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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달이 말해준 것들
지월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8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902_11.jpg)
내 마음에 보드라운 언어 하나,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문장 하나가 필요할 때!
고단한 일과 속에서 작은 여백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최근, 방학과 감기로 어린이집 등원 일수가 적었던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양말을 신기겠다는 엄마와 신지 않겠다는 아이의 실랑이에 어느 새 한껏 늘어나 다시 신을 수 없을 지경이 된 양말을 보자, 나는 그만 화가 나서 양말을 바닥에 내던지고 말았다. 여차저차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허물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바닥에 널브러진 양말이 눈에 밟혔다. 흐물흐물 늘어날 대로 늘어나버린 양말 한 짝, 그게 꼭 그날의 내 마음 같았다. 분명 상처는 내가 준 것 같은데 되레 내가 상처받은 기분으로 한없이 울적해지는 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건 내가 아직 덜 여물어서인가보다. 아무래도 이럴 때는 내 마음에 보드라운 언어 하나,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문장 하나가 필요하다. 『어느 날 달이 말해준 것들』은 바로 그 날 아침, 달빛처럼 은은하게 나에게 스며들 듯 찾아온 책이다.
변함없이 차오르고 기우는 더 달처럼
분위기상,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더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사람도 아닌데 상대방의 말에 말을 맞추느라 잘 생각도 나지 않는 저편의 기억을 끄집어와 “맞아요, 나도 그런 적 있어.” 하고 애써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게 빌미가 되어 “너 그런 적 있다 했잖아. 아휴, 얘에 비하면 나는 뭐 별 일도 아닌 거지.”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위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과장되게 말했던가. 나는 그저 공감하고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건데, 그저 내가 당신의 위안거리가 되었던 건가. 이해받겠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구차한 변명처럼 보이거나 또 다른 오해를 낳겠지.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 나의 말과 마음을 아껴야 할지 고민이 든다.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인류애가 샘솟다가도 사람의 모순에 절망에 빠진다’고. 어쩌면 ‘말을 아끼는 편이 마음을 지키는 길’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은, 이제는 내가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연연하기보다 침묵하면 적어도 해는 입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움 받지 않으려고 애쓰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느라 아등바등 하느니 적당히, 무던히 관계를 유지하며 오히려 그 힘을 나를 위한 에너지에 쓰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관계의 모순이 때로 나의 맷집을 키우기도 하지만, 그렇게 몸집만 부풀리고 있다 한들 그 안에 곪은 상처들은 나조차도 온전히 돌볼 자신이 없다. 하여, 부러 나를 괴롭히지 않기. 요즘 내가 나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다.
‘수고했다.’, ‘축하한다.’, ‘응원한다.’, ‘자랑스럽다.’ 어떠한 설명이나 수식어구 없이 그냥 이 담백한 문장 한마디면 되는데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니. 제대로 축하할 수도 없고, 제대로 축하받을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누군가는 진실한 축하를 건네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는 거짓된 축하로부터 도망치며 살고 있다. / 26p
나도 한때는 나를 알리기 위해 눈에 띄는 문장으로 나를 표현하기도 했고, 당차 보이기 위해 애써 힘을 주며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어야 내가 목표한 바를 거머쥘 수 있었고, 그렇게 선택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그 후 어딘가에 소속되면 자기 PR로 내보인 개성은 온데간데없이 ‘적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종종 튀는 사람보단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을 원했다. 어차피 조직 속 획일화된 인물을 원했다면 왜 우리에게 자기 PR을 요구했는지 알 수 없다. /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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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책 속의 이 글귀가 내 마음을 퍽, 하고 두드린다. 내 감정을 인정하기. 사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괜찮지 않다고 얘기해도 될 텐데 “난 괜찮아.”, 분명 속이 상하고 아플 텐데 “이 정도야 뭐.” 힘들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스스로가 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나는 괜찮다’고 꾹꾹 눌러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거다. 저자는 묻는다. 오늘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그냥 일단 인정부터 하는 것. 나는 지금 화가 난다.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 나는 지금 속상하다고 그냥 인정부터 해버리고 나면 의외로 금세 회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찾아온다고. 그래서 나는 다짐해보기로 했다. ‘인정’이라는 말에 더 이상 인색해지 않기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오이가 길쭉한 모양이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이해라는 개념보다는 보이는 그대로를 보고 내 욕심대로 기대하지 말자고. 그리고 ‘타인’은 말 그대로 나와 다른 사람이며 절대로 그 사람은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상처 줄 수 없다고. 물론, 언제나 내가 또 우리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나 역시도 남에게는 오이 같은 타인일 테니까. 모난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 87p
한 발짝 물러서서 본 세상은 아름다웠는데 한 발짝 들어가서 본 세상은 아픔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멀리 보아야 한다. 지쳐있을 때는 한 발짝을 움직일 힘도 없으니 시선을 멀리하는 것이다. 힘이 빠졌지만 이상하게 힘이 나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 / 95p
안으로 나쁜 감정을 들고 들어오지 말라는 건 무작정 참으며 해소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다. 기분 좋은 상상으로 행복하게 잠을 청하라는 것은 얼렁뚱땅 하루를 넘겨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충분히 비우는 연습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다. /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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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글귀 중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적당한 날씨에 예쁘고 아름답게 꽃피우면 된다.” 이게 행복이지, 하는 순간을 습관처럼 마주해보는 것. 오래된 친구와 나누는 별 거 아닌 이야기, 아주 잠깐의 달콤한 낮잠, 커피 한 잔 들고 나무 그늘 아래서 천천히 걷기, 창문으로 기어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책 한 권 읽기. 내가 좋아하는 적당한 날씨에, 내 자리에서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에 집중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예쁘고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을 거라 믿어보는 거다.
근래에 들어 가장 마음이 심란했던 날에 따뜻한 온도를 머금은 여러 문장들을 만날 수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고단한 일과 속에서 작은 여백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다정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