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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평점 :

기계적인 삶을 깨뜨리고 스스로 다시 깨어나는 삶을 지향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
올 해 꼭 단 하나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할 것이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 121p
1845년 봄, 소로는 스승 에머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호수의 가장자리에 손수 집을 짓고, 직접 노동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2년 2개월, 『월든』은 바로 이 기간 동안 소로가 월든 호수에서 생활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된 작품이다. 자칫 『월든』을 어느 지성인의 소박한 숲속 생활기 정도로 오해하기 쉽지만,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한 초월자이자 구도자인 한 지성인의 고상한 신념을 담은 예술 작품에 가깝다. “나는 낙담을 칭송하는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른 아침, 자기 횃대 위에 서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수탉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랑스럽게 펼쳐놓을 것이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내 이웃을 깨우기 위해서라도.”라던 머리글처럼, 기계적인 삶을 깨뜨리고 스스로 다시 깨어나는 삶을 지향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다.
인간의 거짓된 사회여,
세속적인 위대함을 위해
천상의 모든 안락이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구나 ? 조지 채프먼의 시 / 50p
삶의 주된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소로는 손수 잣나무를 벌목해 호반에서 30미터 떨어진 곳에, 하버드 대학이 방 하나를 빌리는 데 필요한 임차료 30달러보다 작은 돈으로 집을 짓고서 생각한다. ‘문명의 여러 증거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많은 주민의 생활 조건이 야만인만큼 나쁘지 않다고 상상한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스스로 소박한 숲속 생활을 자처한 실험을 통해 차츰 깨달아간다. 우리는 ‘내부의 새로 획득된 힘과 열망에 의해’ 깨어나고, ‘공장 종소리가 아니라 천상 음악의 파동과 공중을 가득 채우는 좋은 향기’로 깨어나야 하며, 우리가 ‘추락해버린 더 높은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또한 뱀이 허물을 벗고 애벌레가 고치 외투를 벗고 나오려면 그 안에서 부지런히 몸을 확장해야 하듯, 우리 역시 ‘가장 겉에 있는 우리의 외피이며 속세의 번잡한 장식물’로부터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벽으로 둘러싸인 집에 우리의 몸과 정신을 가둘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둘러싼 벽’들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을. 이는 반드시 우리에게 자연인이 되자는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우치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면서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평가는 우리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에 비하면 허약한 폭군이다.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개인의 운명을 암시, 아니 결정한다. 우리는 공상과 상상이라는 서인도 제도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 17p
현대의 새로운 신화에서 이 철마가 아니라면, 어떤 날개 달린 천마와 불뿜는 괴룡을 대신 집어넣을 수 있을까? 이제 지구는 거기에 살기 합당한 철마라는 종족을 얻은 듯하다. 만약 겉으로 보이는 것이 실재라면, 인간은 고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연의 힘을 자기 하인으로 삼은 듯하다. 만약 기관차 위에 매달린 증기 구름이 영웅적 행위에서 나온 땀방울이고, 그 구름이 농부의 들판 위에 떠 있는 구름처럼 혜택을 내려주는 것이라면, 이제 자연의 힘과 자연 그 자체가 기꺼이 인간의 운송 사업에 동참하면서 인간을 경호할 것이다. / 159p



소로는 월든 호수를 가리켜 ‘콩코드가 자신의 왕관에 박아 넣은 최고급 보석’이라 묘사한다. 『월든』의 백미는 곳곳에서 돋보이는 시적인 문장에 있다. 비유와 상징, 역설과 모순, 신화와 우화의 이미지가 문장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있어 그 어떤 문장도 허투루 읽히지 않는다. 이를 테면 그에게 있어 월든 호수의 모래 흐름은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서리이자 ‘봄’이다. 모래 흐름은 녹색의 꽃피는 봄보다 앞에서 오며 ‘겨울의 나쁜 증기와 소화불량을 치료해주는 세정제’다. 마치 지구가 아직도 ‘기저귀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어린애 같은 손가락을 온 사방으로 내뻗는’ 것 같다. 붉은색 개미와 덩치 큰 검은색 개미의 그룹의 전투 속에서 인간 전투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이 살벌하면서도 유혈적인 광경에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월든』은 동물들의 울음소리, 매의 비상, 되강오리의 웃음 등 자연의 모습과 소리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총제적인 감각이 소로 내면에서 어떻게 시화되고 문장이 되어 가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때로는 완고한 언어로, 때로는 비유와 상징을 아우르는 시적 언어로 행간을 가로지르는 소로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탐미하며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한다.
아무튼 나의 귀에는 공기가 조율한 멜로디가 되어 들려온다. 숲속 모든 잎사귀, 솔잎과 대화를 나눈 가락이고, 자연의 힘이 조율하여 온 계곡에 울려 퍼지게 만든 바로 그 소리다. 어떤 의미에서 그 반향은 독창적인 소리이고 그 안에는 마법과 매혹이 있다. 그것은 종소리 중 가치 있는 부분의 반복이면서 동시에 숲의 소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숲속 요정이 들려주는 사소한 단어 혹은 간단한 곡조를 담아 부르는 노래다. / 166p
자연 한가운데 살면서 오감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아주 검은 체액이 생길 수 없다. 어떤 폭풍우가 불어온다고 해도 건강하고 정직한 사람 귀에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춘풍처럼 들린다. 그 어떤 것도 소박하고 용감한 사람 마음에 천박한 슬픔을 강요하지 못한다. 사계절의 우정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한,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을 부담스러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 176p
마을을 둘러싼 미개척 숲과 초원이 없었더라면 마을 생활은 정체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야생이라는 강장제가 필요하다. 때때로 알락해오라기와 뜸부기가 숨어 있는 습지를 걸어 건너면서 도요새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주 야성적이고 외로운 닭이 둥지를 틀고, 밍크가 땅에 바싹 배를 대고 포복하는 사초밭 냄새를 맡아야 한다. 우리는 진지하게 모든 사물을 탐구하고 배워야 한다. 동시에 모든 사물이 신비하고 탐험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고, 땅과 바다가 무한히 야생 상태로 남아 있기를 빌어야 한다. / 419p
『월든』이 자연 속에서 고요히 빛나는 지성인의 음성이라면, 소로의 또 다른 대표작인 「시민 불복종」은 불의한 정부에 저항하는 날카로운 의식이다.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정부란 시민 편의에 봉사하기 위한 조직일 뿐이며 사람들이 이런 정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결국에는 이런 정부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투표’하라, 단 한 장의 투표용지가 아니라 당신의 모든 영향력을 그 안에 집어넣으라고 강조한다. 소수는 그저 과반에 순응하면 무력해지지만 온몸의 힘을 다해 제동을 걸고 나서면 그때는 못 말리는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불의가 남에게 불의를 저지르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 법을 위반’하라는 저 맹렬한 선언 앞에서, 우리 모두는 불의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정부의 기계를 멈추게 하는 ‘반대 마찰’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하고 단호하게 외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 19세기 지성인의 목소리에 우리가 다시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오늘날 정직한 사람과 애국자의 시세는 얼마인가? 그들은 망설이고, 후회하고, 때로는 청원을 넣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하면서도 효과를 미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의를 가지고 기다리면서 남이 그 악을 척결해 그들이 더 이상 후회하는 일 따위는 없기를 바란다. 기껏해야 그들은 값싼 투표를 하거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정의를 창백한 얼굴로 쳐다보거나 신의 축복을 기원할 뿐이다. / <시민 불복종> 중에서 454p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 좋은 나쁘든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없고 몇 가지만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걸 할 수 없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459p



소로는 ‘지성은 베어내는 자이다. 그것은 사물을 베어내고 분간하면서 사물의 비밀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는 『월든』과 「시민 불복종」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려 했고 또 행동하는 실천가가 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202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 두 작품을 하나로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은 이 작은 소시민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만약, 올 해 꼭 단 하나의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나는 이 책을 적극 추천할 것이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내 이웃을 잠 깨우기 위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