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

 

 

 

사회의 밑바닥과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생생하게 묘사하다!

유머와 해학이라는 요소를 이용해 시대를 풍자하고 비판하고자 한 작가의 위대한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

 

 

   수많은 고전 중에서도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최고로 손꼽는 작품 중에 하나다. 작가의 후기 대표작답게,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빈민자들의 삶과 귀족의 폭압 정치, 복수에 얽힌 광기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디킨스 식 문체를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바로 디킨스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올리버 트위스트』는 그의 작가정신과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초가 될 만한 작품이다. 비록 『두 도시 이야기』가 보여주는 강렬하고도 원숙한 느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의 밑바닥과 부정 그리고 모순을 날카롭게 직시하되 유머러스하면서 해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특유의 자신감과 예술적 야망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중적이면서 희극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만큼 찰스 디킨스의 문학 세계를 즐겨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단 『올리버 트위스트』부터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선한 사람들의 의지를 믿는 이들이 있는 한

  흔히 대중을 열광케 하는 작품 속에는 공통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 이를 테면 출생의 비밀, 주인공보다 더 눈에 띄는 비열한 악한,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 죽음을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같은 것들이다. 소설『올리버 트위스트』에는 이러한 요소가 적재적소에 나타난다. ‘고아원 소년의 여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소년 올리버가 고아로 자라 온갖 학대와 누명 그리고 죽음의 위기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악은 심판을 받고, 올리버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는 일련의 전개 속에서 우리는 분명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일단 첫 장에서부터 눈을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태어난 곳과 출생을 둘러싼 환경의 특성’, ‘유쾌한 노신사와 어린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 똑똑한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진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 장’과 같이 설명이자 요약에 가까운 ‘차례’가 그러하다. 또 작품의 출간 목적과 이야기 구성, 소설적 장치를 작가 스스로 먼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저자 서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저자 서문은 작품을 모두 읽은 후에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저자의 의도를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니 이를 추천한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범죄자들과 런던 인구의 하류층에서 선정되었다는 것이 아주 조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으로 보일 것이다. 사익스는 도둑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에다가, 주인공 소녀는 매춘부다.

하지만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괸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했으며, 가장 선량하고 지혜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성과 모든 사려 깊은 정신의 경험이 그것을 확증한다. / 10p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구빈원(생활 능력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하여 구호하는 공적·사적인 시절)에서 자라게 된 올리버가 학대와 굶주림으로부터 달아나 런던에 이르러 악명 높은 장물아비와 소매치기 소년들을 만나는 내용이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박해받는 자들의 지지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를 잃었다’던 찰스 디킨스의 묘비명에서 알 수 있듯, 여기에서는 구빈원의 고아로 자라나 인간답게 살기를 거부당해야 했던 소년 올리버의 기구하고도 참혹한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구빈원 지부의 관리자인 노부인과 말단 교구관 범블 씨로부터는 사회 행정적 요소의 부패함을, 소매치기 하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훔친 물건을 챙기는 유대인이나 사익스로부터는 도덕을 훼손하고 약자를 유린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는 사회 밑바닥 계층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립킨스 이사장님, 죄송하지만, 올리버가 더 달라고 했답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모든 이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더 달라고 했다고!” 림킨스 이사장이 소리쳤다. “범블, 일단 진정하게. 그리고 내 말에 똑바로 대답하게, 지금 그 아이가 규정대로 배급받은 저녁을 다 먹고서도 더 달라고 했다는 말인가?”

“네 그랬답니다, 이사장님.” 범블 씨가 대답했다.

“그 녀석은 앞으로 교수형을 당하겠군. 장담하건대, 교수형을 당할 거라고.” / 37p

 

 

이 광경을, 배 속에서는 고기와 술이 썩어나고 얼음 같은 피와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철학자들이 좀 보았으면 싶다. 올리버 트위스트가 개도 거들떠보지 않을 진수성찬에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허기로 잔뜩 독이 오른 올리버가 고기뼈를 갈기갈기 찢어내듯 뜯어먹는 끔찍한 탐욕의 광경을 직접 목도하면 그 감상이 어떠할까? 이보다 더 바라는 소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철학자도 똑같은 음식을 올리버와 똑같이 탐욕스럽게 먹는 것이다. / 59p

 

 

동네 가게에서 일하는 아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길거리에서 노아를 보면 ‘거지새끼’처럼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러대기 일쑤였다. 이런 모욕적인 놀림에도 노아는 대꾸 한 마디 없이 참고 지냈다. 그러나 이제 운명은 노아 앞에 이름 모를 고아 하나를 던져주었다. 이 고아는 가장 미천한 자조차도 손가락질하며 깔볼 수 있는 존재였다. 노아는 자기가 받은 모욕에 이자를 얹어서 실컷 되갚아주었다. 이런 상황 전개는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명상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장 훌륭한 귀족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자선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 아름다운 본성은 아주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 65p

 

 

 

 

 

 

   2부와 3부에서는 사익스에 의해 의도치 않게 강도 현장에 따라 나서게 된 올리버가 총에 맞음으로써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다행히 로즈 양과 메일리 부인을 만나 마침내 따뜻한 사랑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으로 갈무리된다. 여기에서는 올리버의 해피엔딩 여부보다, 교활한 악당들에게서 엿보이는 선에 대한 증오와 죄의식 그리고 응징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보다 집중함으로써 이 소설이 단순히 신파적인 요소로 가득한 소설이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브라운로 씨나 로즈 양처럼,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올리버를 믿고 포용함으로써 인간의 선한 의지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또한 인상적으로 봐야 할 듯하다.

 

 

 

“아무리 저 아이가 나쁜 아이라고 해도 아직 어리잖아요.” 로즈 양이 말을 이어갔다. “엄마의 사랑이나 가정의 따뜻함을 아예 몰랐을 수 있어요. 학대와 매질, 배고픔 때문에 악당들과 한패가 되어 범죄로 내몰린 건지도 모르지요. 이모님, 사랑하는 우리 이모님, 이 아픈 아이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 제발 이런 점을 먼저 생각해주세요. 갱생할 기회는 줘봐야죠.” / 327p

 

 

범블 씨는 기습 공격을 당해 끔찍하게 패배를 한 셈이었다. 분명히 범블 씨에게는 약자를 괴롭히는 성향이 있었다. 이런 성향을 잘 발휘해서, 자잘한 가혹행위로 상당한 쾌감을 얻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범블 씨는 겁쟁이가 틀림없었다. 절대로 범블 씨의 성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엄청나게 존경받고 추앙받는 공직자들도 이와 비슷한 약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범블 씨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었다. 범블 씨가 공직자의 적절한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는 느낌을 만방에 널리 알리는 격이 아닌가. / 402p

 

 

무릇 살인자들이 심판을 피했다고 하느님의 섭리가 잠들었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두려운 고통으로 가득한 기나긴 1분이 수백 번의 난폭한 죽음과 맞먹는 법이기 때문이다. / 534p

 

 

 

 

 

 

   이처럼 소설은 당시 영국의 시대상을 암울하고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이를 풍자와 해학이라는 유머 코드로 표현해냄으로써 독특한 소설적 성취를 완성해낸다. 이것이 시대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반영한 『두 도시 이야기』란 작품과 유사한 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분명한 차이를 지닌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작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 와 후기작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도시 이야기』를 함께 읽어본 나로서는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며 또 어떤 작품이 있는지, 그의 작품 세계를 더 넓게 이해해보고 싶어졌다. 끝으로 덧붙여보자면, 다수의 출판사에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테지만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번역본에는 19세기 최고의 삽화가였던 조지 크룩생크의 삽화가 24장 수록되어 있다. 작품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이를 참고하기 좋을 듯하여 추천 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