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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종, 계급 ㅣ Philos Feminism 2
앤절라 Y.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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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 투쟁의 역사를 담은 고전!
이 책 이후에 쓰일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1856년, 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흑인 여성 마거릿 가너는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추격에 나선 노예 사냥꾼과 보완관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가너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그 자리에서 두 살배기 딸을 칼로 베어버렸다. 이때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한 뒤,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하여 딸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할 것인가, 아니면 도망노예법에 따라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하여 무죄방면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딸의 죽음을 크게 기뻐했고-“이제 그 애는 여자가 노예로서 겪게 되는 고초를 절대 알지 못하겠구나.”-살인으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노예제로 돌아가느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수대로 향하겠어요!” / 309p
역설적이게도 사람으로서, 살인죄로 기소되기를 원했던 가너의 바람과 달리 끝내 온전히 재판을 받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끝내 세상은 마지막까지 그녀를 노예로 살기를 강제한 것이다. 이는 가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흑인 노예 여성들은 ‘어머니’가 아닌 ‘번식용 동물’로 분류되었고, 이들의 아기도 마치 암소가 낳은 송아지처럼 빼앗아 판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수입이 중단되고 나서 1년 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법원은 여성 노예에게는 자기 자녀에 대한 어떤 권한도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 판결에 따르면 노예의 자식은 ‘다른 동물들과 동일한’ 발판 위에 서 있으며 언제든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판매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당시 흑인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삼중으로 착취당한다. 니그로(아프리카계 미국인)로서, 노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흑인, 여성, 공산주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 인권의 역사
『여성, 인종, 계급』의 저자인 앤절라 이본 데이비스는 미국의 정치활동가이자 흑인 여성 혁명가로 20세기 인권 투쟁의 상징이었다. 당대 시민들에게 그녀는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권운동가였다. 현재까지도 성차별 철폐 운동, 퀴어 인권운동, 반전운동 등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들을 옹호하며 인권 투쟁의 살아있는 전설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의 저서 『여성, 인종, 계급』 역시 출간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여성 인권 투쟁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책으로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1장에서는 여성 노예의 관점에서 노예제를 분석하거나 연구가 부족한 실태를 지적하며 흑인 여성 노예의 현실과 입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장부터 10장까지는 흑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산업화 시대의 여공들, 중간계급과 신흥 부르주아 백인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열렬히 지켜야 한다는 인식’에 눈을 뜨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예 해방과 여성의 권익, 교육권과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해왔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한편, 흑인 여성 노예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노예제가 폐지되면 흑인들이 미국 사회 내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중간계급 백인 여성에 필적할 지위로 승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여성참정권이 흑인 남성의 참정권보다 덜 시급하다는 주장과 같이 우선순위를 둘러싼 갈등과 모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 인권 문제를 조망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니그로가 자신의 권리를 얻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의 권리를 얻지 못할 것”이라 한 앤절리나 그림케 같은 운동가들의 역할까지 아울러 살펴본다.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들과 동등한 억압을 받았고, 노예 공동체 안에서 남성들과 사회적으로 동등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들은 남성과 동등한 열정을 품고 노예제에 저항했다. 이는 노예 시스템의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야만적인 착취에,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착취에 여자들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흑인 여성들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평등을 부르짖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저항 행위를 통해 표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노예 소유주들이 여성들에게 특히 더 야만적인 억압을 가함으로써 이 평등의 사슬을 끊으려 했던 것으로 보아, 이는 노예 소유주들에게 소름 끼치는 깨달음이었음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성에게 가해진 처벌은 강도 면에서 남성들이 시달린 처벌을 능가했다. 여성은 채찍질과 신체 훼손에 더해서 강간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 56p
나는 쟁기질을 하고 심고 수확해서 헛간에 모아둬요. 어떤 남자로 나보다 잘하지 못해요!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남자만큼이나 많이 일하고 많이 먹을 수 있어요. 나한테 주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똑같이 채찍질도 견딜 수 있죠! 그럼 나는 여자가 아니냐고요? 나는 자식을 열셋 낳았고 걔들이 거의 전부 노예로 팔려가는 걸 봤어요. 내가 어머니로서 비탄으로 울부짖을 때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내 소리를 듣지 못했죠! 그럼 난 여자가 아닌가요? - 소저너 트루스 /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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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과 12장에서는 자본이 인종과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강간범 신화를 통해 살펴보고, 임신중지권과 재생산권과 관련된 여성의 권리도 함께 논의해본다. 여기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강간이 극도로 효과적인 대량 테러리즘의 무기이자, 조직적으로 강간을 장려하는 것이 미군 사령부의 암묵적인 정책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당시 미군들에게는 자기가 열등한 인종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주입되어 베트남 여자들을 강간하는 것이 필연적인 군사적 의무에 해당했다. 더불어 흑인 여성과 남성을 모두 제어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강간을 활용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다. 이는 강간범 흑인 남자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백인 남자들에게 흑인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이용해도 된다는 구실을 강화시킨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내막이 이토록 정치적인 것이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공교롭게도 독일은 히틀러 치하에서 나치 유전보건법에 따라 불임수술을 25만 건 진행했다. 나치가 전체 통치 기간 동안 시행한 불임수술의 건수가 미국 정부가 단 한 해 동안 자금을 지원한 불임수술 건수와 거의 똑같을 수도 있다는 게 진짜로 가능하단 말인가?
(…) 미국 정부의 국내 인구정책에는 부인할 수 없는 인종주의적 색채가 있다. 미국 선주민, 멕시코계 미국인, 푸에르토리코인, 흑인 여성들은 계속해서 이상할 정도로 너무 많이 불임 수술을 받는다. 1970년 프린스턴대학의 인구통제청에서 실시한 국가 출산율 연구에 따르면 전체 흑인 기혼 여성 가운데 20%가 영구 불임수술을 받았다. 거의 같은 비중의 멕시코계 여성들도 불임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연방 보조금 프로그램을 통해 불임수술을 받은 여성의 43%가 흑인이었다. / 3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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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13장에서는 여성해방의 전략적 목표로 가사노동으로부터 벗어나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기를 제안하는 앤절라 데이비스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출판된 지 40년이 지났고, 이미 우리 세대에서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기에 현 시점에서는 의미가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으나,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로 고통 받는 현대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주효한 문제다.
이처럼 젠더, 인종, 계급은 상호의존적으로 얽혀 있다고 주장한 앤절라 데이비스는 우리가 페미니즘을 어떠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다시 말해 젠더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계급과 인종, 지역, 연령, 성정체성 등 다른 사회적 모순과 결합되고 교직되는 것으로, 이에 따라 페미니즘 역시 얼마든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성까지 설득, 만족시킬 수 있는 페미니즘은 불가능하고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을 해방시킬 수 없다’는 정희진 여성학 박사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적확한 듯하다. 다만 공감해보는 것, 나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자원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가늠해보는 것, 여성으로서 아니 한 사람으로서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재정립해보는 것, 거기에서부터 진짜 여성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