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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평점 :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소소하게나마 실행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
버림과 비움만이 목적이 아닌, 삶의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책!
자주 쓰는 에코백을 세탁하기 위해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비우려니 영수증이 한가득이다. 아이들 챙기느라 영수증은 대충 가방에 쑤셔 넣고 나중에 정리해야지 했던 것이 어느새 산더미가 되어 있었던 거다. 가위로 하나씩 잘라가며 한참 동안 정리를 한 후, 그 사이에 쓸 가방을 꺼내 물건을 담으려니…… 아뿔싸. 거기에도 영수증이 또 잔뜩 있다. 이쯤 되면 영수증이 가방 안에서 자가 증식하는 게 틀림없다. 어디 이뿐일까. 겨울 이불을 정리할 데가 없어 큰 정리함 하나를 비우고 그 안에 넣으려고 했더니 정리함 안에 웬 물병이 가득 들어 있다. 예전에 큰 아이 돌잔치 할 때 답례품으로 준비했던 것에서부터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책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굿즈, 각종 행사 기념품까지. 디자인이 예쁘다고 모으고, 아이들 크면 물통 자주 바꿔줘야지 하고 보관해두고, 저마다 기능도 다르니 유용하게 쓰이겠다 싶어 챙긴다는 게 이 정도로 쌓여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주 쓰는 물병 두 개만 줄곧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사실 『단순함의 즐거움』,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와 같이 미니멀리스트 생활자의 책을 읽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몇 번 실천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 때뿐이라 살림은 갈수록 더 늘어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하나일 때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면, 이제 돌 지난 아이까지 키우고 있으려니 부피가 큰 육아용품이 만만치 않게 집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중고장터에 내놓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터뜨린 풍선 조각까지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첫째 아들 때문에 문밖으로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미니멀리스트는 고사하고 맥시멀리스트에 다다를 지경이니, 정말 제대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점점 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물건은 나를 절대 대변해주지 않는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초보 미니멀리스트의 도전기다. 책은 미니멀리스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자가 무작정 비우기에 도전하다가 몇 번을 망설이고, 그러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차근차근 비움을 실천하는 과정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남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소비에 대한 가치관과 삶의 자세까지 바뀌기 시작한 그녀의 담백한 고백들을 읽다 보면 확실히 따라해 보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집안일하는 게 귀찮아서, 하지 않기 위해 아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라니. 주부들이라면 이런 동기부여에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물건 비우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험난한 여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물병만 한가득 쌓아두고 있었던 나처럼 그녀 역시 좋아하지 않는 향의 향초, 발이 불편한 슬리퍼, 우중충한 그림이 그려진 컵 받침 같은 사소한 물건들에서부터 자신의 쓰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얻어온 물건들, 수납장, 입지도 않는 옷들로 혼란스러운 집안을 하나씩 둘러보며 비우는 데 애를 먹는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던 그녀의 말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살 빼면 입어야지, 유행은 다시 돌고 도는 거야, 나중에… 그래 나중에, 이 말을 반복하며 고이고이 모셔두다 고대 유물이 될 지경인 것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 중에서도 물건 비우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것이 바로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이라던 그녀의 말처럼, 지금은 듣지도 못할 카세트테이프나 CD에는 왜 그리 미련이 남는 것이며 고장이 난 휴대폰과 연애시절에 맞춰 입은 커플티(이젠 입을 수도 없는 사이즈에 남편 것은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름)는 또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 화장대 서랍을 정리했는데, 결혼식 부조금 봉투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
긴 시간 옷을 비우며, 지금껏 옷장을 채우고 있던 게 단순히 옷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공간은 욕심, 허영심,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물론 추억이라는 아련한 감정도 꽤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감정을 옷과 함께 비워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 그랬다면 나는 새로운 옷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더하기만 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옷장을 둘러봤다. 한결 깔끔해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웬걸, 놀랍게도 옷장은 여전히 옷으로 빽빽했다. / 52p
물건 비우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것은 바로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은 비워낸다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새롭거나 더 좋은 것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추억의 물건은 한번 사라지면 영영 이별이었다. 다시 구한다 해도, 새로 산 물건에는 과거의 내 손길이 닿아 있지 않으므로 가지는 것에 의미조차 없었다. 그래서 추억의 물건을 비울 때만큼은 오래도록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64p


이거, 비워도 될까? 이거, 나에게 필요한 걸까?
처음에야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서 보지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럴 때 저자는 ‘물건을 비울 때 스스로 해보면 좋은 질문들’이라는 제목으로 좋은 팁을 남겨놓았다. 첫째는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다. 집에서 여백을 발견하면 자꾸만 채우고 싶어지는 마음, 우리 집에 두면 포인트가 될 것 같아 필요치도 않았던 것을 사게 되는 충동 구매, 이렇게 자꾸만 무언가를 더 사고 싶고 필요로 할 때면 그 전에 한 번 더 고민해보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두 번째는 ‘단지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해보자. 한때 순정만화책을 모으는 걸 좋아했던 나는 신혼집에 들고 올 수 없어서 친정집에 두었다가 엄마가 대학 교재와 함께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인 줄 알고 고스란히 버렸다던 눈물의 비화가 있다. 그때는 속이 많이 상했는데, 막상 그 많은 책을 놔둘 곳도 없는데 꾸역꾸역 들고 올 바에야 종이 수집하는 어르신들 용돈 벌이에 보태는 선행이라도 베풀었다면 오히려 다행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 나를 위한 물건인지 남을 위한 물건인지,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지를 질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 물건을 집으로 들일 때 내가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인가, 충동적으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든 첫눈에 마음이 뺏겨버린 물건이든 간에 이 물건과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예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용하고 기쁘게,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하다 헤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버리지도, 가지기도 싫은 애물단지가 되어서 골치만 썩힐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잘 쓰다가 중고로 되팔거나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물려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다면 물건을 사는 일에 보다 더 신중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물건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 생활 패턴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평소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식생활은 어떤지,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서. 내 생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나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잘 알게 됐다. 물건이 전보다 줄었는데도 생활은 불편함 없이 유지됐다.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 72p
헤어짐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 물건을 중고로 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좋아하는 물건이지만 내가 잘 관리해주지 못해서였다. 아크릴 장식장에 만들어서 전시해 두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레고는 실제로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자다. 그런데 제 기능은커녕 생활공간에서 관심받지 못하고 다른 물건들에 둘러싸여가는 것이 마음 아팠다. 무엇이든 소유하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돌봐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방치만 해두었다. 나는 게으르고 나쁜 소유자였다. / 89p



저자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면서, 비움과 소비 절약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서부터 물건을 대하는 태도 또는 삶의 태도까지 변화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절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 기억하고 추억해야 한다는 것,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과 즐거운 시간을 위해 필요하면 갖되 열심히 사용하고 충분히 썼다면 비우리라 다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검색해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알게 됐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의 사용과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실생활에서 발생되는 쓰레기, 특히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 같이 썩지 않는 소재의 사용을 줄이려는 실천을 말한다. 말만 들었을 때는 크게 어렵지 않았게 느껴지지만 내 생활반경을 조금만 둘러봐도 제로 웨이스트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수많은 일회용품에 둘러싸여 살아가던 내가 과연 플라스틱 없이 지낼 수 있을까. / 96p
확실히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니멀리스트로서뿐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삶을 살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심을 더 가지면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으려나. / 120p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삶이다. 불편함은 어느새 익숙함이 됐고, 과거보다는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전보다 편리하지 않을 뿐,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가벼워진 삶 덕분에 번거로움도, 불편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 228p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나의 주변을 흘끔거렸다. 아무래도 나는 게으르고 나쁜 소유자인 게 틀림없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가짐으로써 만족하는 습관을 이번에야말로 비워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