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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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대물림되는 혐오와 배제의 경제학!

‘집’이 ‘개인’과 ‘가족’의 서사가 되고, 소속과 계급이 되는 모순을 냉담하게 포착해낸 소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경계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어 다행이라 믿었던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 경계란 행정 구역상 이곳과 저곳을 나눈, 고작해야 도로 하나에 지나지 않는 얄팍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속이 되고 계급이 되며 개인과 가족은 물론 마을 전체의 서사가 되기도 하는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저 동네는 좀 논다 싶은 언니나 오빠들이 많아서 위험해, 이 동네는 학군도 좋고 부모들도 대체로 다들 넉넉하게 사니까, 여긴 토박이들이 많아서 서로 얼굴 다 아니 안전하잖아. 이런 말들이 주는 안정감, 존재감 속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것이 경계 너머의 사람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곳을 떠난다는 건 곧 실패와 좌절을 의미했다. 어디서 사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넓은 2층 양옥집에서 오랜 세월 삶을 꾸려온 엄마는 누구 하나 아는 이 없는 동네의 어느 작은 빌라로 이사 오게 된 처지에 눈물을 터뜨리셨고, 위로를 한답시고 그렇게 말을 했지만 역시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흘러서도 다시 그곳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바람을 선뜻 지우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구, ○○동, ○○ 학교 출신… 내가 거기에 있었음을 단순히 증명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나와 남편 그리고 내 아이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자서전’과도 같은 것이라면 부단히 욕망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된다.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이 좇는 ‘집’을 향한 집착, ‘경계 안’으로 들어서려는 필사적인 욕망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계 밖에 있다는 이유로 내가 누군가에게 혐오와 배제, 소외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더더욱 절박한 문제가 된다.

 

 

 

 

 

 

집을 향한 집착, 경계 안으로 들어서려는 필사적인 욕망

 

  재개발 계획이 거듭 무산되며 버려진 동네가 되어버린 남일동.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신이 살던 곳이 부촌인 중앙동으로 행정 편입되면서 중앙동의 주민이 된다. 나의 부모는 마치 중앙동에서 원래 살기라도 했던 것처럼 남일동과 선을 긋는다. 등굣길에 친구들과 빵을 나눠 먹는 것조차 야단을 치고, 길에서 놀고 있으면 “홍아, 너는 이 동네 애들과 달라” 하며 작정한 듯 집으로 끌고 들어와 노골적으로 남일동 아이들을 배격한다. 그렇게 남일동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어떻게든 가능한 한 더 멀어지고자 하는 부모의 모습은 동네 친구들에 대한(혹은 그 부모들에 대한) 불만이나 동네 아이들과 비슷하게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나에게 또렷이 투영된다. 하지만 친구들은 ‘3학년 8반 남토(남일동 토박이의 준말)’라 부르며 나를 소외시키고, 졸업 후 취직한 여행사에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동료를 챙겨주다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경계 안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이물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나는 알레르기라는 병증에 시달린다.

 

 

 

왜인지 남일동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이 없다는 생각 탓입니다. 남일동은 생각하면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처박히듯 방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51p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남일동 토박이의 준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온 것이 아니고,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온 경우였다고 해도 그 애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 100p

 

 

도대체 내 부모는 왜 그토록 집을 가지고 지키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걸까요. 당신들의 기대와 바람을 보란 듯 배반하며 어김없이 실망과 좌절만을 되돌려주던 집에 대한 애착을 왜 놓지 못했던 걸까요. / 120p

 

 

 

 

  그나마 남일동 제일약국의 약사가 제조해주는 약이 꽤 효험이 있어 자주 찾아가곤 하는 나는 그곳에서 주해와 딸 수아를 만난다. 남편과 이혼을 하고 남일동의 달산 바로 아래 집으로 이사를 온 주해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긍정성과 단순함,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그녀의 노력으로 도서관이 세워지고,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필요 없는 물건을 내놓아 파는 마녀시장이 열림으로써 외부인들의 발길이 늘어나는 등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골목과 더러운 담벼락으로 섬이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던 동네가 서서히 활기를 띄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동네를 위해 희생하는 주해를 도리어 불신하고 폄하하는 동네 사람들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여유가 없으면 뭐든 겁부터 나잖아요” 하고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던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독려하려는 그녀를 지켜보면서 화자인 나는 어쩌면 남일동도 변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본다.

 

 

 

내 눈엔 모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친절이나 호의를 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선의나 진심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 무례와 몰상식이 몸에 밴 인간들. 그러니까 외지 사람들이 남일도, 남일도 할 때 그 남일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습니다. / 56p

 

 

홍이 씨.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요. 알잖아요.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난 정말 잘하고 싶어요. / 95p

 

 

  그러나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편견과 배제의 경제학 앞에서 주해도 이내 허물어져버리고 만다. 남일동에 산다는 이유로 수아가 가까이 있는 학교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이나 가야할 만큼 먼 거리의 초등학교로 배정된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교무부장은 행정 절차를 핑계 삼아 주해의 분노를 만류해보지만 결국 동네 분위기를 운운하며 남일동을 따돌리는 게 분명한 그 이유는 주해를 비롯해 나에게도 큰 좌절감을 안긴다. 세월이 꽤나 흘렀음에도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진실, 주류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나의 부모가 나에게 그러했듯 결국 수아의 세상 역시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 될 거라는 사실. 더욱이 또 다시 들려오는 재개발 소식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주해의 모습은 이 분명한 진실 앞에서 절박해지는 한 개인의 연약함을 도드라져 보이게 할 뿐이다. 결국 주해는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그토록 집에 대한 집착과 경계를 향한 욕망에 휘둘리며 자라온 나의 서사가 달산을 오르는 포크레인의 손길에 의해 금세 폐허가 되어버리는 광경은 텁텁한 쓴맛을 남긴다.

 

 

 

어쨌든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간 수아가 먼 거리를 오가야 할 테니까. 그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또 남일동 어딘가의 중학교로 진학할 테니까. 수아가 사는 동안엔 꼬리표처럼 졸업한 학교들이 따라다닐 테니까.

그러니까 수아가 남일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학교에 진학했으면 하는 마음이 내 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내 부모를 비롯한 중앙동 사람들이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그런 마음이 내게도 분명 있었던 것입니다. / 111p

 

 

오래전 어머니로 하여금 집 앞에 서서 멍하니 집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125p

 

 

다만 주해네 집을 나서는 순간엔 새삼 여기가 남일동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 부모가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던 그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는 남일동의 풍경은 오래전 내가 보았던 그것과 비슷했고 달라진 게 없는 듯했습니다. / 152p

 

 

 

 

 

 

   이렇듯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재개발의 논리, 배제와 혐오의 경제학 속에 놓인 현대사회의 우울한 감정을 냉담하게 응시한 작품이다. 소설 속의 화자가, 소설 속의 공간이 결코 나와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쩐지 이 씁쓸한 여운이 꽤 오래갈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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