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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33
김희선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한 노인의 기괴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미스터리!
어떤 거대한 흑막이, 이제껏 알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마지막까지 질주하듯 우리를 쫓아온다.
이 소설은 한 노인의 기괴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기자인 김영주는 광장의 회전교차로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한 노인이 갑자기 배낭에서 나일론 끈, 청 테이프, 공구 상자, 전동 드릴 따위를 줄줄이 꺼내는 모습을 우연히 포착한다. 교통 신호기에 전동 드릴을 수직으로 세워 뾰족한 부분이 정면을 향할 수 있도록 청테이프로 둘둘 감은 뒤, 다음으로 배낭 속에서 갈색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시는 노인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교통신호 제어기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그를 보고 경악한다. 그녀의 비명 소리와 동시에 전동 드릴의 날이 노인의 이마를 뚫고, 피와 뇌수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이 어마어마한 광경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휘청휘청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지며 생각한다. 이게 현실일 리가 없어.
인간은 누구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지난 해, 노인 혐오와 배제라는 사회적 문제와 서스펜스를 결합한 작품 『죽음이 너희를 갈라 놓을 때까지』를 발표한 김희선 작가의 신작이다. 전작이 팔곡마을을 배경으로 갑자기 사라진 노인들의 향방을 추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처럼, 이번 작품의 도입부 역시 한 노인의 이상한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동료 기자인 최에게서 극동리 마을 사람 세 명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김영주는 마침 그 날 광장에서 죽은 노인이 극동리 마을 사람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이들 사이에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일단 병원에 있는 김영주의 부탁으로 대신 취재에 나선 최는 실종되었다던 마을 사람들의 실종 신고가 이장의 전화 하나로 취소되고, 노인의 자실을 굳이 농약 중독 정도로 수습하려는 검시의의 태도에 의문을 가진다. 정말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모두가 비밀로 하려는 그 어떤 게 있는 걸까. 최는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품고 있을지 모를 극동리로 향한다.
“그게 아니라니까. 그 할아버지 죽음엔 분명 뭔가 있어.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모두가 비밀로 하려는 어떤 게 있다고.” / 26p
“사라진 셋부터 얼른 처리하자고. 마침 노인네가 알아서 죽어 줬으니, 대충 뒤집어씌우면 될 거야. 마을 개발을 둘러싸고 충돌이 있었고, 세 사람을 죽인 노인이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했다, 정도? 그러려면 먼저 시체를 찾는 게 급선무겠지만 말이야.” / 38p
극동리. 오래전 탄광업이 활황일 때는 마을에 활기가 넘쳤지만 광산이 모두 문을 닫은 뒤 마을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아 있던푸른 숲과 계곡이 사라지면서부터였다. W시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바이오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나무를 베어 산을 깎아 냈는데, 그 덕분에 이 죽은 듯한 마을에 다시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바이오제네시스 회장 노이균의 몫이 컸다. 그는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는 신생 영화사 K프로덕션이 대작 SF영화인 「배틀 온 마스」 촬영을 위해 화성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할 만한 장소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극동리에 이를 추진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취재를 거듭하던 최는 노이균이 추진하던 일을 반대하고 나선 자가 바로 광장에서 죽은 노인, 이만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극동리가 앞으로 죽음의 땅이 될 거라고, 그게 다 바이오산업단지의 영화 촬영 세트장 개발 허가를 받기 위해 반대급부로 내준 폐기물 처리장 건설 때문이라고, ‘신재생 에너지발전소’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시설이 완공되면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산업 폐기물이 몰려올 테고, 모든 주민이 각종 희귀암에 걸려 비참하게 죽어 갈 거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촬영지를 배경으로 화려한 테마파크가 들어설 테고, 마을은 인파로 크게 활기를 띄게 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안 그런 척, 전과 같은 척 하지만, 난 알 수 있어요. 할아버지들도, 할머니들도, 다른 아저씨나 아줌마들도 다 똑같아요. 하지만 그건 웃는 게 아니에요. 웃는 표정을 흉내 내는 얼굴? 아니, 원래는 무표정한 얼굴 위에 웃는 덮어쓴 것 같은 그런 괴상한 얼굴……? 그런데 며칠 전 진짜로 이상한 걸 봤어요. 그날은 학교에서 좀 늦게 왔는데, 어둑어둑한 길 공판장 앞에 아저씨들 몇 명이 서 있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어요. 그 아저씨들 머리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그건 없어지지 않았어요.” / 65p
“장마철이 지난 뒤 숲길을 걸어 보십시오. 거기 얼마나 많은 독버섯 무리가 돋아나 있는지. 그런 다음 돌아와 당신이 사는 공간을 둘러보십시오. 어떻습니까? 그 둘은 이상하게 닮아 보이지 않습니까?”(출처: 『독버섯의 시대』, 즈웨데 틸루 저)
한 인류학자는 20세기 이후 지구 곳곳에 생겨난 도시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그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공간을 받아들인다는 사실 아닐까.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기괴한 거주지를 사랑하기까지 한다. 그 사랑에는 뭔가 특이한 것이 있어서,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고, 혐오가 광신에 가까운 집착과 공존하지만 말이다. / 71p


이쯤이면 독자들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숲이 파괴되어 점차 화성처럼 변해가는 마을의 풍경, 이에 반대하는 한 인물의 극단적 선택. 한 마을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윤리에의 충돌, 배제와 혐오로 얼룩진 이웃 간의 갈등의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하고.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진실을 아직 다 보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어떤 거대한 흑막이, 이제껏 알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마지막까지 질주하듯 우리를 쫓아온다. 때문에 ‘껍데기들, 가짜를 모두 처치해야 해. 안 그러면 다 죽어. 당신들도 나도 끝장’이라던 노인의 말이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되며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다 없애야 한다. 모두 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절멸이다. / 234p

미스터리와 SF적 상상력을 결합한 소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일단 한 번 손에 들었다하면 마지막까지 내달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높은 작품이다. 극중작인 영화 「배틀 온 마스」의 시나리오와 소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하나로 귀결시키고야마는 이야기 구성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극동리라는 이 이분법적인 공간이 주는 기괴한 느낌은 단연 인상적이다. 지상 위에서는 쇠락한 마을의 재건을 꿈꾸는 노인들의 망상이 붉은 먼지처럼 떠돌고, 은폐된 지하 아래에서는 불사를 꿈꾸는 음험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곳. 마을 내부에 화성처럼 꾸며놓은 영화 세트장이 들어서있는 이 이질적인 풍경처럼, 작가는 극동리라는 공간을 이용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여긴 대체 뭐지?’ 하는 물음과 함께 독자들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손에 손을 잡고 몽환적인 표정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표지 속의 사람들이 극동리의 누군가인가, 최인가, 어쩌면 이 소설을 쭉 바라보고 있던 나는 아닐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