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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지우개 괴물!
조성자 지음, 조승연 그림 / 현암주니어 / 2016년 11월
평점 :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기를 내어 반성하고 고백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따뜻한 동화!
내 눈엔 모든 것이 지우개로 보인다
오늘도 지우개 따먹기 놀이에 푹 빠진 신동이의 눈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온통 지우개로 보입니다. 책상 서랍 안에 이미 지우개가 한 가득인데도 더 큰 지우개를 갖고 싶어 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신동이는 반에서 지우개 따먹기를 제일 잘하는 지우개 대장 재강이를 이겨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런 신동이의 마음도 모르고 엄마는 신동이의 책상을 옮기다가 서랍 속의 지우개를 발견하고는 잔소리를 퍼붓습니다.
어김없이 재강이에게 왕 지우개 세 개를 잡아먹히고 ‘지우개 코딱지’라는 별명까지 얻어 화가 솟구쳐 있던 날, 습관처럼 들어간 문구점에서 새로 나온 ‘대왕 지우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우개는 무려 삼천 원이나 하는 게 아니겠어요. 주머니에는 고작해야 내일 준비물을 사는 데 쓸 천 원 밖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동이는 대왕 지우개가 너무나 갖고 싶었어요. 저 대왕 지우개만 있다면 그동안 재강이에게 빼앗긴 모든 지우개를 다 따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주저하고 있던 신동이는 문구점 아저씨가 잠깐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대왕 지우개를 주머니에 쓰윽 넣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쿵쾅쿵쾅 마구 뛰었어요. 앗, 그런데 하필이면 옆에 있던 머리를 짧게 자른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신동이는 부랴부랴 문구점을 빠져나왔지만, 혹시나 문구점 아저씨와 머리 짧은 아저씨가 멱살을 잡고 파출소에 가자고 할 것 같아 겁이 났습니다. 손에서는 식은땀이 계속 나오고, 다리가 휘청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지요.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간 것도 잠시, 마치 기다렸다는 듯 더 큰 충격이 신동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당분간 우리 집에 머무를거라던 삼촌이 하필이면 조금 전 문구점에서 눈이 딱 마주친 그 아저씨가 아니겠어요?
그 날부터 신동이와 삼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엄청난 코 골기 대장에 방귀 뀌기 대장인 삼촌과 한 방에서 자는 것도 불편한데, 문구점에서 지우개를 훔친 일을 엄마에게 이를까봐 내내 조마조마해야 했거든요. 게다가 대왕 지우개가 괴물처럼 변해 입을 쩍 벌리고 낄낄낄 웃으며 “이 도둑놈아!!” 하고 소리치기까지 합니다. 과연 신동이는 문구점 아저씨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삼촌과도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또 재강이와의 지우개 따먹기 놀이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지우개 괴물을 물리칠 거야!
이렇듯 『덤벼라, 지우개 괴물!』은 좋아하고 갖고 싶은 감정에만 몰두하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담은 어린이 동화입니다. 이때 아이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죄책감을 지우개 괴물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독자 대상인 어린이들에게까지 뚜렷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은 물론, 삼촌이라는 인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토닥여주면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의 참모습까지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익살스러운 그림체 역시 이 책의 재미에 한 몫 합니다. 우리 아이가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며 혼자서 키득키득 웃던 게 생각나네요. 그러다 지우개 괴물이 나오면서부터 표정이 심각해졌지만요.
그동안 아이에게 그림책을 쭉 읽어주긴 했지만, 대체로 서너 줄의 글이 있던 그림책에 비해 장문의 글이 나오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아이가 잘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아이에게 며칠씩 끊어 읽자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지우개 괴물이 나오거나 삼촌이 엄마에게 신동이의 잘못을 말할까 조마조마해 하는 부분에선 귀를 막기도 하고, 재강이와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하는 대목에선 우리도 해보자면서 재촉하는 걸 보니 생각보다 몰입해서 듣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았어요. 만약 신동이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다면 도경이는 어떻게 할래? 하고요. 그러자 아이는 “훔치는 건 나쁜 거니까,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하고 돈 받아서 다시 문구점 가서 살래.” 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래도 솔직하게 사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엄마가 돈을 주면 사러 가겠다고 하니, 저는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사실 『덤벼라, 지우개 괴물』은 현암사 인스타그램에서 겉이 조금 상해서 폐기할 위기에 놓인 책을 나눠준다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입니다. 택배 포장을 벗겨서 책을 받아보았을 때 제 마음은 놀라움 반, 속상함 반이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의 흠은 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더 깨끗하고 완성도 높은 책을 보실 수 있게 하려는 출판사의 노력에 감동했고,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흠에도 폐기를 결정해야만 하는 출판사의 마음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간혹 택배 배송 중에 책이 찌그러져서 오거나 서점에 비치되어 있는 책도 깨끗하지 않은 것들이 더러 있거든요. 하물며 사소한 흠 때문에 시중에 내어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보관만 하고 있다가 폐기되는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애써 만든 책이 많은 분들에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는 건 참 속상한 일입니다. 다행히 폐기될 수도 있었을 책을 만나 저와 제 아이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좋은 독서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어릴 때 놀이에 빠진다는 것은 행복한 추억일 것 같아서요…….” 라던 삼촌의 대사가 많이 생각납니다. 문득 지우개 따먹기, 공기놀이, 머리카락 끊기, 고무줄놀이, 소타기 말타기, 땅따먹기……. 유년 시절에 골목길에서나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 한 쪽에서 흔히 했던 놀이들이 생각나네요. 지금의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놀이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 시절에 동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며 나누었던 놀이들을 요즘 아이들은 많이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