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 매일 흔들리지만 그래도
오리여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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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나를 소비했던 일상이 아닌 이제는 여유를 주어도 좋을 때!

오리여인만의 따뜻한 글과 그림을 읽다보면 어느 새 내 마음에도 휴식이 쌓여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아이들과 집에서만 지내다보니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이 되고 말았다. 그래, 어차피 외출하기도 어려운데 그냥 두자. 일단은 방전된 상태로 두자, 하고 한참을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이번 일요일에는 집에 있을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노라 선언하고 외출을 감행했다. 아뿔싸, 차가 방전되어 있었지.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방전된 차량 배터리를 충전해줄 기사님을 불렀더니,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가 완전 방전 상태 직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한참 방전이 되었던 배터리가 다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목적지도 두지 않고 무작정 차를 몰았다. 겨우 서너 시간에 불과했지만, 덕분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난 이후 가장 오랫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오직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딱히 한 건 없었다. 그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에게 시간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이 되면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나 역시 그간 소진된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려줄 힘이 필요했었나 보다. 꽤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완전히 방전되어버리기 직전의 상태였음을 그때서야 깨닫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가끔은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을지도 몰라.”

 

땅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던 나팔꽃이 새싹을 삐죽 틔운 것처럼,

아보카도가 쑤욱 싹을 올린 것처럼,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더니

결국은 싹을 틔워내 얼굴을 보여주었다.

시간을 주는 것.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식물에게도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 / 26p 

 

 

 

   그 날. 나는 차창을 툭툭, 무심히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의 한 대목을 읽고 있었다. 그간 혹시나 기관지가 약한 어린 두 아들이 전염이 될까 늘 조심스럽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세상 떠나라 울어대는 둘째 아이 때문에 낮잠만 자길 기다리며 부랴부랴 밖으로 뛰어나가 필요한 물건만 사고 오느라 마음 졸이고, 장기간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첫째 아이를 위해 매일 이것 해줘야지 저것 해줘야지 고민하고 준비하느라 바빴던 그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잠시 나 혼자만의 외출을 하는 동안에도 집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고 있었던 나에게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던지, 책 속의 문장으로 차오르는 생각을 다독였다. 참 감사한 일이다. 때마침 손에 들고 나온 책 한 권이 이렇게나 나를 쓰다듬어 줄 줄이야.

 

 

 

 

 

 

딱딱해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글과 그림으로 15만 팔로워로부터 큰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는 오리여인의 신작 에세이다. 5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하며 소진했던 몸과 마음에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은 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작지만 나만의 보폭으로 사는 소중함을 경험한 일상이 소복이 담겨 있다. 서두르지 않다보면 보이는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삶, 우리의 삶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딱딱해져 있던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한 번씩 쓰고 버리는 주방 수세미를 사보았고, 공기 청정기가 있다는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았다. 이렇게 매일 어떤 ‘처음’을 맞이할 때면 호기심과 설렘이 마음에 가득 찬다. 사소하지만 모든 처음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 그렇게 계속 나이 들고 싶다. / 56p

 

 

 

 

 

 

   그녀는 물방울과 달, 밤과 돌멩이, 머루와 꽃잎,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 동그란 이유는 둥글게 둥글게 서로 잘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추위에 강한 식물, 햇빛을 좋아하는 식물, 물을 자주 주거나 혹은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 등 다 비슷해 보이지만 제각각인 식물들에게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배운다. 시간을 오래 들이는 요리를 하며 내일 아침에 온다던 친구를 만날 생각에 설레어하고, 팝송을 알게 되고 민트 초코칩과 비오는 날이 좋아진 건 내가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이라는 깨달음에 감사해한다. 그렇게 사소해보이지만 내 눈과 마음에 머무르는 것들에 감사해하는 그녀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마음이 훌쩍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 말걸.’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후회. 예전에 면접 전날에 살짝 튀어나온 여드름을 짜냈더니 더 큰 여드름이 되었던 일이 생각났다. 늘 가던 미용실을 놔두고 더 예쁘게 해준다는 곳에 소개로 갔다가 결국 머리를 왕창 잘라내야 했던 순간도, 짝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친구에게 화장을 받고는 망했던 경험, 유튜브를 보며 고데기로 머리를 하다가 결국 다시 머리를 감아버렸던 기억도 모두 떠올랐다.

그리 눈에 띄는 흉터도 아니었는데 욕심으로 쿡쿡 찌르고 만지다 괴로움만 더해졌다. 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정말 저를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사랑할게요! / 155p

 

 

 

 

 

 

   아이들 밥 삼시세끼 챙기느라 바쁜 요즘, 내 몸 챙겨주려 차려준 엄마의 밥상이 유독 그립다. 약간의 소음이 뒤섞인 카페 안 구석에 앉아 서걱서걱 책장 넘기는 촉감을 자주 상상한다. 오늘은 나가볼까, 고민해보지 않고 그냥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걸음도 간절한 요즘이다. 때문에 평소보다 뭔가 더 야속하고 미워지고 우울한 마음만 커져가고 있다. 아, 정말이지 이대로라면 나 폭주할 것 같아! 하고 소리 지르려던 순간에 만난 책이여서일까. 어떤 특별한 감상보다는 그저 지친 내 마음을 매만져주고 위로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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