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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평점 :
차별과 억압, 빈곤과 무지로 척박해진 삶에도 희망은 있다!
미스터리와 감동, 유머, 의미까지 아우르는 기대 이상의 놀라운 작품!
1969년 9월의 어느 흐린 오후, 브루클린 남부에 있는 커즈웨이 빈민 주택 단지의 광장 한 가운데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쿠피, 일명 스포츠코트라 불리는 파이브엔즈 침례교회의 늙은 집사가 현재는 마약 중개업자이자 한때 자신이 이끌던 야구팀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던 열아홉 살의 딤즈 클레멘스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평온한 성품을 가진 데다 평생 적이라고는 두지 않았을 것 같은 스포츠코트가 하필이면 살인도 불사할 만큼 악랄해진 딤즈를 쏜 이유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사악한 마법에 걸렸다느니, 악독한 폭력배로부터 협박을 받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거라니, 2년 전에 커즈하우스 야구팀과 그들의 경쟁상대인 워치하우스 팀 간의 경기가 취소된 일 때문이라느니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스포츠코트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1960년대 후반,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믹 이웃 서사시
이렇게 소설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1969년의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벌어진 한 의문의 총격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포츠코트가 딤즈를 쏜 당시 커즈하우스 광장에는 무려 열여섯 명의 목격자가 있었고, 늙은 교회 집사가 젊은 마약 딜러를 쏜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동네 전체가 소란스럽지만, 어찌된 일인지 스포츠코트는 번번이 의도치 않게 경찰과 추적자들의 포위망을 피해간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자신은 딤즈를 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다, 버젓이 동네를 활보하고 다니면서 죽은 아내만 알고 있는 교회 성탄 모금 상자의 행방을 쫓는 데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스포츠코트는 왜 딤즈를 쏜 것일까. 어째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포츠코트를 감싸주는 것일까. 목격자 중 누구 하나, 마을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총에 맞은 딤즈 조차 스포츠코트를 신고하려 들지 않는 이 기이한 광경에 호기심이 들려는 찰나, 소설은 또 다른 사건과 의문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간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미스터리한 총격 사건의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마을과 공동체 전체의 이야기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스포츠코트의 아내인 헤티가 보관하고 있던 성탄 모금 상자는 어디에 있을까? 매번 커즈웨이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치즈는 누가 보내는 것일까? 엘레판테의 아버지가 거버너의 부탁을 받고 숨겨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동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연이은 의문은 이탈리아 갱단과 폭력배, 마약 딜러, 커즈웨이 빈민가에서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주민들, 백인 이웃과 지역 경찰까지 마을 전체가 한 데로 얽히고설켜 놀랍도록 아름다운 공동의 서사시로 확장된다. 개인의 역사가 이웃의 역사가 되고, 나아가 공동체의 역사가 되는 이러한 광경은 우리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며 지극히 사적으로 보였던 일도 위대한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커즈하우스 식구들 모두 각자 돌아버릴 만한 사연들이 있다. 대개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었다. / 23p
스포츠코트는 불평하거나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다. 남을 비판하지도 않았다. 무심한 편이었다. 늘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고, 딤즈는 그래서 스포츠코트가 좋았다. 딤즈가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평을 끊임없이 해대는 사람들이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평을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기다린다. 스포츠코트는 그렇지 않았다. 단지 야구와 술을 좋아했다. 그뿐이었다. / 110p
“오물을 치우는 것이 저의 임무였어요, 경관님. 청소를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오물을 묻히면서 일을 하죠. 하루 종일 오물을 찾아다니며 치우고요. 그래서 오물들은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들이 제게 ‘나 여기 숨어 있어. 와서 찾아봐’ 하고 신호를 보내지는 않죠. 제 발로 모두 찾아다니며 치워야 해요. 그렇지만 저는 오물들이라고 해서 혐오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존재 자체를 미워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물이 있으니까 제 일도 있는 거고요. 어디서든 오물을 치움으로써 저는 누군가를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거죠.” / 145p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소설의 배경이자 1960년대 후반, 뉴욕 브루클린 사회의 밑바탕에 깔린 정서다. 흑인에다 너무 가난해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부랑아들은 일전 한 푼 없다는 절박함에 인생을 비관하고, 마약 중개업자들이 버젓이 집 앞에서 마약을 팔아도 막지 못하는 게 현실인 곳. 시 정부가 아이들을 형편없는 학교에 보내게 해도, 뉴욕시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곳. 작가인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당시 브루클린 사회가 처한 현실을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빵부스러기 같은 존재, 굴러다니는 골무 같은 존재, 과자 위에 드문드문 뿌려진 설탕 가루. 약속의 땅이라는 좌판 위에서 눈에 띄지 않거나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야 하는 점들. “믿음을 가지라!”는 슬로건이 걸린 브로드웨이 무대나 야구팀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빈민가의 설움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덕분에 우리는 시대가 흘러서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 곳곳의 불공정과 차별의 문제에 대해 재삼 숙고하게 된다.
과거의 딤즈는 뉴욕의 가난한 주택 단지에 사는 불행한 아이였다. 꿈도 없고, 집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안정감이나 야망도 없이, 집 열쇠를 가져 보거나 뛰어놀 뒷마당을 가져 본 적도 없는 아이, 집 열쇠를 가져 보거나 뛰어놀 뒷마당을 가져 본 적도 없는 아이. 예수님도 모르고 행군 악대 연습에 참여해 본 적도 없으며, 그의 말을 들어줄 어머니도 그를 이해해 줄 아버지도 그에게 처세법을 가르쳐 줄 사촌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딤즈는 더 이상 시속 78마일의 속도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열세 살의 소년이 아니다. / 124p
개미 떼의 이야기는 수수께끼이자, 매년 일어나는 끔찍한 공포이자, 도시의 전설이었으며, 뉴욕 빈민들의 지난한 삶에 부록처럼 따라붙는 또 하나의 암울함이었다. (…) 개미 떼는 여전히 하나의 상징으로 브루클린에 남아 있었다. 브루클린 공화국. 다저스 야구팀이 뉴욕을 떠난 후 그들의 빈자리는 주민들의 살맛을 앗아가 버렸고, 뼛속까지 흑인에다 너무 가난해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부랑아들은 일전 한 푼 없다는 절박함에 인생을 비관했다.
(…) 백인들은 하는 일마다 여러 분야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면서 점점 거대한 눈덩이처럼 성장했고, 위대한 미국의 신화, 빅애플, 잠들지 않는 도시와 같은 수식어들이 유행했다. 반면에 흑인과 라틴계 미국인들은 아파트 청소나 쓰레기 처리를 생업으로 삼거나, 음악 활동을 하거나, 교도소의 빈방들을 채웠다. 그들은 그렇게 투명 인간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지역사회의 한 계층으로 주어진 유색인종의 삶을 살았다. / 105p
차별과 억압, 빈곤과 무지로 척박해진 삶에도 희망은 있다. ‘우리 블록’이란 것은 없고 뉴욕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오늘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나를 품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말이다. 사람과 사랑, 연민과 인류애를 통해 변화와 희망을 엿보는 이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유쾌함을 잃지 않는 커즈웨이 사람들 덕분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미스터리와 감동, 유머, 의미까지 아우르는 기대 이상의 작품으로 내내 기억될 듯하다. 당장 읽어보고 싶은 소설책을 찾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