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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나태주 시와그림, 김예원 글 / 시공사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 띄우는 나태주 시인의 다정한 연애편지!
70대인 시인의 시와 20대 청춘의 에세이가 진솔한 대화를 나누듯 어우러진 따뜻한 책!
나는 책에 있어서 지독한 편식가였다. 과제나 학과 수업의 보충 교재를 제외하고는 오로지 소설책만 읽었다. 그러다 약 3년 전부터 책 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려 부단히 노력했고, 덕분에 이제는 잡식가에 가까울 정도로 책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하나, 여전히 꺼려지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다. 대학생 시절 시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일부러 시 창작 과목을 선택하는 용기도 내보았지만,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신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요” 하고 눈물어린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나는 줄곧 시라는 것은, 오로지 시적 감수성을 타고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 믿었고 또 시와 소설은 너무도 다른 것이어서 소설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시적 사고를 읽어낼 수 없다고 믿어왔다. 그건 내게 너무도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라는 책을 만났다. 나태주 시인하면 대중에게 친숙하고 그가 쓴 <풀꽃>이란 작품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이내 내가 잘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여전히 시는 내게 어렵고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느 시집과는 다른 책의 구성이 뜻밖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일단 자신을 시인의 팬이라 자처했다. 마치 시인의 시와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듯 그녀는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뭉근히 담아 썼다. 그렇게 70대인 노시인의 시와 20대인 청춘의 에세이가 나란히 놓여 세월을 넘어서서 서로에게 응답하듯 책이라는 한 공간 안에 머물러있었다. 시에 대한 해설이나 비평 같은 것이 아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보통의 20대들이 겪는 일상이 가만가만 쓰여 있었을 뿐이지만, 힘들 때 읽으면 위로가 되고 기쁠 때 읽으면 삶에 감사하게 되는 나태주 시인의 시로 인해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아픔을 성숙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청춘의 참 따뜻하고도 특별한 만남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인생, 그 모든 오늘에서 당신은 꽃입니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의 저자 김예원은 나태주 시인의 작품을 두고, ‘문학에 조예가 깊은 똑똑하고 박식한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독자들도 즐길 수 있는 시. 그를 통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시. 그게 나태주 시인님 작품의 매력이다’라고 소개한다.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독자로서 문학에 바라는 점은 복잡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 ‘그냥 쉬고’ 싶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진심이 담긴 글귀를 받는 것이며, 박식한 단어와 세련된 문학적 장치가 가득해서 시를 읽고 나서 시를 소화해냈다는 뿌듯함을 얻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힐링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시를 어렵게 어겼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시로부터 마음을 쉬고 위안을 받는 게 아니라 마치 수능 공부를 하듯 해석하는 데만 몰두하느라 진짜 시의 매력은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90편에 이르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찬찬히 읽다보면 그 어떤 복잡한 수사나 기교도 없는 단조로운 언어지만 그래서 그 소박한 멋에,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 어지러운 내 마음이 단정해지는 것 같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셨다하니, 그에게 있어 시는 세상에 전하는 연애편지가 아니었을까. 누가 받아볼지 알 수 없으나, 이 편지가 어딘가에 가닿아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되고 위안이 되며 응원이 되었을 것이다. 스물 다섯의 김예원처럼 말이다.
아기를 재우려다
아기를 재우려고 엄마가 아기를 끼고 누우면
아기의 숨소리가 너무 고와서
아기의 숨결이 너무 향기로와서
엄마는 그만 아기보다 먼저 잠이 들고
아기는 잠든 엄마 곁에서
방글방글 웃고 있다.
엄마가 아기를 재우는 것인지
아기가 엄마를 재우는 것인지……. / 40p
5살인 첫째 아이와 9개월인 둘째 아이를 재우려다 내가 먼저 까무룩 잠이 든 밤이다. 누가 누구를 재운 건지, 아이들은 어느 새 단잠에 푹 빠져 들어 있다. 하루 종일 웃고, 울고, 뛰어놀고, 기어 다니느라 하루의 힘을 모두 다 써버린 듯 코를 고는 소리도 나지막이 들려온다. 부모들은 아이가 잘 때 제일 예쁘다고들 하지 않던가. 새근새근 잠이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의 고단함이 쓰윽 밀려 내려간다. 오늘도 여지없이 아이들은 신나게 이불을 걷어차고, 엄마인 또 열심히 이불을 덮어주느라 뒤척이는 밤이 될 테지만 말이다.


아이는 자라는 것임을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어렵지만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기’보다 그게 더 중요한 양육 태도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욕심이 앞서지만 사실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중략)...베토벤은 죽기 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한다. “아이는 키우는 게 아니라 자라는 것임을 왜 몰랐을까.” 아이들은 어쩌면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려는 부모보다 기다려주고 본인을 인정해주는 부모를 더 존경할지도 모르겠다. / 45p
“안 돼”, “하지 마”, “그만”, “위험해!” 엄마의 시선에서 아이는 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어코 하고 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필사적으로 하는 게 아이의 본능인가보다. 오늘도 육아서를 들여다보면 아이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위해 말리지 말고 기다려주고, 참아주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어느 새 불쑥 “안 돼”, “하지 마”, “그만”, “위험해!”는 하나의 언어 세트처럼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나태주 시인도 <부모 노릇>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써놓았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그리고도 남는 일은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라고. 저자 김예원 역시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욕심이 앞서지만 사실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들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얼마나 자주 기다려주지 못하고, 참아주지 못하고, 져주지 못해 아이와 얼굴을 붉히게 될까. 그러는 동안에 아이는 또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까. 잘 알면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그것.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거듭 새기고, 새겨야 할 그 말.
어머니 말씀의 본을 받아
(중략)
지금껏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목을 매고 살았다
기를 쓰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만 애썼다
명사형 대명사형으로만 살려고 했다
보다 많이 형용사와 동사형으로 살았어야 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살았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를 처음부터 알았어야 했다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애당초 그것은 당신 안에 있었고
당신의 집에 있었고 당신의 가족, 당신의 직장 속에 있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 63p
나태주 시인은 마당을 쓸고, 꽃 한 송이를 피어올리고, 마음속에 시 하나를 싹틔움으로써 지구 한 모퉁이가 조금씩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을 믿는다. 그의 시를 읽고, 교생 실습을 하며 아이들과의 대화에 공감하고 부대끼면서 자신이 준 사랑에 지구 한 모퉁이가 더 아름답고 밝아졌길 바라는 저자처럼 나도 누군가를 위해 한 작은 행동이 지구의 가장 어두운 곳을 조금이나마 밝힐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또 알고 보면 삶은 사랑을 주는 존재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걸 찾아내고 그들이 주는 사랑을 받을지 말지는 우리의 마음과 의지에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중략)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내는 것처럼 당연하다고 치부되었던 일들도 참 대단한 것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후회되고 잘못했던 일들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반성을 통해 자각하고, 부족하고 어렸던 생각을 고쳐서 내일부터는 더 나은 사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충분하다. 실수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실수를 인정하고 만회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리허설도 없는 공연을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그 결과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다그치는 일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 133p
말에서 시작되는 배려
(중략)
상대를 사랑한다면서 함부로 말을 던지고 사랑으로 그 상처를 감내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할 때부터 상대는 존중받지 못함을 느끼고 자연스레 그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서로를 말로 상처 주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성숙한 연애가 시작된다. / 192p


70대와 20대라는 나이의 간극은 크지만 글을 읽다보면 시인의 농익은 지혜와 세상을 바라보는 너그러운 마음에 위로를 얻고, 내가 지나온 20대를 되돌아보며 사랑과 이별, 관계 앞에서 흔들리고 방황했던 순간들에 많이 공감했다. 덕분에 내 사람들의 안위와 이웃에 대한 각별함과 지나쳐온 모든 관계들에 감사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모든 오늘에서 꽃을 발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아니 이미 그 자체로 우리 모두는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임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