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개정 증보판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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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특별하진 않아도 저마다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알아볼 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이 펼쳐진다!

 

 

 

  얼마 전, 문밖에만 나서도 맛집이라 불리는 식당가와 병원, 각종 프렌차이즈 상가가 즐비한 곳에서 지내다 유년시절의 고향이었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걸어도 걸어도 눈에 띌 만한 것이라고는 없는, 정말 변화라고는 없는 한결같은 동네. 그나마 집 앞 텃밭에서 자라나는 옥수수가 이제는 키 높이만큼 자란 게 변화라면 변화인 셈이랄까. 어쩌다 내내 비어있던 건물이 공사를 시작하는 모양새여서 내심 기대했는데, 근처에 있던 새마을금고가 자리를 이전하는 거라는 소리를 듣고 단박에 김이 샐 정도였다면 말 다했다. 쿠스미 마사유키와 타니구치 지로의 우연한 산보에 의하면, 이상적인 산책은 태평한 미아가 되어 보는 일이라 했던가. 말 그대로 나는 참으로 태평한 마을에서 태평하다 못해 심심한 미아가 된 마음으로 곧잘 거닐었다.

 

 

 

  그렇게 약국이나 병원을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하고 그 흔한 은행 ATM기조차 없는 이 심심한 동네로 나는 왜 돌아왔을까, 스스로도 궁금해지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꼭대기 층에 이사 온 분 맞죠?” 일면식이라고는 없는 데다 요즘은 다들 마스크를 써서 더더욱 알아보기 어려운 참인데, 한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걸 보았는지 집에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물총 장난감이 새 것 있다며 선물로 주셨다. 그 사이 매일 아침 골목길에서 수다를 떠는 이웃 언니도 생겼다. 이사를 오기 전에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이름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본 적이 없을 만큼 이웃과 대면대면하게 지냈는데, 덕분에 가을이 되면 아이들과 도토리 따러 갈 수 있는 곳도 알게 되고 동네 사정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걷다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심심하기만 했던 동네가 사람으로 인해 색이 덧입혀진 느낌이었다. ‘아마도 우린 이렇게 우주를 만드는 걸까.’ 문득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속의 이 글귀가 내 마음에 확 들어와 앉았다. 집 안에만 있을 때는 몰랐던,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는 게 어려웠던 때에는 몰랐던 나의 세계가 조금은 넓어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산타클로스가 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하고 취업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던 저자는 언젠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늦게나마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출발은 휴먼다큐 KBS <인간극장>의 취재작가였다. 신문에서, 뉴스에서, 제보에서 발견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하루. 청바지에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선 소똥이 질펀하게 쌓인 시골 흙길과 논두렁을 걸어 다니며 애교는 기본이고, 수다 맞장구를 쳐가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사근사근한 손녀딸이 되어야 하는 일상. 이토록 다른 사람의 삶에 깊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또 있었을까. 덕분에 60년 만에 생모와 오빠를 찾아 나선 오복식 씨를 통해서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며느리 모마리 씨를 통해서는 부부는 함께 이겨내야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어느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취재했을 땐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42.195킬로미터 어둠 속을 뛰는 기분은 어떤지 알아요?나에겐 힘든 일이에요. 작가라면 최소한 공부라도 하고 전화를 해야죠.”하고 따끔한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은 단순 취재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과 삶을 다루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고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그렇게 배운 것이다.

 

 

 

  어떤 출연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단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방송에 나가냐고.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일만 일상을 지켜보세요. 우리가 주인공이고, 우리 삶이 다 드라마예요.” 우리는 미처 잊고 살지만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없다. 그녀는 그저 좋아서 하는 일, 소박하게 살아가는 일상, 웃는 목소리에 느껴지는 진심, 따뜻한 말 한마디에 벅찬 행복, 먹먹한 눈물에 담긴 희망, 그런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알아볼 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진솔한 삶이 펼쳐진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특별하진 않아도 저마다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주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프리뷰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내가 우주의 티끌만큼 작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껴질 때, 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버거울 때, 내가 나인 게 맘에 들지 않고 너무도 못생겨 보일 때. 20일만, 그런 우리의 일상을 프리뷰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결정적 1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35p

 

 

 




 

 

 

 

  책 속에는 불운한 가정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술만 마시면 평소와 완전히 달라졌던 아버지, 기숙사에서 생활하느라 수능날에도 엄마가 싸준 도시락 대신 편의점에서 사 온 것 같은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서글픈 기억, 가족과 헤어져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홀로 떨어져 나와야 했던 시절, 밑바닥을 만난 가난하지만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던 루이자 메일 올컷의 말처럼,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려 한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오는 날마다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빨간 티코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던 순간을 밤의 피크닉이라고 부르고, 미니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저금통을 털어 문구점에서 산 필통을 머리맡에 올려놓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동생의 세계를 지키려 한다. 비록 고단하고 불행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지켜주고 싶은 이가 있기에, 추운 겨울 속에서도 꼭 껴안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을 본다.

 

 

 

어둠 속에 보이지는 않아도 누군가에게만 반짝이는 별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별이었다.

누구나, 누군가의 별이었다. / 65p

 

 

우리의 첫 만남과 우리가 나눈 대화와 우리가 들었던 노래와 우리가 만든 추억도 모두 기억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쉽진 않다. 서로가 성긴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다시 엮어가는 것처럼, 여전히 만들어갈 우리의 이야기는 넘쳐나니까. / 74p

 

 

산타클로스는 있다. 살다 보면 지켜주고 싶은 거짓말 하나쯤은 있다.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은 착한 거짓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 간절히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받는 아이였다. 우리를 사랑한 누군가가 온 힘을 다해 우리를 지켜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더럽고 무섭고 힘들고 슬픈 것들을 모르고 자랐다.

시간이 흘러 더럽고 무섭고 힘들고 슬픈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된 후에는, 이제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지켜주려 한다.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산타클로스가 된다. / 110p

 

 

  겪어보니 꿈이라는 건 간결한 한 줄 정의가 아니고, 달성해야 하는 목적도 아니며, 끝나고 마는 엔딩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꿈은 이루는 일이 아니라 이어가는 일에 가깝더라는 글귀가 내내 마음에 남는다. 살다보면 삶이란, 어떤 특별한 목표를 이뤄내는 것보다 평탄하게 이어가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내 삶에 찬란하고 어떤 극적인 장면은 없을지라도 담담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를 칭찬해주어야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나의 삶을 사랑해주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빛을 보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라던 어느 소설의 문장처럼 언제나 빛나는 뒤편에 있다. / 266p

 

 

 



 

 

 

 

  지금 어디에선가 어둡고 컴컴한 길을 걷고 있을 이들에게 책의 글귀를 빌어 이 말을 건네주고 싶다. “어둠 속이 너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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