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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가난해서
윤준가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6월
평점 :

오늘의 부족함 때문에 일상 속의 행복을 무시하고 살지는 않기를!
가난한 일상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기록들!
내 삶과 형편을 두고 ‘가난’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기에는 어쩐지 민망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일상 대부분의 영역에서 선택지가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 건 사실이다. 무더운 날씨에 어마어마한 전기요금을 감당하지 않으려면 에어컨은 항상 열대야취침으로 맞춰놓아야 하고, 값비싼 과일 대신 한 송이만 사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를 고르고, 시럽과 우유가 듬뿍 들어 있는 비싼 커피 대신 주로 심플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한다. 비싼 의류 브랜드 대신 주로 중저가 사이트를, 그것도 비슷한 옷이라면 가장 저렴한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것을 찾아 사 입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들의 옷은 때에 알맞게 입히자니 아까워서 한 두 치수 넉넉하게 준비한다. 물론 이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이들이 있기에 이만하면 풍족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저마다의 기준에서 각자 다양한 강도와 형태의 가난을 느끼기 마련이기에, 저자는 사람들이 각자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명시하면서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는 우리의 삶을 더 쓰고 말하자는 권유이자 우리의 위치를 숨기지 말자는 격려이기도 하다.
이따금 포기하게 되는 것들 사이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면
몇 달 전, 집주인이 갑자기 바뀌면서 남편과 나는 서둘러 이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집을 알아봐야 했기에 최대한 주어진 형편 안에서 적당한 곳을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남편과 내가 함께 나고 자랐던 동네에서 집 하나를 발견했고, 주택도시기금으로부터 대출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주저하지 않고 계약했다. 그런데 그 조건이라는 게 부부 소득 합산이 일정 금액 이하여야 했고, 나의 경우 가정주부라 소득이 없기 때문에 소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했다. 사전 심사를 거쳐 적격 판정이 나고 이후 사후심사까지 이뤄지는 동안(심사에 통과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면서도) 나는 내 가난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내 가난의 모양의 어떠한지 고스란히 까발려진 것 같아서 어쩐지 서글퍼졌다. 하물며 근로장려금이나 프리랜서 지원금 및 코로나로 인한 각종 기금이라도 받아야 생활 유지가 가능한 이들에게는 수입과 재산 내역을 제출해 번번이 심사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답답할까.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라서 매번 내 가난의 모양을 ‘증명’해야만 하는 일들에 끝내 울컥해지고 마는 저자의 심경이 낯설지 않아서 씁쓸함을 남긴다.


이처럼 가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일상 속에서 공감이 가는 사연이 참 많다.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 때문에라도 가난한 일상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건강이란 것, 형편이 된다면 한곳에서 고민 없이 구매하면 좋겠지만 품목별로 가장 저렴하면서 신선한 재료를 찾기 나서기 위해서는 꽤나 수고로움이 든다는 것, 가성비를 따지다보니 어느새 다이소와 당근마켓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 미용실에 갈 때마다 권유하는 영양(테라피) 케어가 부담스러워 손수 머리를 자르거나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게 되는 일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천 원, 만 원 아끼려다 쓰레기를 떠안은 격이 되고 마는 흔한 경험들, 그래서 다음에는 값을 더 주더라도 좋은 걸 사야지 해놓고 또 다시 저렴한 가격에 먼저 눈이 가버리는 현실에 오늘도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만다.
가성비라는 미명하게 갇히면 뭐가 더 좋은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입장할 때부터 어느 정도 체념하고 들어가서는 저렴한 물건,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물건을 집어 들고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의 질이면 만족해야 한다며 오히려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다이소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가성비의 늪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가성비’, 그러니까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으냐 하면 딱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 50p
우리는 이 오래된 빌라를 떠나는 시점에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심들을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집에서 살기로 하는 결심, 이제까지의 느슨한 삶을 어쩌면 버리겠다는 결심, 앞으로 돈에게 더 자리를 내주는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 자본주의사회에서 조금 더 안락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곧장 돈과 연결된다. 너무나 명확한 이 연결을 일단 따라가보기로 했다. / 59p
그동안 여러 미용실에서 얼마나 많은 영양(테라피) 시술을 권유받았던가. 미용실에 가면 듣는 단골 멘트, “어머, 머릿결이 너무 상했어요. 이거 안 돼.”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양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게다가 미용실 의자에 앉았을 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쩜 그렇게 유달리 못생겼는지. 이상하게도 미용실만 가면 자존감이 지하로 파고들어간다. 아마 내가 똑 부러지지 못하고 소심해서 그런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잘 거절하겠지? / 68p
저자는 내 몸에 새겨진 절약 DNA가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지 엄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자신은 엄마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따르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고, 프리랜서 편집자로서 종이값보다 싼 자신의 노동에 대한 고달픔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가끔은 맛있는 음식을 기쁘게 사 먹고,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면서 적은 돈이라도 가족,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지금의 순간에 만족하려 한다. 조금 가난해도 대체로 행복할 수 있다면 인생은 그리 힘들지 않을 거라 믿는다. 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할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늘을 잘 살아볼 것. 그것이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혹여나 물이 넘칠까 조마조마하고, 물이 넘치면 그걸 막느라 온갖 힘을 써야 했고, 물이 물러가면 뒤치다꺼리를 한참이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왜 거기 살았던 걸까(게다가 부모님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살고 계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크면서 집을 넓힐 필요가 있었는데 한강 바로 앞의 그 빌라는 다른 곳들보다 저렴한 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부동산 시세가 낮다는 이유로 결혼 후 망원동에 터를 잡았던 우리 부모님은 그때에도 역시 수해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 집을 산 게 아니었을까. / 157p
먼저 결혼한 언니들이 ‘결혼은 서로의 밑바닥을 보는 일’이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내가 결혼에서 본 바닥은 남자친구의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자식 걱정이었다. 그 바닥에는 당신들이 거쳐온 가난한 삶에 대한 고통과 두려움이 있었다. 결혼과 함께 내가 받은 숙제는 가난한 삶을 어떤 방식으로 부모님과 다르게 돌파해나가는지 보여드리는 것이다. 더 산뜻하고 되도록 행복하게 최대한 덜 힘들이며 살아나가고 싶다. 아마 그것이 부모님과 내가 공통으로 원하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 183p


오늘의 부족함 때문에 일상 속의 행복을 무시하고 살지는 말자. 내게 있어 ‘가난’의 의미는 무엇인지, 가난하지만 대체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무엇인지 이 책으로 하여금 고민해보시기를 예비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