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실 살인과 암호 해독 그리고 다시 재현된 무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을 다시 만나는 시간!
밀실 살인, 암호 해독, 산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그리고 다시 차례차례 재현되는 죽음의 그림자. 추리 소설을 적지 않게 읽어본 이들이라면 다소 친숙할만한 코드다. 그도 그럴 것이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 데뷔작으로, 정통 추리 소설 속에서 빛나는 미스터리 코드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덕분에 고전 추리 소설의 향수를 느끼며 꽤 오랜만에 트릭과 두뇌싸움에 집중해서 읽는 맛을 느낄 수 있다. 거기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반전의 연속, 어린이들에게 불러주는 머더구스를 추리 소설의 열쇠로 만드는 놀라운 상상력과 독자를 암호 해독의 과정으로 함께 끌어들이는 대담함까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날선 집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고전 추리 소설의 매력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반가울 만한 책이다.
“일부러 1년을 기다린 거야.”
“뭐라고?”
마코토가 되물었다.
“나도 빨리 가고 싶었어. 그걸 참고 지금까지 기다린 이유는 이때가 되어야 작년에 묵었던 손님들이 그 숙소에 모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야.” / 33p

1년 전의 그들, 다시 한 자리에 모이다
신슈 하쿠바에 있는 펜션 ‘머더구스’에서 한 남자가 의문사로 발견된다. 그로부터 1년 뒤, 오빠 고이치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하라 나오코는 친구인 마코토와 신슈 하쿠바에 있는 펜션 ‘머더구스’로 향한다. 경찰은 당시 오빠는 조울증 상태였으며, 함께 머물렀던 펜션 사람들에게는 살인 동기가 없을뿐더러 방안은 밀실 상태였기에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나오코는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빠가 죽기 전에 나오코 앞으로 보낸 엽서에는 자살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나오코에게 ‘마리아 님 집에 언제 돌아왔지?’ 라는 구절이 실려 있는 것을 찾아봐달라는 부탁까지 쓰여 있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할 리가 있을까. 때문에 나오코는 자살이 아닌 타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무려 1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직접 신슈에 가보기로 한다. 지난 해, 오빠가 펜션에 머물렀을 때 함께 묵었던 손님들이 고스란히 이번에도 다시 모일 거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여기에 오시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가요?”
마코토가 태연하게 물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질문이다. 역시 그녀와 오길 잘했다고 나오코는 생각했다.
질문에 답한 것은 부인 쪽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아무것도 없어서겠지.” / 45p
“아까 그 부인은 아무것도 없어서 온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가 아닐까?”
“반대?”
나오코는 몸을 일으켰다.
“무슨 소리야?”
“잘은 모르겠지만…….”
마코토는 예리한 눈빛으로 나오코를 봤다.
“여기에 모두 모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 62p


‘런던 브리지와 올드 머더구스’라는 방에 머무는 의사 부부, ‘거위와 키다리 할아버지’라는 방에 머무는 시바우라 부부, ‘풍차’라는 방에서 숙박하며 호쾌해 보이지만 어딘지 기분 나쁜 느낌을 풍기는 가미조, 벌레나 새, 식물을 관찰하는 게 취미인 ‘잭과 질’이란 방의 에나미, 자기과시욕이 강한 타입으로 ‘세인트폴’이라는 방에서 머무는 오오키, ‘여행’이라는 방에서 함께 숙박하는 젊은 샐러리맨 나카무라와 후루카와가 하쿠바 산장으로 다시 모여든다. 거기에 펜션의 주인인 마스터와 공동 경영자인 셰프, 남자 종업원인 다카세와 여자 종업원인 구루미까지. 나오코와 마코토는 오빠가 죽었던 ‘험프티 덤프티’에 머물며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숨긴 채 1년 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조심스레 추적해간다.
나오코와 마코토는 오빠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면서, 이 펜션만의 독특한 특징에 의혹을 품게 된다. 바로 각기 다른 내용의 머더구스가 방 마다 벽걸이로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나오코와 마코토는 죽은 오빠가 이 머더구스 풀이에 매달렸던 점과 옛 여주인이 이 이를 행복의 주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머더구스 사이에 숨겨진 암호를 해석해야만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그러는 동안에 2년 전에도 숙소 뒤쪽 계곡 돌다리에서 한 사람이 죽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이곳에서 또다시 끔찍한 살인 사건을 마주하고야 만다. 과연 두 소녀는 오빠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머더구스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 청년도 주문에 매달린 것 같았네. 그것도 역시 자네 영향이었지?”
“그런 점도 있지만 그 사람은 벽걸이 노래에서 주문 이상의 것을 찾은 듯합니다.”
“주문 이상의 것?”
마코토가 되물었다.
“예. 그는 주문을 암호로 해석한 것 같아요. 머더구스 노래는 실은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암호이고, 거기에는 보물 같은 게 숨겨져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얘기였죠. 그래서 행복의 주문이 되는 거랍니다.” / 113p
“3년 연속 사람이 죽었어요. 게다가 똑같은 시기에.”
“우연이라면 무서운 일이죠.”
“아니요.”
마코토가 형사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우연이 아닌 경우가 무서운 일입니다.” / 188p



소설은 매년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연속된 살인 사건과 어딘지 기괴한 구석이 있는 머더구스의 암호 풀이 그리고 밀실 트릭이란 장치를 이용해 독자들을 단숨에 책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또 굉장히 복잡한 내막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슬픈 사연과 인간의 서글픈 욕망이 낳은 연속된 비극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다만 암호 풀이와 용의자들의 구술을 중심으로 한 사건 해결에 보다 집중되어 있는 방식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기꺼이 찾게 되는 특유의 매력과 고전 추리 소설의 향수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