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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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기에 떠나보는 거다, 비록 짠내 풀풀 풍기며 방황할지라도!

여행이 일상이 된 여행 유튜버 원지의 생동감 넘치는 아프리카 여행기!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책을 손에 딱 쥔 순간, 참 씩씩해 보이는 이 선언이, 표지 속에서 유쾌하고 당차보이는 저자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시름과 불확실한 청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나 그냥 떠날래~ 하고 외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문득 정적인 포즈들로만 가득한 내 여행 속 사진들이 떠올라서 이 생생한 밝음이, 적극적인 용기 같은 것이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웬걸 책을 넘기자마자 가족의 상처와 짠내가 풀풀 풍기는 여행기가 금세 안쓰러워진다. 어디 하나 정착하지 못하는 이 청춘의 유목민을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언니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꿈을 지지해주고 싶어진다. 가수는 노래 제목대로 된다던 말처럼, 그녀도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

 

 

 

 

 

 

비록 현실은 비루할지라도 기대해볼 만한 내일이 있기에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는 유튜브에서 여행 크리에이터로 ‘원지의 하루’를 통해 일상과 여행에 관한 콘텐츠를 기록하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작가의 여행 에세이다. BTS의 ‘피, 땀, 눈물’이라는 제목처럼 그야말로 피와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청춘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앞으로 넌 뭐하고 살 거냐’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앞으로 난 뭐하고 살까’라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고달픈 일상에 숨이 막힐 때면 마치 유일한 해답처럼 다가왔던 여행, 이제는 그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그녀의 행적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찌질(?)하게 담겨 있다.

 

 

 

   “나는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흙수저가 되었다”

   그녀의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중학생 시절, 아빠의 첫 사업 도전이 ‘지인 사기’라는 결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떠나 오래된 판잣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한 지붕 아래 여덟 세대가 사는 집이다 보니 방은 변변치 않았고, 공용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으며, 밤 9시 이후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다. 더 서러운 건 정확한 주소도 없어서 배달 음식이라도 주문하려 하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거나 근처 슈퍼로 배달시킨 후 미리 나가 받아오는 수고로움까지 치러야 했다. 어떻게든 두 딸을 키워내야만 했던 엄마는 끈질기게 동사무소를 들락거리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했고, 노력 끝에 가족은 기초수급대상자가 되었고, 매달 쌀 한 포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국가에서 인정한 공식 ‘흙수저’가 된 것이다.

 

 

 

이즈음이었을까.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 대한 미련이 다른 식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 그동안 여름엔 펄펄 끓고 겨울엔 오들오들 몸이 떨려오는, 오롯한 화장실 하나 없던 집에 도저히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집착은 반대로 어디에도 발붙이지 않는 ‘여행’에 뜬구름 같은 환상을 심어주었다. / 40p

 

 

 

   그녀는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돌려보다 문득 아프리카란 대륙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사방이 꽉 막힌 작은 집에서 벗어나 치타처럼 드넓은 초원을 달리고 싶었다고. 이런 막연한 동경은 어느 순간 ‘가야겠다’는 확신으로 돌변했고, 단숨에 ‘아프리카 여행’에 꽂혀 각종 여행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알아보기 시작했다.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위해선 예상보다 많은 여행 자금이 필요했고, 경비를 모으기 위해 이때부터 눈물겨운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가며, 남몰래 변기 위에서 짓눌린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들인 돈의 99% 정도를 저금했고, 단 몇 달 만에 800만원이라는 돈을 모으게 되었다.

 

 

 

   누군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용기를 어떻게 얻으시나요?”라고 물어온다면 그녀는 진정한 여행의 용기는 ‘무를 수 없는 비행기 표’에서 나온다고 답한다 한다. 참 현실적인 정답이다. 여자 혼자서 그것도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이 어디 쉬운 결정이었겠나. 그러나 비행기 표는 이미 구매해놨고, 여행을 준비하면 할수록 밀려드는 불안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기어코 대망의 출국 날은 찾아왔다. 한국에서 아랍에미리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무려 91일에 이르는 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여곡절, 고진감래 뭐 이런 말들을 다 갖다 붙여도 모자랄 흥미진진한 그녀의 아프리카 여행기는 연일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아프리카로의 여행에 대해 단 1도 생각이 없던 사람까지 뭔가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에서는 ‘원지의 아프리카 여행 일정’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혹시나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있다면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에서 아프리카 치안을 검색하면 늘 따라 나오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남아공은 치안이 좋지 않으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 것’이다.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 화장실에서 미리 현금을 세 덩이로 나누어 안전하다 생각되는 곳에 각각 찔러 넣었다. 운동화 깔창에 100달러 한 장 깔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는 볼펜 하나를 꺼내 바람막이 주머니에 넣고 꼭 쥐었다. 준비 완료. 볼펜은 차마 칼자루를 손에 쥐고 다닐 수가 없어서 선택한 것이었다. / 85p

 

 

교통도 치안도 불안한 아프리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트러킹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트럭을 타고 동고동락하며 아프리카를 누빌 수 있다. 한 가지 큰 단점은 가격이 꽤 비싸다는 것. 여행 계획 짜기를 무엇보다 귀찮아하는 나는 그 편안한 매력에 목돈의 부담을 감내하고서라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며 교통이며 모든 게 해결된다니. / 92p

 

 

세렝게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린과 코끼리. 2박 3일 내내 벌판을 달리며 보다 보니 처음에 신나게 환호하던 마음도 잠시 지나가는 들고양이를 보는 것처럼 관심이 시들해졌다. 잠이 든 서로를 깨우며 괴롭히는 게 가장 재미있을 무렵. 우리는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동물 대이동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소과에 속하는 누 떼가 끝도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그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믿을 수가 없었다. 수십 번 수 만 번 상상해 온 그 순간에 내가 들어서 있었다. 오길 잘했다. 정말로. / 117p

 

 

 

 

 

 

   비록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그녀는 다시 학업에 매진해야 했고, 취직도 하면서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지만 이때의 여행은 훗날 스타트업에서부터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나아가는데 아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뭐 하나 완벽하게 계획을 짠 일이라고는 없지만 그녀는 일단 시작해보자,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뛰어드는데, 그 모습이 나로서는 신기하고 또 멋져 보였다.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알게 된 새로운 정보들을 차근차근 습득해가며 이제는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녀가 전하는 이 메시지는 더디고 무딘 내 삶에도 끊임없이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불쌍하고 굶주린 모습이 아닌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담아 줘. 이게 진짜 아프리카니까.” / 184p

 

 

이곳에 살아보는 동안 여행과 일상의 차이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갔고, 입맛에 맞는 단골 식당이 생겼으며, 다른 곳보다 저렴한 슈퍼마켓을 알게 되는 것. 그렇게 그들이 만든 세상의 기준에 한발 깊숙이 들어가 보는 것.

떠나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기준은 오직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상식이 비상식이 되기도, 비상식이 상식이 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삶의 방식이 존재했다. 때론 ‘디스 이즈 아프리카!’란 말처럼 ‘디스 이즈 원지!’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 204p

 

 

그날 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공간, 한동안 ‘내 방’이라 부를 공간에 누웠다. 머릿속에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떠다녔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이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10년쯤 더 지나면 나는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때는 앞으로 뭘 할 것인가라는 고민보다 과거에 뭘 했나를 더 돌아보게 될까. 나이에 맞게 산다는 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걸까. 그 기준에 맞게 살면 이런 고민들은 사라질까.

정해진 답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의 속도대로 살아가면 그만 아닐까. / 226p

 

 

 

 

 

 

   아울러 이 책은 유튜브 여행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에피소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상을 유튜브로 기록하다가 우간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현재는 전문 여행 크리에이터로 그녀가 남긴 영상들이 QR코드만 찍으면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으니, 책 이상의 보는 재미까지 두 배로 즐길 수 있다. 그녀가 유튜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 유튜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지 않을 때였는데, 이렇게 일찍이 도전하고 성장 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만큼 그녀의 노력이 건강한 콘텐츠와 함께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는 흥미로운 아프리카 여행기와 함께 한 청년의 좌충우돌 인생 성장기를 담은 책으로, 읽는 재미뿐만 아니라 불안한 오늘의 청춘들을 위로하고 도전과 열정을 독려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짠내 풀풀 풍기더라도, 다시는 없을 청춘의 한 시절에 과감하게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눈을 돌려보라고, 모든 것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답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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