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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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읽혀지길,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쓰며 힘겹게 싸우고 있을 여성들을 응원한다!

 

 

 

  “미얀마를 도와주세요. 우리는 지금 당장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SNS에서 화제가 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 대회에 참가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Han lay)가 울먹이며 마이크 앞에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녀는 “제가 무대에 서 있는 동안에도 미얀마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1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라고 말문을 열며 현재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군사 쿠데타를 향한 자신의 생각을 눈물로 호소했다. 분명 그녀는 그 길로 귀국을 하면 미얀마 군부에 체포되어 신변에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 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2008년,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인권을 침해하고 극악무도한 폭력과 탄압을 일삼는 탈레반을 성토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방송에 나간 바 있다. “만일 한 남자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면, 한 소녀가 그것을 바꾸는 건 왜 못하겠는가?” 놀랍게도 그녀의 나이, 고작 열한 살이었다. 무엇이 미스 미얀마 한 레이를, 평범한 열한 살의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움직이게 했을까? 정치란 “목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던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나는 그녀들이 정치에는 그 어떤 자격도 요구되어서는 안 되며 나와 이웃 그리고 공동체의 역사와 그 속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책 『여성, 정치를 하다』에 등장하는 21인 역시 모두 차별과 멸시, 가난과 고독, 생명의 위협 등 온갖 종류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 여성들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여성 정치인들의 성취와 좌절을 평가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왜 한 여성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해보고 싶었다. 여성 정치인들의 도전으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가는 것,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며 이를 위해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사를 쓰며 힘겹게 싸우고 있을 이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고.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소유하고 있다

 

 

 

  미셸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는 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자산, 언제까지나 갖고 있을 자산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소유한다.” 비록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을지라도 그 이야기가 곧 세상을 변화시키리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였던 시몬 베유는 차별에 대한 투쟁에 앞장섰고, 로자 파크스는 흑인을 억압하는 악법을 폐지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임을 알았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는 법이 정착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임을 증명했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의 소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보건, 의료, 복지가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특히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말괄량이 삐삐’를 창조한 세계적인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글쓰기를 통해 스웨덴의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존 바에즈는 이 시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물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음악으로, 케테 콜비츠는 미술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떤 조건에서 살아남았는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신만이 아시리라. 사실은 신도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시몬 베유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왔다고?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는 거잖아.”라고 내뱉는 말들을 들으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헤집는 질문들도 난무했다. “내 팔뚝에 새겨진 수형 번호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것이 내 사물함 번호였냐고 물었다.” / 시몬 베유 편 중에서 19p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세상이 여성과 아이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새삼 충격을 받았다.” “열세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자신이 낳은 사생아의 출생 신고를 하러 등기소에 오곤” 했지만, 법은 그녀들의 편이 아니었다. 사생아를 낳은 “아주 어린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서 죽게 만든 일이 발생”하자, “그 소녀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다시 여성 참정권 시위 현장으로 향한다. 그 사이 딸들도 엄마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동지로 훌쩍 자랐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권을 얻을 작정이에요.” / 에멀린 팽크허스트 편 중에서 40p

 

 

 




 

 

 

 

  책은 그녀들의 삶 속을 통해서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한 세상과 싸우는 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나이팅게일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잔다르크처럼 불에 태워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로부터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렸고, 국무 장관에 임명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여자가 국무부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자질 논란과 비판에 맞서야했다. 심지어 헬렌 켈러가 정치색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성녀”에서 “불구자”로 전락시키며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미국에서는 삼류 배우만 되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그리스의 유명 여배우가 문화부 장관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여배우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 멜리나 메르쿠리의 말은 결국 정치란, 누가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떻게,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할 것인지 그것을 잘 아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팔라치는 자신의 말과 글로 정치에 참여했다. 16세부터 77세까지 그녀를 지탱해 온 저항 정신의 근원이었다. 팔라치는 “아니오” 그 세 글자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문제적인 글을 발표하며 세상에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는 꼭 여성이 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 오리아나 팔라치 편 중에서 143p

 

 

“나는 케냐인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마치 모든 정치인이 다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라는 듯이 여기는 통념에 도전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케냐에서는 국민의 열망을 억압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정치인들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결정이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상황을 오해하는 것이다. 왜 당신의 운명을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의 손아귀에 맡겨야 할까?” / 왕가리 마타이 편 중에서 219p

 

 

왕가리 마타이는 천천히 끝까지 싸워도 세상은 아주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케냐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나무로 환기시켰다. 민주주의는 단숨에 이룰 수도 혼자서 완성할 수도 없으며, ‘만병통치약’도 아니었다. 그녀는 협치를 강조한 정치인이었다. “살면서 그리고 일을 하면서 알게 될 겁니다. 그 어떤 일도 혼자서 해낼 수 없음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일을 혼자 하면, 제가 그 자리를 떠났을 때 그 일을 맡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 왕가리 마타이 편 중에서 226p

 

 

 




 

 

 

 

  나혜석은 런던에서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의 일원을 만나 “내가 조선의 여권 운동자 시조가 될지 압니까.”(「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삼천리》. 1936년 1월)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째 된 날이었다. 나혜석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선각자를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마치 운명처럼 조선의 여권 운동자 시조가 되었다. 그렇게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의 역사는 다른 수많은 여성들을 이끌어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땅을 살아온 수많은 여성들의 삶으로부터 빚진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표권을 행사하고, 나의 소신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밝힐 수 있으며, 탄압과 폭력이 아닌 자유와 자유로운 비판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읽혀지길,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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