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기후위기에 관한 책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를 읽으면서 ‘청소년들의 기후 소송’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미국 워싱턴주에 사는 청소년 8명이 미국 연방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한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이들은 ‘건강한 기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고, ‘누구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훗날 워싱턴주 킹 카운티 고등법원은 최종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워싱턴주 생태부에 탄소 배출 저감과 관련한 규정을 새로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덕분에 이 사건은 미래 환경 속에서 살아갈 주요 당사자로서 청소년들도 얼마든지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 태생의 그레타 툰베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기후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고,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시작으로 기후 위기의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겨우 열다섯 살의 나이로 말이다. 지금은 시위가 아니라 공부를 할 때라고 나무라는 어른들에게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래가 없는데 공부는 해서 무엇하느냐고. 이렇게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해 파키스탄의 평화 인권 활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와 같은 청소년들은 침묵하기보다는 용기를 선택했고, 세상이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며 자신들이 품은 진정성을 믿었다. 이들은 남들에게는 없는 어떤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다. 덕분에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아도라 스비탄의 『더 크게 소리쳐!』는 세대를 넘어 함께 공감하고 공명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미래라 할지라도 마음껏 상상할 수 있으며
어른의 관점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꿈꿀 수 있습니다.”
/ ‘리아논 톰티셴, 매디슨 보르바’의 말 중에서 46p
책은 지구를 위한 우리의 변화를 촉구하는 환경 운동가, 세상을 더 이롭게 하기 위한 과학자과 발명가, 동등한 기회와 합리적인 민주주의, 청소년들의 권리 신장과 장애인 인권 보호 앞서는 여러 청소년 운동가들의 연설문이 엮여 있다. 행동주의와 공개 연설 외에도 음악을 통해 환경 정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힙합 아티스트 사우테즈칼 마르티네즈를 비롯해 발리의 바다에서 플라스틱을 몰아내는데 공헌한 멜라티와 이사벨, 치매를 연구하는 열다섯 살의 과학자 크르틴 니띠야난담, 시리아 내전의 생존자로 시리아의 위기 상황을 알리고 아이들에게 평화를 돌려주기 위해 나선 바나 알라베드, 탈레반 무장 괴한이 쏜 총에 맞으면서도 파키스탄의 평화 인권에 앞장서고 있는 말랄라 유사프자이, 장애는 그저 인생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을 뿐 그 자체가 정의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한 스파르시 샤 등에 이르기까지. 비록 저마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의 연설문에는 하나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또 그 속에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진심 어린 메시지와 함께 담겨 있다.
베티 프리단은 자신의 저서인 『여성의 신비』에서 ‘소극적인 청소년’에 대해 기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이 아이들은 목숨이라도 걸 만큼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자라면서 절대 그런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때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기도 했다. 많은 것이 걸린 선택의 순간에 잠시 발을 멈추고 깊이 생각에 잠기고 완벽한 시험 점수나 이력서보다 더 큰 무언가를 고민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9p
2078년이 되면 전 75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제게 아이들이 있다면 그날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아이들이 여러분에 대해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아직 뭔가 조치를 취할 시간이 남아 있었을 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보다 여러분의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빤히 보고 있는 눈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레타 툰베리’ 유엔 기후 총회 연설 중에서 29p
그러나 전 과학이란 나이가 몇 살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한 열정을 가지고 할 일이 있는 거잖아요. 열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십대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12억 개의 머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그저 아이디어로 남고 맙니다. 대부분 그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상호의존적 세상에서 아이디어를 추진할 수단이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방법은 나가서 찾으면 됩니다. / ‘크르틴 니띠야난담’의 연설문 중에서 73p


개인적으로 아동 결혼의 관행에 반대하는 아동 인권 활동가 메모리 반다의 이야기가 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사람들이 언니를 소위 ‘입문 캠프’라는 곳에 보냈을 때 지역사회가 소녀들에게 위험한 통과의례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캠프는 막 사춘기에 들어선 어린 소녀들에게 전통적 가치관과 성별에 따른 규범들을 주입하기 위해 미리 성년의 경험을 하게 하는데, 매우 섬뜩하리만치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성적인 정화’ 즉, 소녀들에게 섹스를 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남자 어른들이 소녀들을 강간하는 것이었다. 이런 캠프들 중 하나에 다녀오고 나서 메모리의 언니는 임신을 했고, 더 교육을 받거나 직업적 경력을 쌓을 가능성을 조기에 접은 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야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소녀들이 입문 캠프라는 관행 앞에서 좌절해야 했을까. 때문에 메모리는 지역사회가 입문 캠프에 참가하라고 권했을 때 단호하게 거부하며 자신의 조국인 말라위에서 이 관행을 몰아내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녀의 용기로 함께 지지하고 앞장서준 활동가들 덕분에 2017년 4월 말라위 정부는 아동 결혼을 금지하고 법률상 결혼 최저 연력을 18세로 올리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들이 해낸 이 놀라운 결과는 아동 결혼의 잔인한 관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소녀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너무나 당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부정한 것들에 저항하기, 메모리가 보여준 정신은 우리 청소년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위대한 재산이 아닐까.
저는 운 좋게도 공연을 하면서 매번 우리 공동체의 젊은 얼굴들을 만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우리의 미래는 굉장히 밝습니다. 부디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진실과 사랑에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공동체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기반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쳐서 숨고 싶은 유혹이 느껴질 때면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이고 맞잡은 손에 더 힘을 주십시오.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긍지를 찾고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도 가장 힘없는 이들 편에 서십시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고 그 사랑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트로이 시반’의 GLAAD 스티븐 코르자크 상 수락 연설 중에서 246p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익숙한 것을 옳다고 믿고, 보호를 명목으로 너무 많은 것들로부터 아이들을 차단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변화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아이들에게,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편견 없이 순수하게 표현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기존의 질서를 흩트리지 마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안 돼’라는 말 속에 얼마나 자주 아이를 가두고 있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의 아이를 비롯해 많은 청소년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자신을 독려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보게 될 가장 위대한 변화의 주인공은 청소년들”이라고 굳게 믿는다던 사우테즈칼 마르티네즈의 말을 꼭 가슴 속에 품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