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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한 어리숙한 인간이 내재된 모순을 극복하고 삶과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희비극!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 전체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고전!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 셸리
키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술을 바르르 떤다. 중국식 창문의 하얀 손잡이가 은밀하게, 숨죽인 채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 것은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홍콩 총독부 차관보인 찰스 타운센드와 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던 키티는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면서도 남편인 월터가 훔쳐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관능적인 미소로 그녀에게 파고드는 찰스의 매력에 이내 두려움 따윈 밀어두기로 한다.
사실 키티는 일찍이 자신의 야심을 딸에게 투영하기 시작한 어머니 곁에서 자라나 ‘장차 아름다운 여자’로서 ‘눈부신 결혼’을 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스물다섯이 되는 해까지 이렇다 할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았고,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정부에 소속된 세균학자에게 도피하듯 결혼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월터는 자의식이 강한 데다 건방진 우월감과 차가움을 뛰어난 자제력으로 포장시킬 줄 아는, 유머 감각이라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남자였다. 게다가 결혼과 함께 홍콩에 오게 된 키티에게 있어 특별히 주목받는 위치라고 볼 수 없는 남편의 직업은 곧 식민지 총리가 될 애인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예의 바르고 상냥한 미소라는 가면을 쓴, 그 외에는 이렇다 할 매력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다운센드의 아내라니! 키티는 혹여 월터에게 자신의 불륜을 들킨다 하더라도 찰스가 자신에게 푹 빠져있다는 사실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두려울 게 없었다.
가스틴 부인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키티에게 모든 애정을, 가혹하고 효과적이며 타산적인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녀는 야망을 꿈꾸었다. 그녀가 딸에게 바라는 결혼은 그럭저럭 괜찮은 결혼이 아니라 눈부신 결혼이었다.
키티는 장차 아름다운 여자가 될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란 데다 어머니의 야심을 간파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야심은 그녀 자신의 욕망과도 부합했다. / 37p
그가 창피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머지않아 그가 좀처럼 자기 자신을 느긋하게 풀지 못하는 불행한 불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의식이 너무 강했다. 연회장에서 모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도 월터는 절대 그 행렬에 동참하지 못했다. / 54p


하지만 그날의 착각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월터가 키티에게 그녀의 불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노라 선언한 것이다. 그는 콜레라가 창궐한 메이탄푸에 책임자로 자원했으며 그녀에게 함께 갈 것을 강요한다. 만약 함께 가지 않는다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심지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찰스조차 그녀가 남편을 따라감으로써 조용히 자신들의 부정이 무마되기를 바라자, 이제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는 낙담한 채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메이탄푸로 향한다.
성벽의 총안 너머 역병의 무시무시한 손아귀에서 신음하는 도시, 하루에도 백 명은 좋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길거리에서 시체를 마주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곳. “위험하단 말이오. 이건 미친 짓이야. 자살 행위라고.” “그래서 먹는 거예요.” 요리사가 만들어 내온 샐러드를 맛보는 키티, 창백해진 얼굴로 이내 자기 몫으로 나온 샐러드를 함께 먹기 시작하는 월터의 모습. 마치 죽음을 유혹하듯 매일 샐러드를 먹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역병에 대한 공포로 두려워하면서도 자괴감과 사랑의 상처 그리고 월터를 향한 악의로 죽음과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한 키티, 자신을 배신한 아내와 그런 아내를 사랑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월터의 화해될 수 없는 감정을 이처럼 기괴한 장면으로 연출해낸 작가의 필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라니. 키티는 정체불명의 두려움에 휩싸였다. 출입이 통제된 도시 건너편 죽은 선교사의 집에서 그들은 세상과 한없이 동떨어진 것만 같았다. 세 명의 외로운 인간들, 그들은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다. / 135p
“모르겠습니다, 당신 곁에 다가가는 것이 소름 끼칠 만큼 당신이 그를 반감으로 가득 채웠는지, 그가 사랑에 불타오르면서도 어떤 이유 때문에 그것을 내색하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당신들이 이곳에 자살하러 왔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 155p
그런데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키티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다. 특히 안정된 삶을 버리고 헌신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돕는 수녀들의 숭고한 정신은 그녀를 감동시킨다. 동료들이 질병과 빈곤, 향수병으로 하나둘 죽어 가는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쾌활하고 단단한 마음을 잃지 않는 수녀들은 그녀로 하여금 이제껏 자신의 삶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이었는지 반성하게 한다. 이제 그녀는 작은 건물의 계단 위에 앉아서 넘실대는 강물과 병마에 시달리는 도시를 향해 구불구불 뻗어 난 길을 바라보며,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 전체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서머싯 몸은 어리석고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작가인 게 분명하다. 키티는 월터에게 속되고 천박했던 자신의 과거와 그녀 자체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용서를 구하지만, 월터는 결국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월터가 죽기 전에 남긴 “죽은 건 개였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은, 화해하기를 거부하고 끝내 자멸하고 마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키티가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 홍콩에서 옛 연인 찰스와 다시 한 번 육체관계를 맺으며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장면은 인간의 나약함과 인생의 아이러니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 소설 도입부에 인용된 셸리의 시처럼, 작가 서머싯 몸은 온갖 오색 베일을 에두르고 있는 이들 인간에게서 이성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충동, 어리석음, 이중성, 불완전함과 같은 진짜 본 모습을 들여다본다.
“도(道).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것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 236p
“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역겨움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이따금씩 혼돈 속에서 창조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그린 그림, 그들이 지은 음악, 그들이 쓴 책, 그들이 엮은 삶.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것은 아름다운 삶이죠. 그건 완벽한 예술 작품입니다.” / 268p
이처럼 『인생의 베일』은 한 어리숙한 인간이 내재된 모순을 극복하고 삶과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희비극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인 키티뿐만 아니라 월터, 찰스, 가스틴 부인 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서 저마다의 방식에 따라 인간의 이중성과 속물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히 불편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어쩌면 작가는 이것이 나를 비롯해 누구에게나 내재된 ‘인간의 굴레’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게 있어 이 작품은 『케이크와 맥주』와 더불어 읽는 재미는 물론 고전의 의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서머싯 몸의 작품을 기웃거리고 있을 예비 독자분들에게 꼭 읽어보시라 추천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