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재미있는 한국사 책이라니!
복잡한 한국사를 짧지만 강렬하게 익히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내가 남부여의 공주 부여주다.”
드라마를 본 적은 없어도 모르는 이가 없었을 만큼 한때 꽤 유명했던 대사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몇 번이나 자신의 출신을 강조한다. 당시에는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나, 이제와 돌이켜보면 대체 남부여가 어디기에 여주인공은 자신의 출신에 그토록 당당했던 것일까 궁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에 따르면 남부여는 백제의 국호였다고 한다. 백제가 도읍을 웅진에서 사비로 옮겼을 때 쓴 국호로, 성왕 16년부터 멸망 때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분명 교과서로 부여를 배우긴 했는데 백제가 왜 남부여라는 국호를 사용했는지 이유는커녕 부여에 대한 이미지조차 뚜렷하게 와 닿지 않으니 말이다. 기껏해야 마가, 우가, 저가, 구가와 같은 가축의 이름을 붙인 귀족 세력이 있었다는 것과 영고라 불리는 제천 행사를 치렀다는 것 정도랄까.
놀랍게도 부여는 고조선이 망하기 전에 생겨서 삼국 시대가 한창 이어지던 때까지 존속 기간이 무려 700년에 이르는 나라였다고 한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로는 동북아시아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고구려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이전까지 부여가 만주 일대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대에서 부여의 강력한 영향력은 고구려와 백제가 굳이 자신들의 뿌리를 부여에서 찾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고, 이들에게 있어 ‘부여에서 왔음’은 권력의 상징으로 활용될 정도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부여에 대해서는 까마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 김재원은 ‘고조선에서 시작해 삼국의 탄생과 통일이라는 교과서 서술에 맞는 대서사시’를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른 나라가 바로 부여라고 지적한다. ‘삼국 시대’라는 지극히 삼국 중심의 표현에 의해 부여의 역사는 축소된 셈이다.
이쯤 되고 보니 부여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언급되는 옥저, 동예, 삼한 역시 그 실체가 궁금해진다. 작아서 덜 중요해 보이고 그래서 주변부의 이야기라 여겼던 존재들이 그럼에도 교과서에 굳이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이들은 더 큰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인지까지도 말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는 고대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교과서 안에만 갇혀 있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더 넓은 시야를 통해 한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파편적인 사건들을 한반도의 역사를 넘어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이를 테면 영토가 엄청나게 넓지도,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가지지도 않은 백제가 중국 왕조로부터 꾸준히 인정받아온 강국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임진왜란’이 단순히 우리나라와 왜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던 것인지, 구한말 조선은 정말 바깥세상의 변화에 무감했던 것인지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통해 알아봄으로써 보다 뚜렷하게 한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중국 왕조에서 받은 작호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 사이의 ‘급’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지표였다. 양나라를 포함한 중국 왕조에서 백제의 작호를 고구려보다 높은 서열로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무령왕 시기 백제의 외교 정책이 빛나는 장면이다.
백제는 외교의 힘을 잘 아는 나라였다. 동시에 문화적으로 중국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나라다. 외교는 정치·경제적 교류인 동시에 문화적 교류다. 당시 백제는 동북아시아 문화 교류 네트워크의 허브로서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발 빠르게 배우고, 가야와 신라를 거쳐 왜에 전달하는 통로였다. / 55p
당나라가 그간 무시해오던 신라와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은 단 하나의 이유는 고구려 침공 시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안정을 넘어 공격까지 해준다는 신라가 그저 고마웠다. 그렇게 648년 신라와 당나라를 군사 동맹을 맺고 백제 공격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한반도 정세는 이전과 전혀 다른 판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늦게 중국과 맞닿았던 한반도 변방의 작은 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고 사방을 제패하려는 최강국 당나라와 끈끈한 사이가 된 것이다. / 83p



개인적으로 망국의 클리셰로 상징되는 의자왕이 한때 효심과 우애의 아이콘이었다는 것, 신라의 40여 성을 빼앗고 대야성까지 함락시키며 신라가 당에 도움을 청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제공했다는 것, 삼천 궁녀 이야기는 허구일뿐 당나라로 끌려가 치욕을 겪으며 그곳에서 사망했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공민왕 역시 미친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기에는 고려가 쇠망하는 길목에서 마지막 힘을 다해 정상적으로 돌리려 노력했던 왕이었으며, 그가 시도했던 개혁을 자양분 삼아 조선이 건국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보게 한다. 사화 역시 폭군들만이 사용한 정치술이 아니라 국왕 혹은 국왕과 의견을 같이하는 관료 집단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벌이는 극단적인 정치 행위였다는 점에서, 연산군을 폭군으로 기억하더라도 그가 행한 정치 행위에 있어서는 당대의 정치 구조에 대한 파악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광종 때 피의 숙청을 이겨내고 과거 제도를 통해 자녀들을 중앙 정계로 진출시킨 호족들은 성종 연간을 거치며 국왕 아래서 새로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치 세력을 우리는 흔히 ‘문벌(귀족)’이라고 부른다.
이들이야말로 국왕과 함께 고려의 정치를 좌지우지했고, 심지어 군권까지 장악한 세력이었다. 요나라에게서 강동 6주를 얻은 서희, 귀주대첩을 주도한 강감찬, 동북 9성을 쌓아 여진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킨 윤관도 모두 문벌이었다. 바로 이 문벌과 고려의 국왕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고려의 정치 시스템을 이해하는 시작과 끝이다. / 158p
조선 중기, 변화하는 정치 시스템은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 때 완성된다. 여느 왕조 국가가 그랬듯 조선 왕조도 건국 초기 여러 번의 정치적 변란이 속출했고, 이에 정치 세력의 변화가 뒤따랐다. 변란 끝에 세조 시기 완성된 공신 집단인 훈구파는 푸려 성종 시기까지 조선의 정계를 장악한 특권 집단으로 성장했고, 이때 훈구파의 라이벌 집단인 사람이 등장한다. 훈구파의 힘이 아무리 강한들 결국 이들은 관료 집단이었고, 선을 넘는다고 판단되면 국왕은 견제 세력을 키웠다. 그것이 조선 특유의 정치 구조였다. / 237p


끝으로 한국 사회의 교육열은 조선이 식민지화되고, 근대 교육을 수료했다는 증거인 학력이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일제 강점기부터 출발했다는 책의 설명은 ‘과거는 단순히 과거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 유의미하다. 삼풍백화점의 붕괴 또한 대한민국의 급작스럽고 압축적인 성장의 민낯과 곧 불어 닥치게 될 IMF 사태의 예고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왜 역사를 단편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지를 실감케 한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는 복잡한 한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되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맞물려 있는지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소설책을 읽듯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사는 물론 이와 관련된 동아시아와 세계사 전체 역사까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한국사 교양책을 찾으시는 분들이나 학생들이 방학 때 읽어볼 만한 한국사 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