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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호 세대 ㅣ 인문 잡지 한편 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1월
평점 :

세대와 불평등, 젠더에 관한 가장 콤팩트한 담론들!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쟁이 되는 주제를 전면에 제시한 새로운 형식의 인문잡지!
총선을 앞두고 있다. 어김없이 세대 프레임을 극복하고 청년의 정치 참여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세대교체론’이 대두될 예정이다. 특히 ‘청년 정치’는 한결같이 이전 정권의 낡은 기득권적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선동이자 표심 공략법으로 작동되어 왔다. 하지만 《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안성민)에 따르면 20대 국회는 ‘40대 미만 국회의원 역대 최저’라는 기록을 세웠고, 19세부터 39세까지 이른바 ‘2030세대’의 경우 유권자 수가 무려 전체의 35.7%였음에도 불구하고 40세 미만의 지역구 출마자 중 당선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작 1%도 되지 않는 청년 정치인들이 무려 36%의 유권자인 청년들을 대변해야 하는 비상식적이고 기형적인 대의민주주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 지겹도록 반복되는 세대주의와, 청년팔이(김선기, 「청년팔이 사회」)가 이제는 가장 낡은 정치적 언어이자 한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물며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구조는 우리 사회의 끈질긴 병폐다. 현실이 이러한데 왜 여전히 세대주의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는 것일까.
세대의 역사, 그 가능성과 과제에 대한 담론
지난 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바로 《90년생이 온다》(임홍택)이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현 청년들의 세태와 고민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앞에서는 늘 중요한 의문이 하나 생긴다. 《90년생이 온다》 속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밀레니얼 세대로 대표되는 특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세대로 묶어서 잘 설명되는 현상이 있고, 아무래도 세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베이비붐세대, X세대, 386세대, N포 세대, 밀레니얼 세대와 같은 세대론을 끊임없이 관통해왔다. 왜 우리는 인간을 나이대에 따라서 구분을 하고 또 그것에 이름표를 붙여가며 세대론을 계속해서 양산해 내는 것일까. 애초에 세대라는 개념은 누가 만들어 내는 것일까. 세대는 왜 문제일까. 세대는 세대론이 만들어 내는 환상일까, 변화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일까. 2020년에는 세대 이야기를 이제 그만해야 할까, 앞으로 더 해야 할까. 사람들이 세대를 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민음사에서 출간한 새로운 형식의 인문잡지 《한편》은 ‘세대’를 그 첫 번째 화두로 내걸었다. 여기에는 아주 콤팩트한 형식의 열 편의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 근대성과 세대 그리고 청년이라는 연쇄적인 담론 고리를 통해 세대 이론의 중심 서사를 살펴본 박동수의 「페미니즘 세대 선언」, 세대주의를 직접적으로 청년팔이라고 선언하며 세대론의 한계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인지하면서도 다시금 세대론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세대주의적인 발화와 행동을 실천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김선기의 「청년팔이의 시대」, 꾸밈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점점 더 낮아지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하여 1020 탈코르셋 운동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를 진단하고 있는 이민경의 「1020 탈코르셋 세대」, 이른바 ‘20대 남자’들에게서 엿보이는 반페미니즘의 기원과 성격을 살펴보고 그들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또 왜, 어떻게 반대하는가를 자신의 언어와 맥락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우창의 「“20대 남자” 문제」, 개인이 강조되는 밀레니얼 세대 내에서 오히려 가족 배경의 결정력이 더욱 커지고 계층간의 이질성이 강화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살펴보는 김영미의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세대론의 기원과 동력을 살펴본 고유경의 「세대, 기억의 공통체」가 바로 그러하다.
요컨대 근대사회에서 근대성, 세대, 청년은 하나의 연쇄적인 담론 고리를 형성해 왔다. 기성세대의 근대화 기획에 의해 주조된 청년세대가 고유한 세대를 형성하고, 기성세대와 변별되는 새로운 근대화 모델을 주창하며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고, 이 갈등 속에서 ‘근대화의 근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근대적 세대 이론의 중심 서사이며, 이 때문에 청년세대가 사회와 역사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규정하는 일이 세대론의 핵심 문제가 된다. 따라서 세대론은 언제나 청년론이자 근대화론이다. / ‘페미니즘 세대 선언’ 중에서 19p
이 같은 맥락에서 세대주의는 교묘하게 계산된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일상적으로 편재해 있는, 대다수 사회 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상상(imaginary)에 가깝다. 데이터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을 때도 세대론이 생산되고, 또 그러한 세대론이 무리 없이 수용되는 바탕에는 ‘세대는 중요하다’, ‘세대 차이는 존재한다’, ‘청년은 기성세대에 비해 어떠하다.’라는 데 대한 느슨하지만 견고한 믿음(belief)이 깔려 있다. 담론과 실재는 순환하며 서로를 강화한다. 세대주의적인 믿음은 세대주의적인 행위와 제도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세대라는 실재가 현저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이어져 다시금 믿음을 확신으로 바꾼다. / ‘청년팔이의 시대’ 중에서 41p
국가와 민족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처럼 보일 때 청년세대는 국가의 숭배 대상으로 부상했다. 통일로 성립된 독일 제국(1871~1918) 시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청년 예찬론은 청년(Jugend)을 단지 인간의 생물학적 발달 단계를 지칭하는 표현을 넘어,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가치관을 대변하는 수사로 활용했다. 순수하고 도덕적인 청년들의 자발성과 개방성, 희생정신이야말로 타락하고 낡은 독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변혁과 전복의 아이콘으로서 청년은 기성세대에게 희망과 공포의 양가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청년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통제의 대상이었다. / ‘세대, 기억의 공동체’ 편 중에서 151p



뿐만 아니라 중국은 어떠한 세대적 변화를 거쳐왔는지 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남석의 「오늘의 중국 청년들」, 한국과 베트남의 밀레니얼 세대를 비교 분석 하여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한 조영태의 「밀레니얼은 다 똑같아?」와 같이 한국 사회의 범주에서 벗어났을 때 세대 문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세대 문제와 비교해보는 텍스트들도 눈에 띈다. 아울러 영화 <벌새>를 통해 주인공인 은희의 시선에서 바라 본 현대 사회라는 시대적인 감각과 성장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이나라의 「<벌새>와 성장의 딜레마」, 기후위기를 통해 미래세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혜선의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는 학술적인 의미를 넘어서 다양한 개념의 지도를 넓혀가려는 인문잡지 《한편》의 시도가 엿보이는 부분들이라 또한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더 윤리적인 ‘청년팔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이 또한 끊임없이 조정되겠지만) 잠정적인 두 가지 원칙은 이렇다. 우선, 대안적인 ‘청년팔이’는 다차원적인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만 19~39세의 청년층 인구는 천만 명이 넘기 때문에, ‘청년’을 주어로 전체를 이야기하게 되면 같은 청년이라도 누구는 선택되고, 누구는 배제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청년’에 대한 강조가 세대내의 불평등과 격차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으므로, ‘청년’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문제에 각별히 성찰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 ‘청년팔이의 시대’ 중에서 51p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반)페미니즘이 불과 2~3년 만에 해당 세대 남성 집단 전반으로 퍼져 나간 데서 알 수 있듯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과거와는 다른 장치, 다른 매체, 다른 동학, 다른 전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차이를 인식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로인 언어와 담론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그것들이 어떤 요소들로 이우러졌으며 어떤 지향점과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분석하지 않는 한, 20대 남성이 586세대의 기대와 예측을 벗어나는 일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서로를 향한 경멸과 분노의 심정이 회전하는 나사못처럼 더욱 깊어지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히 예측할 수 있다. / “20대 남자 문제” 중에서 91p
이제 우리는 부모 세대에서의 불평등이 자녀 세대에서의 기회 불평등을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증폭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불평등은 개인들의 타고난 능력 차이에 따른 경제적 결과를 증폭시켜 약간의 지능 차이가 고액의 연봉 차이로 귀결되게 만든다. 불평등은 부모들의 교육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를 변화시켜 자녀의 계층 하강 위험에 극도로 민감해진 중간 계급 교육 기회 사재기를 부추긴다. (리처드 리브스, 『20 vs 80의 사회』) 또한 불평등은 파워 집단이 자녀의 재능과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의 불균형 상태를 초래한다. / ‘밀레니얼에게 가족이란’ 중에서 104p


괴테가 ‘경험의 공유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하였듯 ‘세대’를 주제로 각각의 텍스트들을 읽다보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세대주의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세대주의가 촉발한 다양한 불평등 문제, 이제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구도가 되어버린 젠더의 관한 이견들이 우리 사회를 더욱 양극으로 갈라놓고 상황에서, 내 아이가 성장하여 맞이할 미래 세대는 우리가 극복하지 못한 딜레마에 더 큰 타격을 입으리라는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읽고 다함께 이야기해보자는 《한편》의 의도는 나름 성공적인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각기 독특한 사회적 경험을 하며, 그에 기반을 둔 자전적인 사회학적 성찰을 만들어 가는 자기 삶의 사회학자들’이라 하여 ‘특정한 세대론을 채택하거나 거부하는 일, 그러한 담론을 바꾸는 일, 나아가 자신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은 모두 보통의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달려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 박동수의 글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되새겨봄직 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세대론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회 변동을 이끄는 집단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실재하는 주체이건 지배 집단의 의도로 만들어지는 기회이건, 경험의 공동체이자 기억의 공동체로 세대를 중심에 놓을 때 역사는 새롭게 쓰일 수 있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여전히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와 민족 중심의 서사는 청년세대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주변부에 위치해 왔던 여러 집단적 범주들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거대 서사에서 소외된 다양한 주체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어 역사를 보는 관점을 다변화하는 일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을 양성하는 시민 교육의 맥락에서도 중요하다. / ‘세대, 기억의 공동체’ 중에서 158p


이처럼 《한편》은 ‘세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학,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 인구학, 미학, 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들을 연결한 독특한 형식의 인문 잡지를 지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열 편의 글 모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명된 이래 종이책 판매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사르트르와 같은 권위 있는 지식인은 이제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우리가 최악의 도구이자 최고의 도구인 인터넷을 활용할 때, 한명의 사상가에 기대는 대신 여러 분과 학문의 연구를 연결할 때 인문과학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이반 자블론카의 말처럼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가 한편, 한편으로 엮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자 한 이들의 의도는 주효한 듯하다. 창간호의 ‘세대’ 편은 그 시작과 방향성을 타진하며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올 2호 ‘인플루언서’, 3호 ‘환상’은 또 무엇을 이야기할지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