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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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체면과 가식이 아닌 삶의 유희와 욕망에 얼마나 순순히 몰입할 수 있을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쫓아다닐 이유를 충분히 얻은 것 같다!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 나는 여러 대상에게서 공격을 받았다.’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가 서머싯 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술회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작가 에드워드 드리필드를 실제 토머스 하디를 모델로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하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이다 싶더라니 소설 테스의 작가였다. 서머싯 몸은 토머스 하디를 염두에 둔 적이 없고, 그를 딱 한 번 만났을 뿐 그의 생애에 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밝혔지만, 작품해설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또 실력보다는 처세술에 능한 작가 앨로이 키어라는 인물 역시 서머싯 몸의 이십 년 지기인 소설가 휴 월폴로 추정되는 바, 실제 월폴이 이 소설의 출판을 막으려 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사뭇 궁금해진다. 이처럼 실제 인물을 원형으로 삼음으로써 발생되는 각종 논란과 적의를 무릅써가며 당대 문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 서머싯 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월폴을 달래기 위해 서머싯 몸이 보낸 편지에 만약 자네가 이 작품에서 자네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가 대동소이할 뿐 결국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세.”라고 쓰인 글귀에서 알 수 있듯, 그 자신에게조차 냉소적일 수 있었기에 이처럼 과감하고 도발적이며 솔직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덕분에 나는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쫓아다닐 이유를 충분히 얻은 것 같아 어쩐지 기쁘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른 독자 분들도 이런 기분을 느껴보셨음 하는 마음에서 서둘러 밝혀두고자 한다.

 

 

 

성공은 어쩌면 잘 만들어진자의 것이 아닐까

 

 

  작중 화자이자 작가인 어셴든은 동료 작가 앨로이 키어로부터 거장으로 칭송받다가 작고한 소설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드리필드의 전기를 집필하게 된 앨로이 키어로서는 과거 드리필드가 무명 시절인 시절부터 알고 지낸 어셴든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셴든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드리필드와 앨로이 키어가 칭송해마지 않는 드리필드와의 간극 사이에서 마음이 겉도는 것을 느끼며 자리를 뜬다. 그럼에도 이 날의 만남은 어셴든을 열다섯 살이었던 시절, 고향 블랙스터블에서 처음 드리필드와 그의 아내 조지를 만났던 거리로 그를 데려간다.

 

 

 

  목사인 숙부와 숙모는 드리필드 부부를 가리켜 평판이 형편없는 사람들이라 비난하며 어셴든에게 그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단속한다. 집안일을 돌보는 메리앤조차 로지가 한때 술집에서 일한 데다 누구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이 남자 저 남자 갈아치우며 만났다고 이죽거린다. 또 마을 사람들은 그들 부부와 어울려 다니는 이 고장 석탄 상인인 조지 경조차 천박하다며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늘 체면이라는 가면을 둘러쓰고, 실제보다 더 부유하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꾸미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았던 어셴든은 드리필드 부부의 격의 없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줄 아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때문에 어셴든은 그들과의 만남을 비밀에 부치고, 이들이 외상값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한 뒤에도 계속해서 만남을 지속한다.

 

 

 

그랬더니 그 사람 말이 뉴캐슬로 올라가는 석탄선의 사내들과 어부들, 농장 일꾼들은 신사나 숙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니 굳이 왜 그런 인물들에 대해 쓰냐고?” 숙부가 말했다.

내 말이 그거예요.” 헤이포스 부인이 말했다. “세상에 저속하고 사악하고 악랄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 123p

 

 

사람들은 문장에서만 아니라 가자미, , 하루, 사진, 행동, 복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전도유망하고 훌륭한 소설을 써 온 젊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암시를 하든 열변을 토하든 강렬한 어조나 매력적인 어조로 아름다움에 대해 뇌까리고, 근래 옥스퍼드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그곳의 찬란한 기운을 간직한 젊은 남자들은 예술과 인생, 우주를 논하는 주간지의 빽빽한 지면에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무심코 던져 넣는다. 그 말은 딱할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 그들이 얼마나 조몰락거렸으면! / 140p

 

 

 



 

 

 

 

  좀 더 솔직하게 말해 어셴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쾌락과 유희를 대변하며 이른바 케이크와 맥주로 상징되는 그녀, 로지였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유부남인 조지와 내연 관계를 유지하며 결혼한 후에도 여러 남자들과 자유롭게 잠자리를 가진다. 외상값을 떼먹고 야반도주를 하고서도 죄책감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다이아몬드 상인으로부터 260파운드에 달하는 망토를 선물 받고 즐거워하던 그녀가 상처받은 얼굴로 분개해하는 어셴든에게 안달하고 질투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 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고 어르는 모습은 천진난만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지배계층이 지닌 구시대적인 관점의 반대편에 서있는 인물로, 체면과 가식이 아닌 삶의 유희와 욕망에 순순히 몰입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리어 되묻는다. 너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느냐고, 진짜 네 모습은 무엇이냐고. 그래서 어셴든에게 속삭이는 그녀의 대사가 그 어떤 장면보다도 내 마음을 붙든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줘.”

 

 

 

  훗날 로지가 오랫동안 내연관계에 있었던 조지와 달아나면서 드리필드는 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드리필드가 부정한 아내의 도주로 인해 난파되었을 때, 그의 성공 가능성을 일찍이 점찍어 둔 바턴 트래퍼드 부인의 도움으로 그의 작가적 위상은 나날이 높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트래퍼드 부인은 이곳저곳 다니면서 편집자들은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기관의 소유주들을 만나고, 만찬 자리를 마련해 도움이 될 만한 인사들을 모두 초대해 드리필드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의 사진이 주간지에 실리도록 손을 쓰고 인터뷰를 직접 수정하기까지 하면서 대중 앞에 끊임없이 그를 내세운다.

 

 

 

  무릇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타고난 기량만큼이나 외부의 여러 요인에 의해 얼마나 잘 만들어질 수 있는가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작가는 자신의 재능이 발굴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다한들 세상 밖으로 자신의 작품을 내세울 수 없다. 한 때 잠시 이름이 났다한들 평단과 여론으로부터 꾸준히 관심을 받지 못하면 과거의 무수한 작가들이 그러했듯 반짝, 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작가 스스로 문단의 시류에 적절하게 올라탈 줄 알고 그럴 듯한 이미지와 처세술 그리고 후원과 같은 외부의 작용 역시 동반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렇듯 서머싯 몸은 거장이라는 명성 역시 잘 만들어진 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트래퍼드 부인을 통해 여실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타고난 처세술을 이용해 스스로 성공한 작가의 이미지를 만들 줄 알았던 앨로이 키어 등의 인물을 통해 문단의 현실과 내막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드리워진 허울을 경계하고자 한다.

 

 

 

성가시게 굴고 싶지 않지만 평론가께서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용무가 없으시다면 사보이 호텔에서 같이 점심을 들며 제 책의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지 않은지 말씀해 주실 수 없겠는지요? 로이보다 점심을 더 맛있게 주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평론가는 생굴을 대여섯 개 삼키고 어린 양고기의 등심을 한 조각 먹고 나면 대개 본인이 뱉은 말까지 같이 삼키게 된다. 이후 로이의 다음 소설이 나왔을 때 그 평론가가 로이의 차기작에서 커다란 진전을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적 정의라 하겠다. / 22p

 

 

평론가는 형편없는 작가에게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고 세상은 전혀 가치 없는 자에게 열광할 수 있지만 두 경우 모두 오래가지는 못한다. 세상의 어떤 작가도 상당한 재능없이 에드워드 드리필드처럼 오랫동안 대중을 사로잡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선택된 자들은 대중성을 비웃는다. 그들은 대중성을 평범함의 증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후대 사람들의 선택이 한 시대의 무명작가들이 아니라 유명한 작가들 중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불후의 명작이 언론의 외면 속에 사장되는 일이 계속되어 왔을지 몰라도 후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 길이 없다. 또한 후대 사람들이 지금의 베스트셀러를 모조리 폐기 처분하더라도 결국 무엇을 고른다면 지금의 베스트셀러 속에서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하튼 에드워드 드리필드는 당선권 안에 있다. / 138p

 

 

 




 

 

 

 

  소설 속에서 서머싯 몸은 성공한 작가가 반드시 위대한 것이 아니며, 성공을 넘어 위대함으로 나아가려면 오랫동안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그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것을 치열하게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이 한 편의 작품을 넘어서 또 다른 작품들은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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