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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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관한 놀랍도록 지적이고 아름다운 책!

나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 근원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장대한 여정!

 

 

 

  아폴로 8호 우주인 윌리엄 앤더스는 “달을 탐험하러 가서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구였다”라고 기록한 바 있다. 광활한 우주 공간 속에서 경이롭게 빛나는 푸른 구슬. 인류는 저 머나먼 우주를 향한 오랜 욕망이 발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거친 우주로부터 모든 생명을 보호해 온 이 아름다운 지구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과 발전은 지구라는 공감각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지구에 속한 생명체가 아니라, 놀라운 지능을 소유한 유일한 존재로서 우리가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렇게 지구의 자원을 인류의 진화와 안락한 삶의 도구로 마구 소비한 결과, 스스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 대가로 해수면 상승, 초미세먼지, 초강력 태풍 등의 기후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류의 역사는 오롯이 인류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진 것일까? 지구는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오리진』의 저자인 루이스 다트넬 교수는 우리를 향해 다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고.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리는 모두 유인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호미닌으로 갈라져 나온 유인원이다. 호미닌의 진화에서 중요한 변화를 낳은 사건들은 모두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영장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열매와 잎을 먹고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탄생한 이 지역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때문에 풍요로운 초원을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두발 보행 호미닌으로 진화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똑똑하고 적응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낸 지구 차원의 원인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가 번성하여 우리 계통의 진화 가지에서 유일한 생존자로 지구를 물려받은 궁극적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구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오리진』의 첫 장에서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일어난 특별한 환경 변화에 주목한다.

 

 

 

이러한 판들의 활동-히말라야산맥 생성, 인도네시아 해로 봉쇄, 특히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높은 산맥 융기-은 동아프리카 지역의 기후를 건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생성은 기후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연 경관까지 변화시켰다. 무성한 열대 숲으로 뒤덮여 있고 균일하게 편평한 지역이던 동아프리카는 고원과 깊은 골짜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울퉁불퉁한 산악 지역으로 변모했고, 신생도 운무림에서 사바나와 사막 관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 26p

 

 

 

   저자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일어나는 판과 화산의 활발한 활동 및 기후 변동이 인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한다. 뇌를 더 크게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된 체형과 생활 방식의 발전, 인지 능력의 발달, 나아가 더 복잡한 사회적 상호 작용과 협력, 문화적 학습과 문제 해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어 발달 역시 이 지역의 특이한 판 구조 환경 때문인 것으로 분석한다. 다시 말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지역의 환경 조건은 다재다능하고 적응력이 뛰어난 호미닌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고, 따라서 더 큰 뇌와 더 높은 지능의 진화를 촉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가 요동한 세 시기에 호미닌 종수가 정점에 이르렀으며 제각기 다른 도구의 기술 발달과 확산도 이 시기에 일어났다고 한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전체로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들 판들의 활동은 동아프리카 환경만이 아니라 인류가 초기 문명을 건설한 장소들을 결정한 주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는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산물이자, 동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후 변화와 판들의 활동이 낳은 자식이라 할 수 있다.

 

 

 

현생 인류는 체력 대신에 머리로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고, 그 뒤에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우리 조상이 기후가 심하게 요동친 동아프리카에서 더 오랫동안 진화의 역사를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네안데르탈인보다 다재다능한 능력과 지능이 더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가 교대로 반복되는 기후 변동에 더 오랫동안 적응했는데, 그 덕분에 북반구의 빙하 시대 기후를 포함해 나머지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마주친 다양한 기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다. / 42p

 

 

 

 

 

 

   판과 화산의 활발한 활동이 인류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빙기의 조건은 인류의 확산과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을 만들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아가시즈호에 갇혔던 물의 방출, 대서양 순환 시스템 중단, 영거 드리아스 사건의 충격과 같은 일련의 사건(마지막 빙기가 끝난)은 농경의 시작을 이끌었다. 농업의 발달은 인구 증가 속도를 높이고 인구 증가는 농업 발달을 더욱 효과적으로 증진시켰다. 그리고 인구 밀도의 증가는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 구조를 발달시킴으로써 계층 간의 부와 자유의 격차를 키웠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축화를 통해 운송과 견인력, 고기, 피, 털, 젖, 뼈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의 탄생시키고 지속하는 결과를 낳았다. 육지의 환경이 이러했다면 바다의 지리학은 대항해시대를 비롯해 현대 세계를 건설하는 밑바탕을 마련하게 했다. 다양한 문화들이 나타나고 발달하고 자원과 사상을 교환했던 지중해의 복잡한 해안선, 해양지리학의 중요성과 좁은 해협을 지나가는 항로의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향신료 거래라는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동남아시아의 군도들, 석유를 실어 나르는 전략적 지형인 호르무즈 해협 등은 바다 환경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을 증명한다. 이제 인류는 더 먼 항해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과 자신감을 얻고, 대양과 대기에 일어나는 대규모 순환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는 지구 환경을 누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권력과 부가 이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인류가 전 세계로 확산해간 사건이 마지막 빙기의 혹독하게 추운 기후 속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얼음 저장고 환경 덕분이었다. 북쪽 대륙 빙하가 성장하면서 바다에서 다량의 물을 흡수한 덕분에 해수면이 낮아져 광대한 대륙붕 지역이 마른 땅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마른 땅을 걸어 인도네시아로 건너가고, 얕은 바다를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고, 베링 육고를 지나 아메리카로 건너갈 수 있었던 건 바로 빙기가 가져다준 조건 덕분이었다. (…) 마지막 빙기는 인류를 지구 전체로 확산하도록 도운 조건을 제공한 것 외에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을 만들고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 80p 

 

 

 

 

 

  덕분에 지구의 각종 천연 물질들, 이를 테면 각종 암석, 금속, 석유 등을 활용함으로 인류는 현대 문명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책에서는 이러한 지구의 자원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청동기 시대부터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여러 장에 걸쳐 살펴본다. 특히 옛 바다의 퇴적물이 현대 미국 남동부 유권자에 미치는 영향들, 석탄기에 형성된 지층의 위치가 영국인의 투표 패턴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지질학적 특징이 현대 도시들이 발달해온 방식에 끼친 영향까지, 이제껏 몰랐던 도시와 지구역학의 매우 흥미로운 관계도 엿볼 수 있다.

 

 

 

   반면,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마주하게 된다. 5500만 년 전,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에 이산화탄소 농도와 지구 온도가 파국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을 때, 플랑크톤이 어떤 지질학적 과정보다 훨씬 더 빠르게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함으로써 지구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 지구의 철핵이 지구 자기장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지구를 둘러싸서 지구의 생물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은 지구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숙고하게 한다. 서로 겹치는 밀란코비치 주기들의 리듬 때문에 정상적으로는 약 5만 년 뒤에 지구의 기후가 빙기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우리가 이미 대기로 쏟아낸 온실가스 때문에 예정된 다음번 빙기는 찾아오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하다는 그의 경고는 우리가 반드시 새겨야 할 메시지다.

 

 

 

운송을 담당한 상인들은 삼각 무역의 매 단계마다 실어간 화물을 팔아 이윤을 챙겼고, 이 시스템은 마치 경제적 영구 기관처럼 크랭크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그 주인들에게 막대한 재정적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유럽 국가들은 처음에는 수차를, 그다음에는 증기 기관을 사용해 방앗간과 공장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원자재를 공급한 해외의 노예 노동력도 산업화 경제를 돌아가게 한 중요한 요소였다. 노예 제도 폐지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전에는 달콤한 차나 럼주의 맛, 등에 닿는 깨끗한 셔츠의 감촉, 기운을 돋우는 파이프 담배에 흠뻑 취한 유럽인은 자신들에게 안락한 생활 방식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된 인간의 고통에 눈을 감았다. / 346p  

 

 

 

 

 

 

   이렇듯 『오리진』은 지구라는 생명과 인류라는 생명이 함께 살아온 장대한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인류의 탄생과 진화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궁극적인 기원, 즉 지구에 관한 가장 밀도 높은 탐구를 기록한 지식서다. 과학과 역사를 완벽하게 융합한 이 통찰력 넘치는 책은 무엇보다 끊임없이 역동하는 지구 표면의 특징들과 행성 차원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이 인류의 탄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왔는지를 매우 생생하게 풀어나간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책들이 인간중심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반면, 지구중심의 역사와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며 탄탄한 설득력까지 갖추고 있다. 인류와 지구의 역사에 관해 이처럼 놀랍도록 지적이고 아름다운 책이 또 있을까. 때문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특히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을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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