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특별한 언어, 수학!
무한히 성장해가는 수학의 매력을 전해줄 아주 간편한 교양서!
<노랑 빨강 파랑>, <구성 9>, <검은 틀> 등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점과 선, 면 등 기하학적인 형상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른바 구체 예술의 시대를 연 칸딘스키 이후 추상 개념과 기하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미술가가 점점 많아졌다고 한다. 반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는 유디트가 마을을 침략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술에 취하게 만든 다음 그의 목을 베는 끔찍하면서도 영웅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유디트가 목을 베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의 궤적이다. 동명인 카라바조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젠틸레스키가 이 부분에서 얼마나 혁신적이고 사실적인 관점을 표현했는지 알 수 있다.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의 저자 김민형 교수는 이것이 갈릴레오의 최신 탄도학 이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몇몇 역사학자의 주장에 동조하며, 수학과 미술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창조력을 끊임없이 공유해왔음을 역설한다.
플라톤의 걸작 《국가》에 따르면,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유아기부터 18세까지 수학을 공부하고 2년간 군에서 복무한 뒤 30세까지 또 수학을 배우도록 권했다고 한다. 그는 수학의 모든 분야를 이해한 다음 철학 공부를 시작해야 사회와 정치 활동을 제대로 할 기반을 갖출 수 있다고 여겼다. 다시 말해 수학은 질서와 패턴,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세계의 형성은 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수학 없이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를 모르면 정치를 논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만큼 수학은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사다리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리고 수학은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수학을 대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피타고라스의 정리, 근의 공식, 미적분… 정규 교육 과정 속에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각종 공식들 앞에서 수학은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계속 안고 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필수 사칙연산 정도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하등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논리 앞에서 수학의 의미는 곧잘 무색해지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 구구단은 왜 알아야 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외워야 하니까, 시험을 잘 치려면 공부해야 해’ 따위의 말로 수학을 배우는 목적을 설명해줄 수 없는 노릇이라 내 안에서 좀 더 수학이라는 언어가 자연스러워질 수는 없는지 늘 고민한다. 이따금 내가 수학 교양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수학이 없으면 어떤 곤란한 일이 생길까?
피타고라스 정리는 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수식일까?
르네상스 회화에 숨겨진 탄도학 이론은 무엇일까?
플라톤은 왜 서른 살에도 수학을 공부하라고 했을까?
망명한 소련 수학자들은 어떻게 수학계를 뒤흔들었을까?
세상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지금 필요한 공부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은 김영사에서 기획된 ‘굿모닝 굿나잇’ 시리즈 중의 하나다. 세상을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표현해주는 수학 언어의 매력을 소개하고, 피타고라스 정리나 삼각함수처럼 잘 알려진 수식을 활용해 여러 가지 수학 문제들을 독자들과 풀어보고자 한다. 또한 난제를 풀기 위해 평생을 바친 수학자들의 사연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수학 경험의 본질임을 보여줌으로써, 무한히 성장해가는 수학 문화의 매력과 수학 공부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마련된 수학 교양서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하는 수학 경험은 어두운 대저택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저택의 첫 번째 방에 들어가면 완전히 깜깜하다. 가구에 부딪히고 비틀거리다 보면 차츰 방의 물건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6개월 정도 지나야 전등 스위치를 발견한다. 스위치르 ㄹ켜면 갑자기 밝아지면서 모든 것이 보인다. 이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되고 그다음 어두운 방으로 넘어가 또다시 비틀거리며 6개월쯤 지낸다. - 앤드루 와일스 / 14p
우리에게 경외감을 안겨주면서 동시에 좌절감을 맛보게 하기도 하는 수식(공식). 만약 수식이 없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에게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수식일 뿐이지만, 저자는 수식이야말로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언어와 같다고 말한다.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에 따르면 우주 그 자체가 거대한 수학 구조와 같아서, 수식을 편하게 다루는 능력은 그 능력을 소유한 자에게 엄청난 양의 세계 정보를 선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간결하고도 아름다우며 위대한 언어로서 수식의 중요성과 수학자들이 수식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중학교 수학을 배운 독자라면 아마 수식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위 문장을 더 간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실상 수식으로 도달할 때까지 표현을 계속 줄일 수 있다. 요점은 정확한 표현의 간결성이다. 어떤 사실을 수식으로 표현하면 주장 자체의 간결성을 이용해 논리를 효율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수식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때 아주 효율적이다.
(…) 수식을 완전히 배제하면 세상의 본질을 정확히 묘사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 21p
어쩌면 중요한 교훈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수식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어서 다른 여러 주장처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독자들이 헌팅턴 같은 정치학자의 동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수식은 단지 특정 주장을 표현하는 문장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할 가치가 있다. / 49p
바로 이것이 수학의 위력이다. 어떻게 한 지역의 지형 측정과 머릿속에 있는 이론만 이용해 지구 반지름 같은 어마어마한 양을 계산할 수 있는가? 발전을 거듭해온 결과를 학교에서 쉽게 배우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간단한 계산이지만 당시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알 비루니는 지구 반지름을 6,340km로 추정했다. 실제 값이 6,371km이므로 그 옛날에 오차 1% 이내로 측정한 셈이다. / 77p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깊이 있는 내용을 습득하려면 여러 차례 실수와 교정 과정을 거치며 점차 이해 수준을 높여야 한다. 실수가 두려워 쉽게 들어오는 내용만 잘하려고 하면 학문 성숙도를 높일 가능성은 작다.
이러한 습관은 결국 대학교 교육에서 심각하게 논의하는 ‘실패에 따른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미국 작가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유명 대학 교육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을 실패에 따른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인재 양성에서 찾는다. 그는 높은 시험 성적, 각종 상 수여에 몰두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이는 위험을 격렬히 혐오하며 안전한 ‘스펙 쌓기’ 인생으로 몰려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하버드대학교나 예일대학교 같은 유명 대학일수록 좀비 같은 인재가 가득하다고 그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 114p


『수학의 기쁨 혹은 가능성』이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근현대 수학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여느 수학 교양서들이 대체로 19세기의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베른하르트 리만과 같은 수학자를 소개하는 데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반면, 이 책에는 비교적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수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 ‘타원형 미분 작용소 지표 정리’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젊은 수학자들의 최고 영예인 국제수학연맹의 필즈상을 수상한 마이클 아티야, 현대 확률론을 정립한 안드레이 콜모고로프, 20세기 후반 추상기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즈라일 겔판트와 같이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 수학자들의 공헌, 앙드레 베유(시몬 베유의 오빠)와 샤를 피소 등이 모여 만든 프랑스의 엘리트 수학자 그룹, 일본 정수론의 대가 가토 가즈야 등이 그러하다. 덕분에 지역 문화와 수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왔는지, 수학이 세계문화에 어떻게 기여해왔는지 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추상적인 게임처럼 여겨지던 이론이 순식간에 가장 많이 응용하는 이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가령 방정식을 풀기 위해 만든 복소수 이론은 양자역학의 근간이다. 또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추상적인 ‘내면 기하’ 탐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져 핵 발전소와 인공위성 작동에 필수다.
지금 연구 중인 수학 가운데 지속적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깊이 있는 학문은 결국 유용해진다는 절묘한 원리는 언제나 역사의 기이한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 111p
한데 20세기 들어 인류는 인간의 지식을 하나로 모으기는커녕 수학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도 항상 실패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모든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과사전을 쓰기 시작해 한창 저술을 진행하다 보면 몇 년 만에 학문 판도가 너무 많이 바뀌는 현상을 목격한다.
‘잘 정립한 부분만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학문이 발전하면 모든 영역이 그 발전의 영향을 받아 정립한 것으로 여겼던 수학도 알아보기 힘들게 바뀌기 때문에 ‘정립했다’는 개념 자체가 모호해지고 만다. / 160p


저자가 이야기하듯, 수학 연구의 현주소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수학이 여전히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학은 더 이상 ‘고독한 천재가 하는 학문’이 아니며, ‘수학적 세상’이란 표현은 이론과학 영역을 넘어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일상생활에서도 부단히 쓰이고 있다. 때문에 이런 수학 교양서들이 보다 다양하게 발굴되고 읽힐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수학을 시험이 아닌, 삶의 기쁨과 가능성이자 세상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언어로 다가갈 수 있기를 더더욱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