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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 선택적 함구증을 가졌던 쌍둥이 자매의 작은 기록들
윤여진.윤여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6월
평점 :

그 시절, 불안과 상처로 가득했던 시간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
말문이 닫힌 아이들의 마음속에 갇혀 있는 말들, 이제는 먼저 귀를 기울여주세요!
“학급 회의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복도로 나가서 무릎 꿇고 있어라.”
엄하기로 유명했던 나의 담임선생님은 학급 회의 때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은 아이들을 모두 복도로 불러내셨다. 그날 아무런 안건을 내지 않은 나를 비롯해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나가 무릎을 꿇어야했다. 학급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랐던 특단의 조치였겠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 되어버리는 순간은 학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 “더 크게!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아이들 앞에서 나의 목소리가 주목 받는 게 부끄러웠던 나에게 선생님의 다그침은 격려가 아니라 그저 고통이었다. 오죽하면 반에서 4인이 출전한 합창 대회에서 1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등한 기념으로 독창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는 당황해서 아예 입을 떼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평소에는 말을 잘 하지만 유독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려웠던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소극적이었는지, 또 언제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늘 아무 말도 하지 못해 얼굴만 붉히고 있는 내 모습만 선연히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나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선택적 함구증.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증상으로,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하며 아동기에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향, 태아기부터 유아기까지의 직간접적 경험들, 부모와 교사의 양육과정, 가족 환경, 영유아기의 분리불안 등으로 인해 불안도가 매우 높은 채 사회에 나선 아이들에게서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선택적 함구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아이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 원인이라 여겼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인 쌍둥이 자매는 비슷한 시기에 함께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고 한다.
“뭐가 불안해? 왜 말이 안 나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거 아니야? 뭐가 불안한 거야? 이유가 뭔 것 같아?” 사람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게.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일종의 불안 장애였는데, 말을 하고 싶은데 못한 게 아니고, 아예 말을 하고 싶은 욕구도 없었어. 말만 그런 게 아니고 표정도 안 지어졌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못했어. 움직이는 것도 부자연스러웠어. 그렇게 편하지 않은 장소에서는 늘 무표정한 마네킹 같았어.” 쌍둥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늘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들도 뭐라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는지, 왜 불안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저 쳐다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싫었고,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겁이 났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약속이나 한 듯 집 밖에만 나서면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얼음쌍둥이가 되어간 것이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착실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집 안팎으로 큰 문제는 없었고, 그로인해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년에는 조금씩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방치되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민과 갈등의 소란스러움을 혼자 겪어내야 했고, 그런 순간들이 쌓일수록 삶은 늘 벅차고 아팠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낯선 환경을 싫어하는 아이를 보며 자신의 유년시절과 겹쳐보게 되고, 혹여 내 아이도 선택적 함구증을 앓게 되는 게 아닐지 노심초사했던 것이다.
체육 시간마다 ‘오늘은 부디 교실 수업이길’하고 기도하던 어린 소녀. 신발 갈아 신는 일조차 어려웠던 나는 나 스스로를 초라하고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는 왜 그토록 당당하지 못했을까? 왜 늘 죄인처럼 숨고 싶었을까? 사춘기가 다가올수록 나는 자존감이 더욱 낮아졌다. / 97p



이처럼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에는 7년간 입을 꼭 다물었던 ‘선택적 함구증’ 쌍둥이 자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째서 그들은 이 기나긴 시간동안 말을 하지 않았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이후 어떻게 침묵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는지를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혼자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려웠던 내 유년 시절의 모습이 여러 번 겹쳐져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많은 곳보다 혼자서 노는 게 더 편했던 아이, 눈물이 헤프다고 또 놀림을 당할까봐 꾹꾹 삼켰던 아이, 혼자서는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하거나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게 두려웠던 아이, 미움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피해를 받는 게 더 나았던 아이. 그 모든 게 한 데로 겹쳐져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하지만 서로의 ‘존재’가 위로가 되고,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던 시간과 가족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던 빛나는 ‘순간’이 있었기에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던 그들의 말에 어찌된 일인지 나까지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는 한심하지도 초라하지도 않다고, 그저 단지 조금 달랐을 뿐이라고, 남들 앞에서 뭐 하나 자연스럽게 잘해낼 수는 없었지만 끈기와 인내심은 뒤지지 않았고 누구보다 성실했다고 나를 칭찬해주는 일은 퍽 위로가 되었다. 조각난 유리파편을 모으듯 그렇게 내 마음도 하나씩 주섬주섬 챙겨보면서 지난날의 나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만의 비밀 놀이터. 집은 생활의 공간이자 유일한 놀이공간이었다. 학교를 오가는 발걸음은 단 한 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과 할머니, 그리고 비밀 놀이터 덕분이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던 시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작고 소중한 놀이의 기억들. 가족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던 빛나는 순간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살아가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지만 때론 이 기억들이 나를 살게 한다. / 53p
그 순간, 내 아이가 나의 예상보다 단단한 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하게 두근거릴 뻔하던 심장이 마침내 행복감에 잦아들었다. 운동장에 뛰어다니는 이 많은 아이들은, 낯선 장소에서 평범하게 적응해가는 일이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알까. 혹여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라 해도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을 쓰며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만하다는 걸 알고 있을까. / 91p
“선한 아이야, 곧 너는 너만의 그 작은 세상을 깨고 나올 수 있어.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 / 113p



책의 말미에, 선택적 함구증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당부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여기에도 남겨보고자 한다. 저자는 먼저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라고 말한다. 선택적 함구증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평소 소외감과 고립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의견표현이 없는 것은 별다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안하구나”, “너 힘들구나”, “오늘은 못했지만,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아이가 자신이 겪는 감정을 부모가 이해한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들에게 말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말 못하는 아이라고 규정 짓기보다 목소리를 내는 일이 덜 부담스러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침묵마저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자.
또 부모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응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덜 해지더라고, 조금만 용기를 내면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특히 유치원이나 학교 입학 전과 같이 환경의 변화를 앞두고 있을 때, 아이에게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주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외에도 ‘말하는 것이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경험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아이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우리 아이는 말을 안 해요”라고 단정짓거나 폭로하지 않기, 언젠가 나을 거라고 방치해두기 보다 미리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니 참고해야겠다.
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도, 성인이 되었을 때도, 내 안의 그 아이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늘 수치심에 젖은 채 성장하지 않는 그 작은 아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기보다 회피하기를 택했던 것 아닐까.
만약 나의 아들, 딸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상해보니 큰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파도에 모래성 같은 내 마음이 풀썩 무너졌다. 아, 나의 자식들만 나와의 안정적인 애착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구나. 내 속의 작은 문신 아이도 애착이 필요했던 거로구나. 이제 와서 그것을 깨달았다. / 178p
본래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이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진 섬세함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을 모색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에 사려 깊고 배려심이 좋은 편입니다. 비록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시간들은 본래의 성향을 강점으로 배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갖춘 자들이기에, 지독한 마법에서 풀리게 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진행이 됩니다. 가면 속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사회에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 본격적으로 문제 해결이 된 셈이지요. / 282p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말은 생소할 수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성격으로 규정짓고,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는 막연한 낙관으로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아이가 스스로 알을 깨부수고 나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고 말하지 않는,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부모가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똑같은 상처를 겪었던 어른이들도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격려해주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