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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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라는 소재로 완성된 10편의 제각기 다른 맛을 지닌 떡볶이 소설 맛집!

누군가는 추억하고, 누군가는 복수를 꿈꾸며, 누군가는 청춘의 상처를 들춰보는 떡볶이 인생!

 

 

  저마다 다른 성격과 취향의 작가들이 모여 한 권의 떡볶이 소설집이 탄생했다. 유쾌한 추억과 기묘한 상상력을 비롯해서 씁쓸한 청춘의 비애와 애환 그리고 먹방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속에는 말 그대로 떡볶이에 얽힌 10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김동식의 <컵떡볶이의 비밀>에서는 왜 늘 내 컵에만 떡볶이 개수가 하나 모자란 것인가, 이에 울컥해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다른 애들은 다 일곱 개를 주면서 왜 나에게만 떡볶이를 여섯 개 줬지? 용기를 내어 아줌마에게 항의를 해볼까, 나도 모르게 아줌마에게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듣자하니 아주머니 딸이 우리 반이라던데. 이때부터 소년은 어떻게 하면 떡볶이 하나를 더 사수할 수 있을 것인지, 보기만 해도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귀여운 계략을 하나씩 펼쳐나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우리의 유년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떡보다 어묵과 양배추가 더 많이 들어가 있는 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억울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도 나고 말이다.

 

 

 

   이처럼 <컵떡볶이의 비밀>이 어린 시절의 유쾌한 향수를 자극한다면,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 <떡볶이 초끈이론>과 같이 전지적 떡볶이 시점이라는 재미있는 상상력 안에서 떡볶이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비애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작품도 눈에 띤다. 반면, 이십 대의 마지막 끝자락에 선 청춘의 애환을 담은 <숭 구리 당당>과 60대 여성이 뒤늦게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와 떡볶이 맛집 여행을 하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 같이 떡볶이 한 그릇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다.

 

 

 

형체 2가 말했다.

“아직도 살아 있군. 곧 알게 될 거다. 먹히거나 버려지거나 그 뒤로는 그저 우리처럼.”

형체 3이 말했다.

“숨어서 썩어가는 거지. 죽을 때까지, 병신들.”

소름끼치는 목소리들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 저들은 대체 뭘까. 봐도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 중에서 85p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파장이 생명이 아닐까. 생물과 무생물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생명의 흐름 속 어느 한 수준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차이를 생각하느라 공통점을 쉽게 잊는다. 다르다는 것에 집착하느라 우리가 사실은 얼마나 엇비슷한 존재인지를 망각한다. 우주의 모든 것이 생명이라는 가설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인간만큼 가까운 별은 없다. / <떡볶이 초끈이론> 작가의 말 중에서 190p

 

 

그래서 매주 은서네 ‘튄떡’을 찾았다. 은서에게 잘해줬으면 잘해준 스스로가 대견해서 한 떡, 부담스러워서 피했으면 미안해서 또 한 떡! 떡을 잘근잘근 꼭꼭 씹을 때마다 답답한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않았다. 습관처럼 ‘튄떡’에 갔고, 가면 은서가 있었고, 떡볶이를 먹으면 배가 불렀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걸까. 어제처럼 오늘을, 오늘처럼 내일을, 그저 떡볶이 한 그릇으로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것. 과연 이게 내가 바랐던 삶일까. <송 구리 당당> 중에서 302p

 

 

 

 

 

 

   무엇보다 사회 곳곳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각종 모순들을 담아낸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날개떡볶이 사장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한수정 대리를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가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정작 피해자에게는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가 대표적이다. 대학원 박사과정생이자 학과 조교인 K를 통해 개인이 아닌 타인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아가고, 혹은 타인에게 그 공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는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와 같은 작품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성 착취 동영상에 노출되거나 먹방 판타지에 빠진 위태로운 청춘들을 그려낸 <유라 TV> 역시 맵싸한 뒷맛을 남긴다.

 

 

 

“우리 한 대리 시집가는 날엔 그럼 국수 대신 떡볶이 먹는 건가? 히야, 그것도 괜찮네. 이봐, 철규 씨. 한 대리 빨리 좀 데려가. 얼마 안있으면 서른이라고. 그전에 쇼부 쳐야지.”

“한 대리님 대박. 그 돈 다 언제 써요?”

“내가 날개떡볶이 팔아준 게 얼만데 철규 사장님은 맨날 한 대리님만 찾더라.”

지점 사람들이 말을 보탰지만 그 누구도 나를 놀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저… 인사말 같은 거죠. 안 그래요? 다들 그렇게 사회 생활하는 거잖아요? /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 중에서 34p

 

 

K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G의 뒷모습을 모면서, 결국 그 역시 매운맛과 순한맛을, 그러니까 자신의 삶의 메뉴를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어쩌지 못하는 L도, 모두 진정하라고 한 손을 들고 있는 F 도, 자리에 앉아 웅성대고 있는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는 김말이튀김이나 오징어튀김 정도를 간신히 끼워 넣을 수 있는 삶까지 간신히 올라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역시 이미 맵기의 정도가 정해진 떡볶이 국물에 그것을 뒤섞어 내어놓으며, ‘그냥 먹어, 이게 지도교수가 정한 이곳의 메뉴야.’ 하는 심정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 중에서 73p

 

 

유지가 오피스텔을 구하기 전만 해도 먹방 촬영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이뤄졌지만 집을 나간 그 주부터는 다섯 개씩 올라왔다. 미리 찍어둔 걸까. 어떻게 저렇게 자주 영상을 올리는 걸까. 게다가 저 쩝쩝거리는 소리. 효과음을 삽입한 것처럼 크게 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과민한 걸까. 그 소리는 마치 포르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같았다. / <유라 TV> 중에서 121p

 

 

 

 

 

 

   한편, 묘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퓨전 떡볶이처럼 기이한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도 있다. ‘우리가 늘 쉽게 접하는 떡볶이를 어느 날 갑자기 먹지 못하게 된다면?’이란 설정 아래 좀비가 난무하는 대재난의 시대에서 떡볶이가 구원과 희망이 되는 광경을 그려낸 <좀비와 떡볶이>는 재미있으면서 섬뜩하다. 미래 사람인 서복이 과거 진나라 황제 시절로 즉석 떡볶이를 가져갔다가 화근을 낳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그려낸 <서모라의 밤> 역시 그러하다. 작가의 말에서 “엄마가 없는 조선 시대나 더 옛날로 돌아가서 마음껏 불량식품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소설이 쓰였다는 말을 읽고 보니, 문득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 책, 떡볶이 소설집은 또 어떻게 탄생하게 된 것인지 그 배경까지 사뭇 궁금하다.

 

 

미친 새끼라는 얘기를 들으며 돌아서는데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과 위험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었다. 노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예전 시대를 자꾸만 얘기했고, 어른들은 좀비들과 싸우면서 정착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제 곧 어른이 될 우리들이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데 공포감을 느꼈다. 떡볶이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감을 잊어버리고자 했던 발버둥일지도 몰랐다. / <좀비와 떡볶이> 중에서 142p

 

 

“아니다. 그건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더 잘살고,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욕심 말이다.”

“그게 대재난과 무슨 상관인데요?”

“인간의 욕심이 전쟁과 기상이변을 일으켰고, 그것이 결국 대재난으로 이어진 거야. 그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욕심을 철저하게 버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말도 안 돼요.”

“그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지 않니? 지금.” / <좀비와 떡볶이> 중에서 157p

 

 

 

 

 

 

당신의 떡볶이는 어떤 맛인가요? 

 

 

   누구에게나 떡볶이에 대한 사소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말랑말랑한 밀떡과 함께 꼭 같이 먹었던 주황색 슬러시(없으면 섭섭해), 웬일로 떡볶이를 사주겠다는 친구를 따라 두어 명의 여자 친구들이 함께 따라나섰는데 알고 보니 나를 포함해 그 두어 명의 여자 친구들에게 모두 호감을 품고 있던 남자 아이가 그 친구에게 돈을 쥐어주고 떡볶이 사주라고 했다던 황당한 이야기(어린 마음에 그렇게 하면 멋있는 줄 알았나봐), 부끄러워지는 마음을 끌어안고 들어갔다 이내 세상 떠나가라 깔깔거리며 먹었던 남학교 앞 떡볶이 맛집(거긴 정말 맛집이었을까?), 야간자율학습 쉬는 시간을 틈타 담벼락 사이로 배달시켜 먹었던 후추향 가득한 떡볶이의 맵싸함까지(이때 먹은 떡볶이가 내 인생 떡볶이). 달달한 맛, 매콤한 맛, 퓨전 떡볶이의 기묘한 맛에 이르기까지 어디 하나 똑같은 데가 없는 떡볶이 맛처럼 그 속에는 저마다 다른 추억과 향수가 녹아들어 있다. 떡볶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도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때로는 달콤하며 말랑말랑하고, 때로는 혀가 얼얼하고 속이 따가운,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그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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