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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너무 팍팍해서
고바야시 쇼헤이 지음, 김복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철학자로부터 일상의 고민과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
그동안 읽었던 철학서가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세요!
올해도 인문학 열풍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패션업계에서 의도적으로 소비자들의 소비를 자극시키기 위해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다는 ‘치마길이 이론’처럼, 삶이 팍팍하고 개인과 국가의 정서가 위축될수록 인문학의 관심 역시 증대된다는 어느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지금 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고민과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현대 사회에 주로 논의되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적 사고법을 기르고, 철학을 삶의 기술과도 같은 인생의 무기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교양철학서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출간된 책 중에 하나다. 눈앞이 깜깜하고 절망적일 때, 심각한 고민에 직면했을 때, 우리보다 한발 앞서 고뇌했던 철학자들이 인생을 바쳐 남긴 저작들을 펼쳐봄으로써 인생의 위기를 든든하게 극복하고 완주할 수 있기를 응원하는 책이다.
25가지 고민에 대한 철학자의 훌륭한 인생 상담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늘 불안해요’, ‘제 외모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제 일을 못 해요’, ‘꼴 보기 싫은 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퉈요’. 살다 보면 우리는 이처럼 크고 작은 고민에 수시로 직면한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 내에서, 타인과의 만남에서 항상 을의 입장이 되곤 하는 관계 사이에서,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인해 우리는 매 순간 흔들리고 휘청거린다. 문제는 누굴 붙잡고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때뿐이고, 어떤 명확한 해답을 구할 데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다 이내 체념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이에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지만 쉽게 풀리지 않았던 고민들에 현실적인 조언과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본다. 기존의 철학서들이 사상가들의 철학 이론을 쭉 나열하듯 설명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일’, ‘자존감’, ‘관계’, ‘연애와 결혼’, ‘인생’,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 실제 사상가들이 어떻게 사유하고 스스로 극복해나가려 했는지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여러 철학서를 읽어왔음에도 여전히 철학이 어렵고 복잡하기만한 나에게는 그 어느 책보다 단순하면서 명쾌하게 잘 읽혔기에 단연 인상적이었다.
그러므로 결과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요령 부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끝까지 즐기는 사람의 행동은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좋은 결과가 뒤따를 테지요. 바람직한 결과란 과정을 즐겁게 치르고 남은 거스름돈과 같은 것입니다. (중략)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작업에 온 힘을 다하고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사람. 세상은 이런 사람을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아우라를 알아보는 이가 나타나 기꺼이 새로운 과제를 맡길 테니까요. / 아리스토텔레스 “‘지금’에 충실해야 ‘다음’이 있다” 편 중에서 24p
인간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엔진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베버는 근면 성실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동기를 돈이 아닌 다른 가치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엔진은 예정설과 같은 장대한 서사가 아닌, 바로 우리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개인의 서사라는 것이죠.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온 내밀한 서사 말입니다. / 막스 베버 “부의 추구와 성취는 ‘고명’에 충실한 결과이다” 편 중에서 46p


믿었던 친구의 배신,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한 이별, 돌이킬 수 없는 실패……. 과거의 아픈 기억은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 마음속을 헤집어놓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감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을 때가 있다. 나 역시 과거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면 유독 뼈아픈 기억만이 강렬하게 떠올라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OO 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자주 들곤 한다. 경우에 따라 ‘아예 하지 말 걸’ 하고 경험이나 도전 자체를 부정할 때도 있다. 애석하게도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다보면 실패를 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앞서서 뭔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는 일에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현상 유지에 만족해하며 분수껏 사는 방식에 젖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저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속의 말을 끌어온다. “삶은 원환이 되어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는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도, 떠올리기 싫은 실패의 경험도 인연으로 한데 엮여 끝없이 돌고 돌기 때문이다.” 즉, 니체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희망과 절망 사이를 거듭 오가는 가운데 인생을 사랑하고 기꺼이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불행한 경험이 없으면 행복한 추억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실연이나 실업,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 손쓸 도리가 없었던 재해와 사고, 술김에 저지른 실수, 사업하다가 낭패를 본 경험까지. 그런 경험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동안은 무척이나 괴롭다. 젊은 혈기로 저지른 무모한 도전을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고 두고두고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앞서 니체의 말처럼 쓰라린 경험들을 어떻게든 뛰어넘어 극복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말한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분명 그 경험 덕분에 내가 이만큼 분발할 수 있었다고 확신할 때가 올 테니 말이다. 그때그때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던 다행스러운 경험보다 과거의 쓰라린 기억이야말로 분발을 촉구하는 마중물로, 훨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어보는 건 어떨까.
사물 자체란 몰두 중인 과업 그 자체나 작업이 도달하려는 바람직한 모습 내지는 이상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당사자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 그 이미지에 부합하게끔 자신의 과업을 일체화시키겠다는 생각이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갈피가 서지 않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수준부터 시작해나갑니다. 자기 내면에 자리 잡은 ‘대타자=사물 자체’를 지향하며 몰두하는 것이죠.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멋지게 완성할 때, 대타자는 물론 현실 속 개인 소타자의 인정도 두말없이 뒤따라올 것입니다. / 자크 라캉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법” 중에서 135p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해와 수용의 철학입니다.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가득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은 대단히 유용한 가르침을 줍니다. 가히 현대판 성서라 부를 만합니다.
내일이면 어김없이 피하고 싶은 상사와 마주하겠지요. 또다시 제 얼굴을 깎아먹는 말을 태연하게 내뱉을 테고 일할 맛 뚝 떨어뜨리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던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에 묻어나는 인격의 수준과 그가 지나온 삶의 노정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으리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의 영혼은 분명 평안을 되찾을 것입니다. /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외부의 충격에 버텨내는 태연자약한 태도” 편 중에서 193p


누구보다 편하고 가깝지만 외려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 나빠지기 쉬운 사이가 바로 가족이 아닐까. 최근에 가족끼리 소원해진 문제가 있어 고민인 나로서는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를 해방시킨다’는 글을 남긴 한나 아렌트의 조언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 닿는다. 아렌트는 과거 부모님의 말씀에 상처를 받았다든지, 부모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보였다든지, 믿었던 형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든지 이런 일들을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두면 가족 관계가 과거의 상처에 발목잡힌 채 더 이상 호전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행위는 인간의 고유한 행동인 동시에 필연적으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렌트는 이러한 행위에 자구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 자구책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용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자연히 복수심을 품게 되고 차마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는 것도 있기에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아렌트 역시 나치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아이히만을 두고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며 사형은 타당한 판결’이라고 하여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렌트가 주장했던 용서가 홀로코스트라는 구제불가한 악질 행위 앞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녀의 논리에도 빈틈이 존재했다는 것을, 논리와 현실 간의 괴리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트는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한다. 용서를 결심하는 것부터가 이미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복수와 반대로 용서는 상처 준 상대와의 단절을 깨고 상대가 처음에 저지른 실수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보복의 사슬로부터 상대와 나를 해방시킨다고 강조한다. 무릇 용서란 인간이란 존재에 걸맞은 행동이라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용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어째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걸까. 왜 자꾸만 서로 엇나가는 걸까. 상대의 의견에 담긴 가치관을 존중하되 마찰을 두려워말고 과감하게 부딪쳐봅니다. 나와 당신의 입장을 덜어내고 ‘우리’가 되어가는 와중에 의도치 않았던 지점에서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는 마찰을 무릅쓴 끝에 진정한 ‘우리’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죠. 이 과정을 헤겔은 ‘아우프헤벤(지양)’이라고 일컬으며 불화와 반복을 타개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헤겔 “나와 당신의 입장을 덜어내고 ‘우리’가 되는 법” 편 중에서 221p
진지한 태도로 죽음을 각오할 때 비로소 근본에 충실한 시간이 시작되며 남은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이란 앞지를 수도 없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궁극의 가능성이며, 죽음이 도래할 것을 자각하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인생이 펼쳐진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견뎌가며 수습해야 할 문제들이 답쌓여있는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역스러운 상황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당신은 진정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시작되는 지점에 두 발을 딛고 선 것입니다. / 마르틴 하이데거 “시련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편 중에서 311p

이 외에도 ‘우리의 행위가 외부의 기준이 아닌 우리의 인격에서 온전히 우러나올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 앙리 베르그송을 통해 진정한 시간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이들에게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라’고 말한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유념하기를 바란다. 또 타인을 의식하고 인정받는 것에 집착하는 이들에게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일 뿐’이라고 말한 자크 라캉의 말을 기억하길 바라며,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땐 비트겐슈타인의 삶이 증명하는 철학의 가치를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흥미롭게도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들은 현대인들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상가들도 수없이 마주하고 고민한 문제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덕분에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던 수많은 고민들이 알고 보면 누구나 겪는 일이고, 또 극복해나갈 수 있는 점들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이켜보면 모두 사소한 고민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사유하고 고민하고 깨닫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수많은 사상가들의 이론이 아닌 이러한 깨달음에 가닿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훌륭한 안내서가 아닐까 싶다. 더 첨부하자면 책에는 철학자들의 생애와 비하인드 스토리, 알아두면 쓸데 있는 철학 스토리, 위대한 사상가들의 대표 저서 소개까지 수록되어 25인의 사상가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니, 철학서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