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나로 살 뿐 2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다만 나로 살 뿐 2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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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근원의 여정!

길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들!

 

 

 

  묵은 경전 글귀가 아닌, 고요한 선원 좌복 위에서만이 아닌, 삶이라는 생생한 터전에서 수행하기 위해 나선 원제 스님의 세계 일주 기록은 2권에서도 계속된다. 일본의 지브리 뮤지엄을 시작으로 이스탄불, 탄자니아, 남미의 최남단 파타고니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브라질, 콜롬비아, 워싱턴 D.C 등 5대륙 45개국의 일주를 이어나간다. 앞서 1권에서는 스님이 길 위에서 만난 인연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깨달은 것들에 보다 마음이 기울었다면, 2권에서는 경이로운 역사의 무대이자 삶의 생생한 터전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감이자 깨달음이 되기도 하는 여행지 그 자체에 대한 기록들이 유독 인상적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 간사이 지방 제일 서편에 자리한 도시 히메지에서의 일화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거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한 마리의 백로를 연상시키며 우아하고 고결한 자태를 보여주는 히메지성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가지고 여행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했던 히메지성은 보이지 않고 웬 직육면체의 도시형 건물만이 그를 반길 뿐이었다. 알고 보니 당시 히메지성은 지붕 기와를 보수 중이었던 것이다. 히메지성을 보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먼 거리까지 왔는데, 실망도 이런 실망이 또 없다. 이런 일이 허다한 나로서도 스님이 느꼈을 허탈함이 충분히 이해되고 남을 정도니까.

 

 

 

   그래도 추가 요금을 내면 보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하니, 스님은 이렇게 발길을 돌리기에는 아쉬워서 가건물 안에 들어서 천천히 현장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쌓여 있던 불만과 실망감은 점차 사그라졌다. 보수 과정에 있던 천수각 지붕은 아주 말끔하고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히메지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건축되었고 증축되었으며 보수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안내도 충실히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인내와 완벽에 가까운 보수를 해낼 수 있다는 그들만의 자신감을 느껴서일까. 스님은 결과를 중요시하고 또 결과만을 생각해왔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긴 보수 공사를 거쳐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그 과정을 잘 인내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거리낌 없이 남에게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을 믿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은 그 어떤 다른 사람이나 세상도 밝혀줄 수 없는 거대한 속임입니다. 오직 나만이 나 스스로의 속임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속임을 밝혀내는 여러 과정을 우리는 보통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이 수행을 통해서 그간 내가 나에게 해왔던 속임수가 한 꺼풀씩 벗겨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수행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벗겨지는 데에 필요한 용기입니다. / 34p

 

 

견고하지 못해서 자주 흔들리고, 남들에게 곧잘 상처도 받는 연약한 마음을 가졌음을 저는 처음부터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연약한 마음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다른 이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결정에는 그의 종교적 믿음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비록 저와는 다른 종교인일지언정 저는 리처드의 삶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믿음의 힘으로 그 모든 난관을 이겨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힘이란 이토록 위대한 곳이었습니다. / 88p

 

 

사실상 고정된 문제란 없습니다. 문제란 문제시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법입니다.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문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단지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문제로 고착되지 않고 상황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여유는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유가 사람들의 성정을 만듭니다.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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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하다보면 간혹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여행지의 분위기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스님이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행자 역시 그랬나보다. 그는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를 창으로 잡는 용맹한 전사 부족을 상상하며 마사이족을 만나러 온 듯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마사이족은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이나 파는 장사꾼에, 신형 아이폰까지 대수롭지 않게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적잖게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스님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아왔던 대로, 그 사람들이 시대에 무관하게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건 우리의 욕망일 뿐이라며 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기록이 사실이라 믿고 그것을 완전한 진실로 고착시키려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욕심이자, 여행자의 오만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내가 가진 앎의 ‘재확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변화’ 속에서 ‘성찰’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스님의 말씀은 여행의 참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마치 내 앞의 돌과도 같습니다. 처음부터 의미가 정해진 돌은 없습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앞의 돌이 걸리면 걸림돌이 되고, 디디면 디딤돌이 됩니다. 일견 실패처럼 보이는 경험도 그 실패라는 의미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그 경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관점에 따라 기회도 되고, 자양분도 되며, 선물도 되는 것입니다. / 145p

 

 

수행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수행이 ‘무거운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며, 그러한 모습과 삶만이 수행자의 삶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수행의 과정은 무거움이지만, 그 결과는 가벼움입니다. 무거운 번뇌를 줄여가면서 점차 지혜가 가볍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삶의 무게감이나 실체감이 줄어들면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매사의 인연에 순조롭게 응하는 삶이 저는 진정한 수행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 227p

 

 

사실과 거짓이라는 분별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더 나은 의미 부여를 해서라도 그 휘청거림과 환호 속으로 들어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으로 단순하게 갈라내기에 우리들의 삶은 너무 다채롭게 살아 있습니다. 이 살아 있음을 최대한 보듬으며 수용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266p

 

 

 

   스님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행자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고 한다. “불교를 수십 년간 공부하고, 경전들의 가르침을 낱낱이 안다고 해도, 그 가르침이 하나로 회통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단지 흩어진 구슬들에 불과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란 말입니다.” 경전마다 주제와 내용이 따로따로이고, 수행과 일상의 삶이 별개로 분리되어서 나타난다면 그러한 수행의 삶과 경험은 마치 흩어진 구슬처럼 가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즉, 수행의 삶이 무엇으로든 일목요연하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원제 스님은 오랫동안 수많은 경험을 치르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으되, 그 삶을 일관되게 통찰할 수 있는 뚜렷한 안목이나 관점이 없다면 어찌 보면 그러한 삶은 파편화된 경험과 분리된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선 자기 삶의 뚜렷한 중심이나 안목을 마련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이다.

 

 

 

   스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내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이 과정 역시 내 삶의 뚜렷한 중심과 안목을 기르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고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길러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 안에서 내 삶의 중심과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을 찾아나가기 위해 책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나에게 스님의 말씀은 귀한 가르침이 되어주었다.

 

 

 

사람의 인연 따라 종국에 유익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익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입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도전이고 경쟁이어도 됩니다. 반드시 이득과 실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득이나 실효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이 흐르며 차츰차츰 익혀갈 기준이며 삶의 방향성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무익의 즐거움을 누릴 자유가 있고, 또 그러한 자유가 보장되는 때가 바로 젊은 시절 아니던가요. /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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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설렘과 인연의 정다움에 마음이 따뜻해졌던 1권과 달리, 2권에서는 길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과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이 많았다. 새해가 다가온 시점에서 예전만큼 기대감으로 벅차지도 않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깊어가지만 그럴수록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법의 소중함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2021년의 첫 책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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