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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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라서 더 강렬하고 치명적이다!

완벽을 향한 열정과 탐욕,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낳은 가장 독특한 이야기!

 

 

인간은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반드시 소유하려 한다.

-마이클 소마레 파푸아뉴기니 총리(1979)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깃털에 대한 이야기이자 완벽하고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낳은 범죄에 관한 이야기로, 장대한 자연사와 인류사가 한 데로 얽힌 르포르타주이다. 우리는 새의 깃털을 훔친 한 남자를 추적함으로써 플라이 중독자, 깃털 장수, 박물학자, 수집벽이 있는 은행 재벌, 큐레이터, 형사, 수상쩍은 치과의사 등을 거쳐 어떻게 이토록 놀랍고도 거대한 진실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진실이라기에는 더욱이 믿고 싶지 않은 강렬하고도 이 묵직한 이야기에 한 방 맞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할지도.

 

 

 

 

 

 

인간의 욕망이 낳은 가장 잔혹한 현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이라크 난민들을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일을 돕고 있던 커크 월리스 존슨은 플라이 낚시를 하다가 유별난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된다. “혹시 에드윈 리스트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어요? 아마 그가 플라이 타이어들 중에 최고일 겁니다. 플라이에 붙일 깃털을 구하기 위해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들을 훔쳤을 정도니까요.” 낚시꾼들과 플라이 타이어들 사이에서 플라이는 이른바 ‘낚시의 예술’로 통한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깃털로 만든 아름다운 빅토리아식 연어 플라이는 예술을 뛰어넘어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실현된 상징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 관련 표본을 보유하고 있는 트링의 자연사박물관을 침입한 기이한 도둑이자, 열아홉 살의 천재 플루트 연주자이며 ‘플라잉 타잉의 미래’라고 알려졌을 만큼 빅토리아 연어 플라이의 천재 제작자인 에드윈 리스트의 이야기는 금세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깃털 도둑』은 바로 에드윈 리스트가 트링의 자연사박물관에 침입하던 그 날 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점도, 궁금한 점도 늘어갔다. 나는 결국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이 플라이 중독자, 깃털 장수, 마약 중독자, 맹수 사냥꾼, 전직 형사, 수상쩍은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은밀한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 23p

 

 

 

 

 

 

   2007년, 에드윈 리스트는 꽤 이름난 훅 기술자인 론 루커스의 웹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린다. “플라잉 타잉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어 깃털 구조를 관찰하고, 플라이를 디자인하고, 하나의 플라이 안에 우리가 정확히 원하는 것을 모두 담아내도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가는 집념의 작업이다.” 에드윈이 플라이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은 아버지가 연구를 위해 틀어놓는 어느 비디오를 우연히 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곧장 플라이를 직접 만드는 일에 매달리고, 이내 플라이 타잉에 관한 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플라이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진짜’ 깃털이 없다는 생각은 플라이 타잉을 향한 그의 예술적 집념을 수시로 꺾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이 타잉만큼이나 뛰어난 플루트 연주 실력을 지니고 있던 그는 런던 왕립음악원 합격 통지서와 함께 쿠튀리에로부터 트링 자연사박물관에 가보라는 운명의 이메일을 받게 된다. 이때, 트링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희귀새에 매료된 에드윈은 새들을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스무 살의 에드윈에게 박물관의 새를 훔쳐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정당화된다. 그 새들만 있으, 플루티스트로서 야망도 실현하고, 타잉계에서 그동안 누리고 싶었던 지위도 누리고, 형편이 나빠진 가족도 도울 수 있다고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새의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므로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자신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험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계획은 실행되고, 너무나 허술해 보이지만 어쩌면 잡히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이 범죄는 무려 500일하고도 7일이 지난 뒤에야 꼬리가 밟히고 만다.

 

 

 

범인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욱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쇼트하우스나 메이너츠하겐 사건처럼 표본에 붙은 이름표가 손상되거나 변경되는 일 없이, 원상태 그대로 찾는 것이 중요했다. 수집 날짜와 지역 정보가 없으면, 그 표본과 관련하여 유의미한 추론을 끌어낼 수가 없으므로 연구원들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박제에 사용된 재료나 솜으로 학문적인 추론을 해볼 수는 있지만, 시간도 엄청나게 걸릴뿐더러 확실한 결과를 보장할 수도 없었다. / 164p

 

 

 

   이쯤되면 무단으로 자연사박물관을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희귀새 표본을 무려 299점이나 훔치고 일부를 훼손하여 판매까지 한 에드윈에게 중형이 내려져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놀랍게도 그는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간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데다 금전적인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한 거짓으로 보였음에도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한다. 그렇게 자칫 깃털 오타쿠의 가벼운 범죄쯤으로 묻힐 뻔한 사건을 들추면서 작가인 커크 월리스 존슨은 그의 범죄 행위에 관한 진실만큼이나 여러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조류 표본 도난 사건의 피해로 전세계 자연사박물관이 처한 어려움, 예산부족으로 인한 허술한 박물관의 경비 시스템, 박물관을 ‘먼지 날리는 낡은 쓰레기장’이라고 표현하는 시각들, 보호종으로 지정된 새들이 버젓이 사고 팔리는 것에서 오는 회의감, 뚜렷한 근거와 기준이 불분명한 정신 질환이 재판에 미치는 악영향까지, 우리 사회의 각종 모순들이 그의 글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채집 열풍이 크게 번지면서 프랑스인들은 조개류 수집을 유행시켰다. 덕분에 소라고둥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콘칠로마니아라는 말이 생겼다. 뒤이어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일명 테리도마니아라는, 양치식물 채집 광풍이 일어나면서 영국 구석구석의 이끼라는 이끼는 모조리 뽑혀나가 정원을 꾸미는 데 사용되었다. 역사학자 D. E. 앨런에 따르면, 사람들은 희귀한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자연 수집품으로 채워 넣은 응접실 장식장이 교양인의 필수품이 되었다고 한다. / 32p

 

 

1886년 어느 유명한 조류학자가 깃털 열병의 심각성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 외곽의 쇼핑 구역에서 오후 시간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비공식적으로 조사했다. 700명의 여성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중 약 3분의 1이 새 한 마리의 깃털을 통째로 달고 있었다. 모자에 꽂힌 새들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이 아니었다. 뒤뜰에 날아오는 흔한 새들은 패션계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유행을 선도하려면, 극락조, 앵무새, 큰부리새, 케찰, 벌새, 루피콜라새, 쇠백로, 물수리 정도는 되어야 했다. 모자가 이렇게 새들의 공동묘지가 되어가는 동안 의류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한 상인은 벌새 8000마리로 숄을 만들어 팔았다. / 72p

 

 

 

 

 

 

   이처럼 『깃털 도둑』은 깃털을 훔친 한 남자의 소설 같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멸종의 시대를 맞이해야만 했는지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르포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다윈과 함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밝힌 월리스가 오랜 지구의 역사가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물관에 최대한 많은 표본을 소장해달라고 영국 정부에 간곡히 요청한 대목은 큰 울림을 준다.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분명 활용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새 가죽에는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저히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먼 훗날 우리는 돈에만 눈이 멀어,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줄 기록을 지키고 보존하는 대신 어리석게도 그 기록들이 파괴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후손들이 우리를 비난할 것입니다.”

 

 

 

“수집가들 덕분에 동물학이 발전했다는 자네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어. 그들은 박물관을 채웠다고 자랑스러워하겠지만, 사실은 자연을 비운 것이지……. 매우 부적절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네.”

로스차일드가 고용한 수집가들이 홍역이었다면, 괴저 같은 사냥꾼도 있었다. 트링박물관을 채우기 위해 아무리 많은 새를 잡았다고 해도 전 세계 곳곳의 정글과 늪지 그리고 강가에서 벌어진 살육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1869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문명인’들이 몰고 올 파괴적인 잠재력이 두렵다고는 했지만, 역사가들이 말하는 “멸종의 시대”가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은 몰랐다. 그 ‘멸종의 시대’에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동물이 인간의 손에 처참히 죽어갔다. / 69p

 

 

프리스 존스 박사와 애덤스는 세상이 이미 이러한 표본들에 지식이라는 빚을 졌다고 설명했다. 월리스와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밝혀낸 것도 그 덕분이었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알 표본들을 서로 비교해 DDT 살충제가 쓰인 이후부터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알의 부화율도 줄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이 살충제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다. 좀 더 최근에는 150년 된 바닷새의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서 바닷물의 수은량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 234p

 

 

 

 

 

 

   “나는 누군가는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시인해주기를 바랐다”던 작가의 고백이 내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한 편의 소설 같은 깃털 도둑의 이야기가 전하는 인류에 대한 경고를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잊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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