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 택배기사님, 큰딸
택배기사님.큰딸 지음 / 어떤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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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좀 더 많이 써지고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택배 업무를 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고단한 업무를 위로해주었던 따뜻한 순간들!

 

 

 

  어느 날아빠는 느닷없이 택배 일을 시작할 거라고 말씀하셨다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소일거리 삼아 농사를 지은 지 두어 해가 지난 뒤였다택배 기사라는 직업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상당한 업무량에도 대우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살림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니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다행히도 아빠는 새로운 일에 빠르게 적응해갔다엄마도 오랜만에 아빠의 도시락을 손수 챙기는 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해가 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는 일이다보니 아빠의 체중이 줄어드는 게 눈에 띌 정도로 고단해보였다게다가 잠들기 직전에까지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를 받아야 할 때도 있었고택배물을 분실했다는 고객과 얼굴을 붉혀야 하는 일도 왕왕 발생하곤 했다그로부터 1년 뒤아빠는 좀 더 안정되고 몸이 덜 힘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만두기는 했지만 이때의 기억은 나를 택배 기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더운 날추운 날궂은 날 가리지 않고 반드시 당일 배송의 원칙에 따라 고군분투하는 기사님들을 보면 차마 빨리 가져달라 재촉할 수 없었고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의 제일 꼭대기까지 무거운 짐을 배송하게 하는 것도 죄송스러웠다특히 팬데믹 이후집 안에서 두 아이와 꼼짝없이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와중에도 큰 혼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유연한 배송 시스템과 택배 기사님들의 노고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책을 보는 순간제목을 참 잘 지었다 생각했다집 앞에 트럭이 정차하는 소리만 들려도 두 귀를 쫑긋하게 되고저 기사님의 손에 들린 물건이 내가 기다리던 물건이 아닐까 마음이 설레는 것도 잠시기다렸던 택배물이 탁-하고 문 앞에 놓이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찌르르 온몸을 관통하는 이 행복감을 뭐라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오늘 나에게 택배를 전달한 바로 그 기사님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에게로 오는 것은 단순히 물건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비대면 방침으로 직접 수령이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혹여 이웃집 방문으로도 마주칠 수 있다면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도의 인사쯤에 인색해지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문 앞에 두고 온 마음을 담아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은 25년 차 택배기사님이 택배업을 하면서 쓰신 글을 자신의 큰딸이 정리하여 완성한 에세이다책 속에는 택배 업무를 하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고단한 업무를 위로해주었던 따뜻한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이 중 택배 기사님들을 폄하하거나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으로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눈살이 찌푸려진다사전에 충분히 문자메시지로 안내가 되었음에도 집에 사람이 있었는데 문 앞 배송했다고 항의를 하는 고객이 있었고택배가 사라졌다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뱉어놓고는 사건조사와 분실처리를 돕기 위해 경찰관과 함께 방문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집에서 물건이 나왔다고 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산중턱에 있는 배드민턴장으로 주 소재가 금속인 라켓 열 박스를 배송하느라 무려 열 번의 산행을 해야 했던 일화가 있는가하면배송을 위해 잠시 정차했다가 온갖 욕을 들어야 했던 사연도 있었다한 교회의 교인으로부터 자기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잘생기고자식들이 하나같이 공부를 잘하는데 기사님은 우리 교회 교인 하고 싶어도 못하겠다는 말까지 들어야했던 걸 보면우리 사회가 여전히 택배 기사님들의 업무를 폄하하고 소위 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워진다.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인데그 공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면 나와 같은 입장이 아니었나물건을 맡아 두는 것마저 그렇게 귀찮고 힘들다면서 고객센터에 전화해 사람을 색종이처럼 자르라고 말하는 것은 안 귀찮고 쉬운 일이었는지. / 24p

 

 

다음 날 물건을 베란다에서 찾았다는 고객님의 전화가 왔다손과 발을 다 사용해야 할 정도로 커다랗고 무거운 물건이 스스로 베란다에 걸어 들어간 것일까손발이 안 맞는 듯한 이야기가 손발이 가루가 되도록 배송을 해낸 기사님의 노고보다 앞설 땐 속이 상한다. / 113p

 

 

최근에는 법도 제정되고 하여 서비스업 종사자의 보호를 위한 안내 문구가 게시되고 있다이런 하나마나 한 것을 왜 입법할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만얼마나 심각하면 법으로까지 만들어져야만 했을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우리 집 귀한 자식이다고객을 위한 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 117p

 

 

 



 

 

 

 

  그러는 와중에도 역시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힘을 얻는다택배물에 시야가 가려 아파트 출입문에 부딪쳤고 그 자리에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났는데집에 올라가 탈지면과 소독약간단한 연고 같은 것을 가져와 손수 치료를 해준 이가 있었다일하느라 수고가 많다며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들이 먹을 것을 나눠먹는 자리에 선뜻 자리를 내어주셨는가 하면다른 동에 배달 다니는 모습을 보니 유독 바쁜 듯하다며 직접 물건을 찾으러 오시는 고객도 있었다고택배 업무를 처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의미로 직접 따뜻한 밥을 지어 한상 내어주신 분도 있는 걸 보면세상이 이토록 따뜻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감사하게 된다.

 

 

 

특정 국적이라서어떤 성별이라서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그는 당신보다 커다란 트레일러를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하며적어도 2개 국어를 할 수 있다그래서 본인의 일상을 꾸려 나간다.

다른 이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비교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너무 큰 관심을 갖지 말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집중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극복해 보길그러지 못한다면 그저 지질한 것이고 구린 것이다. / 67p

 

 

주차할 곳이 없어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인근 지역을 배달하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절대 오래 걸리지 않아요.

밥줄 달린 일인데 느리게 할 수 있나요.

빨리 돌아와서 차 빼 드릴게요. / 90p

 

 

그토록 바쁜 사람들이 나에게 그 필요를 맡기고 믿고 기다린다어떤 경우에는 스페어 키를 숨겨둔 장소를 알려 주기도 하고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그만큼 믿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비록 그들이 무슨 물건을 샀는지 잊었더라도 내가 적시에 나타나야만 하는 이유다. / 159p

 

 

 



 

 

 

 

  책을 갈무리 하며 오랫동안 택배업에 종사한 아버지를 곁에서 바라본 큰딸의 글이 인상에 남는다아버지의 휴대폰을 가득 채운 비슷비슷한 현관 앞 택배 상자 사진들손가락을 아래로 아래로 스크롤링을 하고특정 날짜로만 필터링을 해도 그 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도 한참을 넘어섰다고딸로서는 도저히 구분을 할 수 없는 사진을 아버지는 어느 집 현관 앞 상자인지 망설임 없이 찾아내더란다. ‘서글퍼졌다아빠의 휴대전화에는 본인의 얼굴도당신보다 사랑하는 가족들도 담겨 있지 않았다알지도 못하는 이가 부재중인 문……그 사진들로 꽉 차 있었다전달하지 못할 아빠의 마음만 알아 버린 기분이었다.’는 글귀에서 우리 아버지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노고가 생각나서 그만 울컥해버렸다.

 

 

 

  비록 마음대로 휴가를 쓸 수 없고주말에 일하는 날도 있지만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으로 행복하고 살고 있습니다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라던 책 속의 글귀처럼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택배 기사님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그리하여 오늘도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오실 택배 기사님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기를그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다정한 말 한 마디 더 건네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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