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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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독일식 라이프를 통해 나를 위한 삶에 집중해보는 시간!

타인을 배려하느라 정작 나에게는 친절하지 못했던 이들을 위한 에세이!

 

 

 

   “시간이 없어, 빨리!”

   오늘도 아침부터 아이 어린이집 차량 시간에 맞춰 움직이느라 바쁘다. 혹시나 미리 차가 와 있어 지체하게 하면 뒤에 기다리고 있을 다른 아이와 부모님께 민폐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꼭 늦게 나설 때마다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천천히 해도 괜찮아. 빨리 가지 마.” 그럴 때면 괜히 머쓱해져서 바짝 긴장한 몸을 풀어보지만,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게 혹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재촉하는 마음은 늘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어디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에 하나가 “빨리, 빨리”라고 하지 않던가. 어디 그게 다 나를 위해서일까, 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누군가를 배려하느라,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삶의 한 방식일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신주쿠의 흔한 아침에도 이런 순간은 찾아오나보다.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의 저자 구보타 유키 역시 바삐 걷는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의 통로를 지나며 맞은편에서 세게 부딪혀오는 사람을 반사적으로 노려본다. 짜증이 확 솟구친다. 그리고 잠시 뒤 밀려오는 민망함. ‘나는 망가지고 있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고 마음속으로 화를 누르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짓무르고 곪아서 터져버릴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하지만 일상은 늘 반복되기에 개선의 여지는 없다.

 

 

 

어떤 불편이든 결국은 마음의 약이 될 거예요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편집자였던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작업은 매번 새롭고 즐거운 작업이지만, 늘 성과가 요구되고 끝나지 않은 야근으로 뭔가 기분이 끝도 없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쩌면 신주쿠역에서 사람과 부딪힌 일은 그녀가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릴 적 독일에서 살았던 1년을 떠올리며 그녀는 일본을 벗어나 독일 특유의 느긋한 템포에 따라 살아보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은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에게 주효했나보다. 독일 사람들 속에서 일하고, 쉬고, 살며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우면서 자신의 템포도 점점 느려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자 짜증을 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그간 고작 몇 분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일에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했던 게 바로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독일에서 배운 건강한 개인주의 덕분에 남에게 친절할 땐 피곤했던 삶이 나에게 친절한 순간 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게 된다.

 

 

 

 

 

   우리는 흔히 ‘독일인’하면 어딘지 모르게 경직돼 보이는, 성실하고 근면한 인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내부에서는 ‘독일인은 게으름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독일은 서류상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고 가장 길게 휴가를 떠나는 나라라고 하니 말이다. 여름휴가를 3주 정도 다녀오며 느긋하게 ‘3주의 쉼’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나라, ‘모두가 빈둥거리는데 잘 돌아가는 이상한 나라’라고 수식하는 그녀의 표현이 참 놀랍다. 아니나 다를까, 이 때문에 웃지도 울지도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비교적 저렴한 택배사의 택배 수거 유료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오전 여덟 시에서 오후 여섯 시 사이에 방문한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기다리라니, 일본이나 한국처럼 두 시간 단위로 시간을 지정하는 세심한 서비스를 독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점심 시간에 마감 시간까지 지나도록 택배원은 소식이 없고, 걱정하며 나가는 길에 1층에 있는 우편함을 열었다가 이내 분노를 느낀다. 하루 종일 택배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집에 부재중이었다는 부재 알림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비스 불모지라 불리는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저절로 ‘물건이 제대로 도착하다니!’, ‘메일에 답이 오다니!’, ‘예정대로 취재가 진행되다니!’ 하고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습관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성실한 이들에게는 존중하는 마음이 커졌다고 고백한다. 일본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뿐인데, 아예 기대를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분노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실컷 화를 내고 난 다음에야 배우게 된 것이다.

 

 

 

독일에는 ‘근로시간 계좌’라는 제도가 있어요. 근무시간 외에 추가로 일한 시간을 자신의 계좌에 예금하듯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업무를 짧게 마치거나 휴가로 쓰는 방식이죠. 이 제도가 있으면 아무리 연속해서 야근을 하더라도, 일한 만큼 쉬거나 빨리 퇴근할 수 있게 됩니다. 일정 시기에 업무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균일해지는 셈이죠. / 42p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필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에요. 그 기준은 회사에 따라, 일의 목적에 따라 달라요.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나 자신과 가족의 가치관 혹은 환경에 의해 달라져요. 이렇게 우선순위를 판가름하는 기준을 세운다는 건 크게 봤을 때 나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의미예요. 일에서도 개인 생활에서도 내 나름의 기준을 갖지 않으면 그때그때 상황에 휩쓸리고 맙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늘 남 탓만 하게 되죠. / 48p

 

 

 

 

 

 

   독일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임을 찬찬히 깨달아간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의 미로 속에서 살다가 이제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라는 행위의 목적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된 건 역시 직업과 휴식을 대하는 독일인의 태도에 있었다. 근무 형태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들,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들, 눈치 보지 않고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휴가를 당당히 쓸 수 있는 시스템과 정서까지. 물론 독일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인한 또 다른 스트레스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그녀는 “완벽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기에 더더욱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어디에서 일하든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내가 만든 결과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내 인생의 여정을 차분히 밟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우선은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거예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하루의 행동을 기록해보세요. 그리고 내가 무엇을 위핸 그 행동을 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이런 기록을 근거로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합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럴 때는 싫지 않은 일을 꼽아봅니다. 그러면 점점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무엇에 시간을 들이고 싶은지……. 그러다가 일하는 방식이나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어지면 그 방법을 궁리하는 거죠.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내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향하게 돼요. / 61p

 

 

다소 불편해도 서로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어서 재충전 할 수 있는 사회, 매우 편리하지만 일하는 사람이 서로 힘든 사회, 과연 어느 쪽이 살기 좋을까요.

독일에 살고 있어서 보이는 점인데, 일본은 서비스나 인프라의 평균치가 높고 그 때문에 주위에 대한 무의식적인 기대치도 상당히 높아요. 하지만 사람은 모두 서비스를 받는 입장인 동시에 서비스를 하는 입장이기도 해요. ‘분명 이러저러하게 해줄 거야’, ‘보통은 이렇게 해줄 텐데’라는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버리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그만큼 쓸데없는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누구가 아닌 나 자신이 편안해집니다. / 86p

 

 

  독일어에는 ‘게뮈트리히’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안락하고 편하다’, ‘느긋하게 쉰다’라는 의미로 일상 대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최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가 꽤 널리 알려졌는데, 게뮈트리히는 휘게의 독일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게뮈트리히한 집’이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과는 다르며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좀 더 독특한 뉘앙스를 지닌 단어라고 독일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가 자고, 먹고, 입고 쉬면서 느끼는 일상들은 이 게뮈트리히라는 말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특히 우후죽순 늘어나는 아파트 대단지 속의 삶과, 오래된 것보다 새롭고 깨끗한 것을 더 선호하게 된 우리와 달리 알트바우처럼 100년이 넘는 주거 공간을 내부만 개조해 사용하는 독일인들의 주거 라이프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특히 그녀는 스스로 도배를 하고 집 안을 꾸미면서 시간에 대한 감각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일본에 있을 때는 10년 전은 옛날 일, 1세기 전은 자신과 관계없는 역사 교과서 속 세계에 불과했지만, 베를린에서 1세기 전에 지어진 집에 살게 되자 역사의 세계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그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무르면서 자신의 삶까지 찬찬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독일 음식의 본질적인 맛은 이런 소박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키운 과일로 케이크를 굽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차 한 잔을 마시며 시간을 즐긴다. 이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인가요. 작물을 기르는 단계부터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과 티타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이 내게 즐거움을 주고, 그런 시간과 일상이 삶을 알차게 만듭니다. 게다가 돈은 얼마 들지 않아요.

유명 파티셰의 고급 케이크를 먹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이, 다른 종류의 풍족함이 독일 생활에는 있습니다. 금전과는 전혀 관계없는 매일 매일의 여유. 제가 베를린에서 많은 사람과 접하면서 배운 가치관이에요. / 222p

 

 

혹은 ‘어느 정도 나이 있는 여성이 화장을 제대로 안 하면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본에서는 패션이나 화장에 대해 매너나 몸가짐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요. 고등학교까지는 교칙으로 화장을 엄격히 금지해놓고,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직을 하면 갑자기 화장하는 게 매너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어요. 과연 나의 맨얼굴이 남에게 폐가 되는 걸까요?

(중략) 화장도 멋도 내 기분이 좋아지거나 즐기기 위한 것. 남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특별한 때 화장을 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죠. 이런 식으로 스스로 기준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어디까지 화장을 생략할 수 있는지, 반대로 어디까지 화장을 하고 싶은지 거울 앞에서 한번 테스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250p

 

 

 

 

 

 

   사실 그녀의 삶은 바쁜 대도시의 감각으로는 너무나 단순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음 구석구석까지 영양가가 가득하며, 물질적인 보충은 이제 확실히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 여유와 당당함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그저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오늘도 헉헉거리고 있는 높아진 삶의 기준과 타인을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친절할 줄을 몰랐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부럽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은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높은 빌딩 속에서 분주한 삶을 살아가느라 힘든 청춘과 이 시대의 가장들, 아이를 다독이느라 내 삶을 잃고 살아가는 엄마들 모두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쉼의 미학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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