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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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멀고 먼 타향에서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들여다보다!

 

 

 

 

  뭉우리돌. 낯선 이 이름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뭉우리돌이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김구의 백범일지에 의해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전해져온다.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가 말하기를,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하니 오히려 김구는 이 말을 영광으로 여기며,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책의 제목을 전 세계 곳곳에서 뭉우리돌처럼 박혀 대한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이들을 기리며 지었다고 밝힌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에 이르기까지, 가난과 핍박의 역사 위에 쌓아올린 한인들의 독립운동사를 추적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형태의 뭉우리돌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뭉우리돌의 이야기

 

 

  이 책의 첫 여정은 우연히 인도의 델리 레드 포트에서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마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놀랍게도 레드 포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도 영국군 총사령부 주둔지이자, 우리에겐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지였다. 인면은 인도와 버마를, 전구는 전투 지역을 뜻하는 말로 이를 이어 붙이면 인도 버마 전투 지역에 파견된 공작대가 된다. 인도에 간 광복군이라니, 참으로 뜻밖이다 싶을 만큼 생소한 광경이다. 왜 임시정부는 그 먼 인도까지 광복군을 보냈던 걸까.

 

 

 

  그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 참전국이라는 지위 때문이었다. 연합국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이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전후 강대국들에게 자주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카드였고, 인면전국공작대는 참전국 지위를 얻기 위한 강력한 명분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임시정부는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독립에 필요한 일이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고, 인면전구공작대는 이런 노력의 산물인 셈이었다. 저자는 뜻밖의 낯선 곳에서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고 나니 레드 포트의 고목 하나, 허물어져 가는 건물 하나, 현지인들의 표정 하나까지 모든 게 다르게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대원들은 이 빈 성터 어디쯤에 머물렀을까, 거기서 그들은 매일 밤 어떤 별을 보며 고향을 그려보았을까. 지식이 더해지고 관점이 바뀌자 델리의 유명 관광지는 이렇듯 전혀 다른 이야길 하고 있었다. 덕분에 세계일주를 하겠다던 그의 계획은 이때부터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는 예상치 못한 여정으로 돌연 바뀌어버린다. 그렇게 표지판 하나 없는 사적지, 이력 하나 쓰여 있지 않은 비석, 무덤조차 쓰지 못한 수많은 무명 투사들 그리고 그곳에서 뿌리를 이어가는 후손들, 우리에게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던 찬란한 투쟁의 이야기가 막이 열린 것이다.

 

 

 

국화가 화병에 다 꽂히자 적막 속에 빛이 들고 안온함이 퍼져나갔다. 한 송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쌓이면 풍경을 바꿀 수 있다. 명이 생인 까닭이고, 생이 명인 이유다. 관심은 살풍경을 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꽃이 시들기 전 누군가 이 묘지를 방문한다면 분명 그들도 나와 같은 자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니 말이다. / 58p

 

 

해변에 바투 서 멍하니 수평선을 응시했다. 철썩이는 파도는 이 해변에서도 어김없이 하얀 포말을 쉼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 너머에 대한민국이 있었다. 고국의 바다도 분명 이 순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고향과 멕시코의 바다는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살리나크루스 해변은 멕시코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자 돌아갈 수 없던 사람들의 비통한 삶의 첫 마디이지 않나. / 79p

 

 

 




 

 

 

 

  애니깽.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들을 반긴 건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이 식물을 자르고 날라야 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다. 부강한 나라에 가 돈도 벌고 잘 살게 해준다는 이민 브로커의 말에 속은 이들은 돼지보다 싼 몸값으로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찌는 듯한 살인 더위까지 견뎌내야 했다. 그나마 4년이라는 계약 노동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을사늑약과 경술극치로 일제에 의해 꿈은 무참히 짓밟혔다. 꿈이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던 암담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만도 없었기에 이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놀랍게도 멕시코 땅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다. 나라를 떠날 때도, 척박한 멕시코에서 생사를 넘나들 때도 대한제국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고 버려졌단 절망감 앞에 조국을 원망하며 등을 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건만 그들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숭무학교를 설립하며 뿌리를 잊지 않으려 했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위대한 투쟁의 역사가 멕시코라는 땅 위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도 잠시, 스산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한 풍경으로만 남은 과거 애니깽 농장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들이 겪었을 고단함과 절절함이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는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먹먹한 마음으로 한동안 사진만 바라보았다. 쿠바의 아바나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관 건물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낡은 철 계단이 옥탑방으로 이어져 있는 옥상, 널브러져 있는 집기와 한참 쓰지 않은 듯한 개수대, 마치 잡동사니를 모아둔 영화의 미장센 같아 보였다던 저자의 말은 과언이 아닌 듯했다. ‘기억은 망각 앞에 희미해지고 역사는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이제는 망각과 무관심만 남은 한인들의 옛 사랑방이 그렇게 스러져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

 

 

 

쿠바의 한인 중에 친일파도 있었다. 그들은 외국인 증명서에 국적을 일본으로 등록하고 이를 도리어 영광으로 여겼다. 친일 언행도 서슴지 않았는데 걸핏하면 쿠바 내 독립운동을 헐뜯고 다녔다. 심지어 일본인회에 등록하고 회비를 꼬박꼬박 납부하며 일본을 찬양하기까지 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조상들, 그들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친일. 그 망령의 역사는 쿠바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 181p

 

 

한인 후손을 찾는 건 아델라이다 회장의 도움이 있으면 얼마든 가능한 일이었다. 또 김기헌 선교사도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누가 누구의 자손인지 몰라 전달하지 못하는 서훈이 쿠바에만 15개쯤 된다. 또 서훈이 가능한 독립운동가 후손이 100명 가까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간에 파묻힌 독립운동가 후손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내고 싶지만 이건 내 능력 밖 일이었다. / 232p

 

 

한인비행사양성소교육장을 촬영한 옛 사진 등 귀중한 자료가 미국에서 발굴되고 있다는 낭보가 전해진다.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자 베일에 싸여 있던 역사가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그런 노력 덕분에 비행장 활주로 터 위치가 정확하게 확인이 되는 성과가 만들어진다. 물론 기존에 알려졌던, 내가 찍은 길은 아니었다. 난 잘못된 자료를 좇아 생뚱맞은 곳을 촬영했고 그걸 활주로라고 전시를 한 셈이었다. 게다가 그 사진이 국회까지 가 국정감사 자료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아닌 사진 한 장이 단초가 돼 진실을 낚아냈다. 부끄럽고 민망한 현실이었지만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할 이유와 보람이기도 했다. / 345p

 

 

 




 

 

 

 

  미국, 멕시코 이민 배에 올랐던 디아스포라 1세대 대부분은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때문에 고향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곧 이 땅을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살아남아 독립운동의 역사가 되었다.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의 평화적 부르짖음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메아리를 주고받았고, 때로는 나라 밖에서 시작된 투쟁의 함성이 고향의 민중을 깨우고 그들이 화답한 환희의 울림이 전 세계 방방곡곡에 있는 동포들을 다시 웅비시켰다. 그렇게 국외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민족의 옹골찬 기상과 굳은 절개가 아직 살아 있음을 멀리 있는 동포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뭉우리돌의 바다는 그 멀고 먼 타향에서 지켜낸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의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념비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815일 광복절인 오늘, 이 책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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