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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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끝내 경계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의 애환이 입체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대서사극이다앞서 1권이 남편인 백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와 가난과 차별압박과 모욕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조선의 여인 선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2권에서는 그녀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와세다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노아와 달리모자수는 번번이 싸움에 휘말린다이를 염려하는 선자의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에 파친코 사장인 조선인 고로는 모자수에게 자기 밑에서 일을 배워보라 제안한다그렇게 모자수는 착실하게 돈을 벌고 고로의 곁에서 장사 수완을 배우면서노아는 수많은 책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며 배우고 익히는 방식으로 성장해간다.

 

 

 

  “왜 그러는데네가 조선인이라고 부끄러운 거야?”

  하지만 아무리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혀도남부럽지 않게 돈을 많이 벌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즉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었다노아는 이를 부끄러워하기보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기를 원했고오히려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이상을 품고 있었다그런 그에게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백이삭이 아니라 한수라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특히나 배후에 야쿠자를 둔 한수의 돈으로 자신이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니도저히 어머니와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더군다나 연인이었던 아키코 역시 모두가 꺼리를 조선인과 어울리는 자기 자신에게 특별함을 느끼는 타입이라는 것을 안 이상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없었다때문에 노아는 모두와의 인연을 끊고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선인이라는 것조차 철저히 숨긴 채 살아간다.

 

 

 

노아는 와세다에 가야 해요대학에 다닐 자격이 있어요여기서는 아무도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지만 학위가 있으면 조선으로 돌아가서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일할 수 있어요아니면 미국으로 갈 수도 있고요노아는 영어를 할 줄 알게 될 테니까요우린 노아의 교육을 투자로 생각해야 해요.” / 35p

 

 

공부만 해라.” 한수가 말했다. “모든 것을 다 배워네 머릿속을 지식으로 채워그건 누구도 너한테 빼앗아 갈 수 없는 유일한 힘이야.” / 55p

 

 

노아가 아키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아키코는 항상 노아를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다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상상 속 모습을 덧씌워서 보고 있었다아키코는 모두가 꺼리는 사람과 어울려주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노아라는 존재는 아키코가 좋은 사람이고 배운 사람이며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주었다노아는 아키코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신경쓰지 않았다사실 누구와 함께 있어도 자신이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그것이 무슨 의미이든노아는 그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 104p

 

 

 



 

 

 

 

  반면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일하면서 인생이 파친코 게임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다이얼을 려서 조정할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생긴 불확실성무작위성희망의 여지를 쫓는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 이해한다그것은 자신 같은 조선인은 여길 떠날 수 없으리라는 너무도 분명한 사실 때문이었다서울에 간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을 일본 놈이라 부를 것이다일본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든얼마나 좋은 사람이든 더러운 조선인일 뿐이다이 변하지 않는 사실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그나마 기대어볼 수 있는 희망이란 시대가 변해서얼마든지 자신과 다른 삶을 살 기회가 있는 아들 솔로몬일지도 모르겠다.

 

 

 

모자수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일본에 사는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여행을 할 수 없었다번거로운 일 없이 재입국 할 수 있는 일본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일본 시민이 돼야 했다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어쨌든 모자수가 아는 누구도 일본 시민이 되려 하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민단을 통해 남한 여권을 발급받을 수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에 속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빈곤한 나라를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어서였다북한을 선택한 조선인들 일부는 북한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지만 그 외에 어디도 갈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일본인이 그들을 원치 않는다고 한들그래서 뭐 어떻다는 말인가? / 154p

 

 

왜 에쓰코네 가족은 파친코 사업을 그리 안 좋게 생각할까외판원이었던 에쓰코의 아버지는 형편이 안 되는 외로운 주부들에게 비싼 생명보험을 들게 했고모자수는 성인 남녀들이 돈을 따려고 핀볼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그들은 모두 가능성과 두려움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매일 아침모자수와 직원들은 당첨 결과를 조작하려고 기계를 살짝 손봐서 돈을 따는 사람은 적고 잃는 사람은 많게 했다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했다어떻게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 254p

 

 

 

  하지만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솔로몬의 현실도 모자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조선인이 교사나 경찰간호사는커녕 평범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아버지인 모자수와 또 그 위의 어른들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파친코 일을 하게 되었듯후지나 소니가 솔로몬에게 채용 기회를 줄 리가 만무하다조선인들은 도쿄에서 집을 빌릴 수도 없다그렇다고 조선인이 일본 시민이 되는 것도 여전히 어렵다결국 미국으로 가지 않고 일본에 남아 아버지의 파친코를 이어받겠다고 선언하는 솔로몬의 모습은 끝내 경계인으로밖에 살 수 없는 일본 내 조선인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피비는 한반도가 둘로 갈라진 후에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이 종종 여러 차례 남북한 중 한쪽을 선택해야 했고 이에 따라 거주 신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솔로몬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조선인이 일본 시민이 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고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조선인으로서 강제로 식민 통치를 자행했던 나라의 시민이 되려 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피비가 뉴욕의 친구들에게 역사적으로 기이한 상황과 만연한 민족적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면친구들은 자신들이 아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일본인들이 피비를 범죄자나 게으르고 더러우며 공격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일본에서 조선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이런 것들인데도 말이다. / 299p

 

 

 

  소설 속에 열네 살 생일을 맞은 솔로몬이 지문을 찍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1952년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은 열네 살 생일이 되면 일본 거주 허가를 받기 위해 해당 지방 관청에 신고해야 했다솔로몬은 일본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 한, 3년마다 등록증을 갱신해야 했다모자수의 연인으로 함께 동행했던 에쓰코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과 솔로몬은 여기서 태어났잖아요.” 일본에서 태어난 것은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조선인이라는 것이며 추방되고 싶지 않으면살아남으려면 마치 범죄자처럼 지문을 찍어야 한다.

 

 

 

  열두 살배기 조선인 남자 아이가 집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건도 있다아이는 늘 최고 점수를 받았고차별받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아이의 졸업앨범 표지 안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죽어라추잡한 조선인.” “구린내 나는 가난한 인간들.” “네가 자살하면 내년에 우리 고등학교에 더러운 조선인 한 명이 줄어들 텐데.” 알려지지 않았을 뿐수많은 조선인들이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개인의 이야기이다

  표지에 적힌 글귀처럼파친코』 2권에는 해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끝내 경계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의 애환이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한 사람한 사람의 목소리를 다 담아내려다보니 1권에 비해 극의 몰입도가 느슨해진 감이 있지만뛰어난 통찰력과 디테일하게 시선으로 역사를 감각하려는 작가의 역량은 여전히 인상적이다그리 멀리 지나온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잊히는 것들은 너무도 많고 빨라져서일까이 작품이 보다 귀하게 여겨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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