. 하며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는 것이 지금 내 상태니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나아가도 되는지에 있었다. 어쩌면 뒤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 21p
모르겠다. 세상이 바쁘게 몰아붙이는 대로, 익숙하고 무난한 방식으로 살았을 때 이르게 될 뻔한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어쩌다 생겨났는지는, 쓸데없이 책만 많이 읽은 나는 회사에 기생하는 일이 아닌 더 의미 있는 일이, 자본가가 떠구는 콩고물을 받아먹는 삶이 아닌 더 의미 있는 삶이, 말하자면 일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다는 환상까지 품고 있었다.
문제는, 그 욕구와 환상을 실현할 과감함과 결단력이 내게 없다는 거였다. 내 속의 반항심과 소심함은 너무나 사이좋게 손잡고 있었다. / 23p
설상가상 이혼을 하겠다며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은호의 좁은 방을 비집고 들어온다. 덕분에 고단한 엄마의 한숨과 날선 감정들은 고스란히 은호에게 전이되고, 감정의 웅덩이가 커지고 깊어지다 못해 드디어 폭발하게 된다. 짧은 가출과 자살인줄 알았던 소동이 몇 차례 지나고 난 뒤, 은호는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경계설정을 명확히 하지 않은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 또 엄마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느라 보지 못했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칼처럼 품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엄마의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 우리 곁에 있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저렇게 살면 안 된다며 주변 사람들을 험담했던 건 때론 편한 길로 가고 싶었을 엄마가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은호는 자기 자신의 문제는 외부에서 찾을 게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통해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내가 누군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짜 살고 있긴 한 건지, 외부의 답이 아닌 내 안의 답을 찾으려고 지금도 계속 고민하니까. 누군가는 답도 없는 고민을 한다고 한심하게 보겠지만 답이 있는 고민만 하는 건 인간적이지 않잖아? 인간은 고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고민하는 순간이야말로 살아 있는 순간이고, 그러다 보면 믿어 왔던 통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낯설고 불편한 것 쪽으로 기꺼이 건너갈 수 있게 되는 거지.” / 54p
나를 붙잡으려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날 원하면 저럴까 싶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랑을 확인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상대를 괴롭혀 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만나는 동안 헤어지자는 말로 상대를 긴장시키며 내 곁에 매어 두다가 결국 먼저 떠나곤 했다는 것을. 사랑받고 싶어 했으면서도 결국 상대의 마음을 불신했다는 것을.
“내가 나를 괜찮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지 못하면 그 인정을 외부에서만 찾게 되죠. 그 과정에서 사실 가장 괴로운 건 자기 자신이고요.” /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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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때 어른들의 인정과 칭찬이 전부였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먹먹했다. 부모와 주변 어른들의 기대를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나의 생각은 거의 신념에 가까웠기에 늘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내 안의 불안을 끊임없이 단속했다. 때문에 나는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데 보다 열심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나와 더불어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이와 유사한 관념과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신체적으로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상처투성이인 내면아이와 화해하지 못하고 자라난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을 대변한 이 이야기가 제 1회 성장소설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건 어쩌면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볼 틈도 없이 성장해버린 청년들의 그늘과 갈증을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한 점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다정한 위로와 새로운 가능성의 기회를 균형감 있게 전하는 작가의 필력 또한 안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우리 사회의 많은 은호들에게 가 닿아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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