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823_11.jpg)
오늘도 불안에 갉아 먹히느라 괴로운 당신에게!
불안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을 펼쳐 그것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믿어봐야겠다!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지옥과 연옥과 천국이 들끓는가!
/ 『불안의 서』 중에서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의 저자 임이랑은 ‘불안’을 ‘아이’에 비유한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이, 키가 작고 조심스러운 아이, 그렇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면 한없이 사나워지는 아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뒤통수를 때리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며, 즐겁게 웃다가도 갑자기 몰아닥치는 괴로움에 땀을 뻘뻘 흘리게 되고, 아이를 돌보는 동안 부모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 걸을 때는 천천히 걸음을 이어가며 조심해서 아이를 케어해야 하듯, 불안에 싸여 살아내야 하는 일상은 마치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일상과 비슷하다.
우리는 저마다 100점짜리 하루를 열망하지만, 이렇듯 불안과 함께라면 완벽한 하루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다만, 다 포기한 상태로 0점짜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50점짜리 하루라고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불안이 나를 덮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그 날의 일과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해본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고,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고, 자극적인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일정을 조절해보기. 불안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할 것은 빠르게 포기하기. 그러다 가끔은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어보기도 하는 거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다
각자 몸의 컨디션이 다르듯 마음의 컨디션도 다르다. 위가 약해서 소화를 잘 못 시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불안에 취약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저자는 까다로운 자아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열세 살의 겨울 무렵, 첫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폭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너지고 곱씹고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그건 겨울이 지나 봄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았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다음 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세상이 여기서 멈춰주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그녀는 작고 온화한 표정을 가진 좋은 상담가를 만났다. 밀도가 높은 이야기를 꺼내려다 보니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쳤고, 말을 시작하고 나면 여지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고 있으면 자신보다 더 많이 울고 계신 선생님이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상담자 선생님의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얻으면서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마음에 다다르기도 하고, 여러 조력자들을 덕에 긴 여행을 다녀오며 완전히 멈춰두었던 일을 다시 시작해볼 기운을 얻었다. 그녀는 ‘어두웠던 시절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힘이 있어서, 그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의자의 높이를 재고 밧줄의 두께를 결정했던 것은 모두 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을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 하루씩 더 살아내는 것도 살아가기에 꽤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그녀는 세 번째, 네 번째, 또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고 해도 하루씩 버티며 다시 온전한 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약점와 나의 모순, 감추고 싶은 비밀과 굳이 들추지 않는 게 이로운 사실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폭된다. 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아주 힘이 세다. 조금씩 잘게 모퉁이를 잘라 버리고 또 버려 천천히 작아지면 좋으련만, 오히려 커다랗고 어두운 마음이 덕지덕지 새롭게 달라붙은 어둠의 벽은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진다.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보다 훨씬 강력하다니, 인간은 만들어질 때부터 고통받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나의 이론이 더 확고해진다. / 33p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를 꼽으라면 나는 outgrow를 고르겠다. 몸과 마음의 성장통 같은 이 단어는 종종 나를 얼어붙게 한다.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집 혹은 식물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너무 커져 맞지 않게 되었음을 느낀다. 식어버린 열정과 많이 자라나 더는 맞지 않게 되어버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프다. 아마도 어떤 세상은 정말로 끝이 나서 구겨지고 작게 흩어져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볼 수 없게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꼭 맞던 존재가 더 이상은 꼭 맞지 않게 되는 슬픔을 반복해서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가 보다. / 65p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823_12.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823_13.jpg)
물론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어서, 이따금 그녀를 갉아먹곤 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한 번의 무례함이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냉소로 바뀔 때가 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내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자리.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너무나 달콤해서 순식간에 자의식에 불을 지피고 활활 타오르지만, 오히려 그 섣부른 마음과 과도한 욕심이 예외 없이 자학의 밤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재가 무재’라는 말이 있듯, 글을 쓰고 노래를 짓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여러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방황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약을 먹을 때 부작용을 중요하게 읽는 습관이 독이 될 때도 있다. 정작 중요한 약의 효능은 느끼지 못하고 메스꺼움, 호흡곤란, 두드러기, 발한 같은 온갖 부작용만 학습되어 내 몸에 펼쳐지곤 한다. 이처럼 부정적인 것들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내 안에서 너무 강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상처와 불신으로 굳어진 마음 때문에 친절한 아름다움마저 놓치지는 않으리라 다짐한다. 조심스레 나에게서 덜어낼 것과 더할 것을 고르고, 그중에 내일로 데려갈 조각을 고르기도 한다. 무엇도 영원하지 않고 어떤 이념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과하고 일방적이며 거창한 행복 대신 평안한 일상에서 좋은 순간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행복이라며 떠벌리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올 만족감과 고른 숨을 소원한다. 나의 예민함을 무기로 두르고 뾰족하게 살아가기보다는 예민하지만 안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렇게 내가 그려둔 동그라미 안에 갇혀서 점점 더 좁아지지 않기 위해 예의와 친절을 위한 체력을 열심히 키워두겠노라 결심한다. 나의 한 부분인 예민을 지울 수 없다면 예민함도, 밝은 마음도 함께 안고 가려 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식물은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이파리마다 각자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한다. 나는 그 세계를 목격하고 관여하며 식물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하고 분리한다. 장미가 병충해에 시달렸던 겨울에 쓴 글, 알로카시아가 사흘이 멀다고 새순을 올리던 봄에 듣던 음악을 기억하며 식물과 나의 다음을 기대하는 식이다. 병충해에 시달렸던 장미가 커다란 꽃을 피워낼 무렵 새로운 책을 펴낼 수 있다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무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 68p
마음은 웃긴다. 웃기고 까다롭다. 너무 바짝 힘을 주고 있으면 촌스럽게 부러져버리고 유연하게 힘을 빼다보면 흐물거려 쓰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요즘은 적당한 온도를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는 시간이 길다. 오늘은 꼭 좋은 글을 쓰겠다고 설치다가 쓰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말아먹은 밤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도 또다시 보따리를 휘저어 까만 뱀을 피하고 가장 빛나는 돌멩이를 찾아 머릿속에 떠올리며 쓰고 또 쓴다. / 126p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823_14.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823_15.jpg)
우리는 저마다 다른 형태의, 다른 강도의 불안을 가지고 산다. 다만 그것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면,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받아들이고 적당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살아보는 건 어떨까. 때로는 불안이 위험을 방지하고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이해할 수 있고,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불안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을 펼쳐 그것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리라 믿어봐야겠다. 그렇게 오늘 하루 더 살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또 그 덕분에 계속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