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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ㅣ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내내 읽기 어려워했던 고전들을 한 데 모아 읽어드립니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우리가 딱 필요로 하는 인문학 책!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는 스테디셀러 책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독서 프로그램으로 연일 화제를 모았다. 『이기적 유전자』, 『침묵의 봄』, 『코스모스』, 『백범일지』, 『페스트』 등 그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고전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유독 고전에는 약했던 나에겐, 다양한 전문 패널들의 견해를 통해 혼자 읽기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 철학까지 함께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애석하게도 30부작을 끝으로 시즌1은 종영되었지만, 시즌2가 방영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이들이 환영할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바로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생각하는 인간 편』(이하 『지식편의점』)이다.
『지식편의점』은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의 책 버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의 도서 선정 위원이자 북튜브 <시한책방>의 책방지기로, 재미와 깊이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전달력과 핵심을 꿰뚫는 분석력으로 새로운 지식 큐레이터로 주목받고 있는 이시한, 그가 이 책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편의점』은 고전을 읽고 싶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힘들었던 사람, 어디서부터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어려운 용어만 보면 인상부터 써지는 사람, 지식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식에 허기진 현대인들을 위해 쓰여졌다. 저자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다 딱히 살 게 없어도 한 번쯤 가볍게 들러보는 편의점처럼 문턱이 낮고, 유용하면서 재미있는 책으로 읽혀지기를 바란다며 이 책을 소개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이르기까지
“유례 없는 발전의 속도에 살고 있는 지금,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요?” 『지식 편의점』은 이 같은 질문을 앞세우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인류의 여정이 어떻게 꾸려져왔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의 여행길로 이끌어주는 대표 고전들을 통해 인류의 흐름과 방향성을 가늠해본다.
책이 지향하는 바에서 알 수 있듯 가장 먼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등장하는 이유는 ‘지식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은 모든 것의 주체인 인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뜻에서 인류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래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인류의 거시사를 통찰하고 있는 『사피엔스』는 ‘인간’을 이해하는 이정표의 첫 번째로 가장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왜 백인이 세계의 주류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책으로, 오늘날 인류가 겪는 문화적 불평등은 인종의 우수함이나 DNA의 차별화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지리적 환경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 『총, 균, 쇠』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항상 겸허해야 한다는 준엄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어 역사 이전의 시대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인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여다보고, 역사란 과거의 사실 자체로 존재하므로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존의 정설을 뒤엎고 “역사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가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를 질문해본다.
『총, 균, 쇠』에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68명의 스페인군을 데리고 8만 대군의 잉카제국을 몰살시킨 일을 예로 듭니다. 사실 잉카의 병사들은 대부분 총에 맞아 죽은 게 아니라 균에 맞아 죽었다는 겁니다. 또한 북미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의 인구 수는 200만 명 정도에 달했지만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후 전파한 유럽의 전염병 때문에 100~200년에 걸쳐 약 95퍼센트나 감소했습니다. 이때 유행한 전염병, 그러니까 『총, 균, 쇠』에서 ‘균’의 정체는 바로 천연두입니다. 지금이야 이 병의 정체를 알아내 완치 가능하지만 당시 원주민들에게는 죽음의 병이었던 거죠. / 65p
이후 인간의 집단 단위가 부족을 넘어 국가를 이루기 시작하자 ‘정의로운 국가’, ‘이상적인 국가’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기 위해 플라톤의 『국가』를 살펴본다. 그런 다음 종교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종교인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장미의 이름』이란 작품을 통해 폭력적이고 위험한 방법으로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 한 종교시대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이 외에도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고 약속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법의 상징성과 근본적인 정신을 생각해보게 하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깐 멈추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라 촉구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도 소개한다. 끝으로 원칙과 합의도 돈으로 사는 오늘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기계화되고 시스템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실한 세계를 소름끼치게 그려낸 『멋진 신세계』, 압도적인 우주의 크기와 우주적 시간에 비교해보면 인간의 욕심이나 다툼 같은 것은 우습기 짝이 없음을 느끼게 해주는 『코스모스』를 통해 인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으로 방점을 찍는다.
홉스가 지지한 찰스 2세 역시 홉스의 책을 출판 금지했습니다. 홉스는 찰스 2세와 절대왕정을 지지했는데 왜 금서로 지정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거예요. 그런데 ‘절대왕정에 대한 지지’라는 결론은 현실적인 타협안일 뿐, 홉스의 본질적인 이론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평등하다 보니 투쟁 상태가 되고, 그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절대왕정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이런 경우, 국가의 권력은 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걸 전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왕정의 입장에서 권력은 신으로부터 왕이 부여받은 신성한 것이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홉스가 결론적으로 절대왕정을 지지했더라도 이론의 본질상 인정받기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 164p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비판 소설을 쓴 조지 오웰에게는 그래서 배신자, 전향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조지 오웰이 비판한 것은 사회주의 자체가 아니라 타락한 사회주의였습니다. 사회주의 자체의 생각이나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제도를 돼지 같은 독재자들이 나타나서 잘못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조지 오웰이 싫어한 것은 독재로 빠지기 쉬운 전체주의적 경향이었던 거예요. / 241p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쓰인 책이 아닙니다. 이타적인 행동을 설명하려고 쓰인 책이에요. ‘이타적 행동으로 보이는 무리의 사회화 행동들이 사실은 유전자 수준에서는 유전자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기능할 뿐이고, 개체들은 유전자의 운반자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 274p



저자가 미리 지적하듯 현학적인 문체로 인해 읽어 내려가기가 무척 힘이 들겠지만, 흥미로운 내용에 추리소설의 뼈대를 가진 『장미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역시 이전에는 이 책이 교육론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가르치려 애쓰지 말고, 그 상황 변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 상황이 변화할 때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자존감을 가르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지식 편의점』은 우리가 평소에 읽기 어려워하는 고전의 주요 맥락을 명쾌하게 소개해주는 한편, 이 책이 쓰이게 된 이유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대 배경, 숨은 정보들까지 더해 확실히 읽는 재미가 있다. 여기에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해 고전에서 얻은 지식을 단순히 아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유용하게 쓰이길 유도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고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려워하는 이들이라면, 제목 그대로 편의점에 들른 듯 간편하게 지식을 꺼내먹는다는 생각으로 이 책에 접근해보시길 바란다. 앞으로 계속 출간될 ‘성장하는 인간 편’과 ‘신이 된 인간 편‘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