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태양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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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무한한 가능성, 그 믿음을 잃지 않기를!

탄탄한 서사와 촘촘한 문장으로 끝까지 몰입도를 잃지 않는 단단한 성장소설!

 

 

 

  울산의 장생포에 가면 고래박물관이 있다. 그곳에는 한때 장생포에서 고래를 포획하는 포경 사업이 활발했던 시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장생포는 고래 포획이 금지된 1986년까지 고래잡이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고래 고기를 판매한다는 상가가 간간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바로 보이는 조선소 크레인의 압도적인 크기를 마주할 때면 울산이라는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한 곳에서 기묘하게 얽혀있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동해의 항구 도시 강주 역시 한때는 고래잡이 사업으로 활기를 띄었던 곳이다. 강주의 포경업은 60년대 중흥기를 거쳐 70년대에 절정기를 맞이한 뒤에 조금씩 쇠퇴했다. 국제포경위원회가 고래를 포획하면 연간 30만 톤에 달하는 명태 쿼터를 줄인다고 경고하자 상업 포경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선주들은 정부에 포경선을 팔거나 원양어업과 저인망어업으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시가 활기를 잃자 홍등가의 여자들은 짐을 쌌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포경 업체 사람들은 무기력증에 빠져들었다. 강주 북항 대부분의 땅과 선박을 소유한 대선주의 외손자인 동찬 역시 하나 남은 해동포경의 마지막 남은 포경선이 아버지와 함께 침몰하면서 수대에 걸쳐 누린 영화가 마침내 끝이 났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어느 날, 집안의 살림을 돌보는 교동댁이 담장 밑에 목이 잘린 고양이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버지의 포경선을 탔다가 목숨을 잃은 선원의 가족들이 동찬과 그의 어머니에게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동찬을 괴롭히고, 보상금을 더 내놓으라며 선원의 가족들이 몰려와 시시때때로 행패를 부린다. 바로 그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사태를 수습한다. 그의 이름은 강태호, 폭력 조직의 보스이며 사람을 죽여 감옥까지 다녀온 이력도 있지만 강주 일대의 조직을 점거하고 번듯한 사업을 하겠다는 구실로 수산 회사를 설립하여 지역 기관장과 유지들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든 자다. 동찬의 시선에서 강태호는 교활한 야심가에 자신의 어머니까지 꿰어내 차지한 파렴치한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포경 금지 원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던 북항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로 인해 다시 활기를 띤다. 특히 그가 계획한 뱃고놀이축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구릿빛 상체를 드러낸 500명의 청년들이 상대의 깃발을 빼앗기 위해 충돌하는 진풍경으로 외지에서도 화제가 되어 지역의 대축제로 자리 잡는다. 과연 강태호는 포경 금지로 침체한 북항을 회생시키기 위해 축제를 만든 걸까. 아니면 폭락한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일까. 아버지를 잃은 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던 동찬은 냉랭하게 돌변해버린 어머니의 태도와 강태호에 대한 적개심으로 도무지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북항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돌변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웅덩이처럼 우리 집안이 처한 현실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해동포경의 마지막 남은 포경선이 침몰하자 수대에 걸쳐 영화를 누리던 집안이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오랫동안 북항을 내려다보는 서양식 저택은 그들에게 있어 풍요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언덕 위의 삶을 동경했고 때로는 시기했다. 그들이 내게 턱없는 호의를 보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한때 동경했던 우리의 삶이 자신들과 다를 게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 29p

 

 

축제의 성공으로 상황이 변하자 포경 금지 때문에 북항을 떠났던 주민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축제를 통해 얻은 성과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뱃고놀이는 트로트 가수들을 불러 노래를 듣는 수동적인 축제가 아니었다. 준비부터 시합까지 1,000여 명의 주민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참여하는 능동적인 축제였다. 따라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연대와 성취감이 가장 큰 결실이었다. / 61p

 

 

난 이 축제를 볼 때마다 카니발리즘이란 단어가 생각나.”

그게 뭔데?”

오상윤이 금속 안경을 밀어 올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같은 종끼리 서로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행위.”

()

이 야만적인 축제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야.” / 92p

 

 

 




 

 

 

 

  이후 동찬은 강태호를 무너뜨릴만한 야심찬 계획을 세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겠다는 윤주,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고교 폭력클럽을 평정하겠다는 변태석, 서울대 의대 수석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한 오상윤까지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친구들과 달리 자신은 아무런 목표가 없이 방황한다. 그리고 과거에 묻어두었던, 특히 강태호에 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자신의 누구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불확실한 현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운명의 뱃고놀이 축제날은 찾아오고,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던 류재열을 상대하는 법을 터득해가면서 더 이상 상처 안에 머물러만 있을 게 아니라 어쨌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 세상은 여전히 규정할 수 없다. 선과 악이 바뀌었고 옳고 그름이 뒤섞여 있다. 나는 매일 싸운다. 나태와 탐욕, 시기와 질투처럼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끝없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욕망이다. 여전히 전적은 승리보다 패배가 많다. 늘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런데도 나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되뇌는 그의 목소리는 진한 울림을 준다.

 

 

 

비록 방식은 달랐지만, 윤주 역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상대는 바로 자신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 자체일 수도 있었다. 자신과 싸워 이겨야만 지금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 136p

 

 

먼바다에서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미의 품을 떠나는 새끼 고래의 울음소리였다. 이제 새끼 고래는 죽는 날까지 어미를 만날 수 없었다. 홀로 살아가야 하는 고래의 두려움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광대한 바다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불확실함이었다. / 162p

 

 

저 개미들이 보는 세상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이 강이 전부일 거다. 개미의 눈에 비친 강은 거대한 세계이며 동시에 우주인 셈이지. 그런데 과연 이 강이 세상 전부일까. 우리가 알듯 이 강은 세상의 극히 작은 일부다. 지금 너희들 눈에 비친 세상도 개미의 그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강의 길이와 넓이를 온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제방으로 올라와야 한다. 어쩌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강의 시작과 끝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넌 이제 곧 어디에서 세상을 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 271p

 

 

 



 

 

 

 

  이렇듯 8월의 태양은 항구 도시인 강주를 배경으로 저마다 상처를 입은 청춘들이 마음속의 두려움으로부터 한 발짝 나아가는 성장통을 담은 소설이다.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방황하는 청춘들의 내적 갈등을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몰입도가 상당하다. 특히 촘촘하게 직조된 문장은 이 소설에서 단연 압권이다. 동찬과 그의 친구들이 그러했듯, 찬란한 8월의 태양을 지나오고 있을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저마다의 리버 블로우를 단련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우린 왜 이렇게 승부에 집착하는 거죠?”

승자가 모든 부와 명예를 독식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모든 복서의 꿈은 챔피언이야. 더 오를 곳 없는 정상에 서는 게 모든 스포츠의 목표지. 패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사람들은 오로지 승자만을 기억해. 그건 우리가 살아가도 세상도 마찬가지야. 아무도 삶의 패자를 위로하지 않아. 오직 승자만을 추앙할 뿐이지.”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나 같은 사람이 월등하게 강한 상대를 쓰러뜨릴 방법이 있나요?”

있어. 그래서 복싱이 재밌는 운동인 거야.”

그게 뭔가요?”

리버 블로우.” / 287p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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