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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똥
유은실 지음, 박세영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짧은 만큼 멋지고 쓸모 있게 살고 싶었던 어느 송아지똥의 따뜻한 이야기!
반드시 귀하게 쓰이지 않아도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동화!
“으~ 소똥이다~.”
어릴 적, 할머니의 시골집에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그 소가 외양간 밖을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었기에, 어린 마음에 근처만 가도 소똥 냄새를 풀풀 풍기고 여물만 씹어 대고 있는 소가 참 이상해보였습니다. 덩치만 컸지 크게 쓸모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거든요. 그 시절에는 오빠와 언니를 따라 동네에서 뛰어 놀고 있으려면, 얼마 전에 싸놓고 간 소똥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기도 했어요. 우리는 소똥 근처에만 가면 서로를 밀어붙이며 히히덕 거리고, 질겁을 하며 달아나곤 했습니다.
딱 저만 하더라도 친척집이 시골이면 이런 경험을 곧잘 했지만, 이제 우리 아이에게는 돈 주고 사서라도 하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5살인 아이에게 『송아지똥』이란 책을 내밀자 “또오~옹?” 하고 신기한 듯 두 눈이 동그래집니다. “이제부터 엄마가 한 송아지똥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하니 바로 옆에 와 앉습니다. 송아지똥이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똥’ 이야기라면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에겐 쓸모없고 냄새만 지독한 것이 이렇게 한 편의 동화가 되어 아이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참 놀랍지 않나요?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의미 있는 삶을 살 가치가 있어
어느 봄날, 산골 빈집 마당 한구석에서 송아지똥이 태어났어요. 질경이와 감나무가 축하노래를 불러줍니다.
똥또로동또 똥또 똥또로동또 또오!
똥또로동또 똥또 똥또로동또 또오!
송아지는 자신을 환영하며 노래를 불러준 질경이와 감나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질경이는 자신의 이름은 ‘평화를 사랑하는 질경이’라는 뜻에서 ‘평이’, 감나무는 ‘리듬을 좋아하는 감나무’라는 뜻에서 ‘리듬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또, 존댓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죠. 길어야 한 계절을 사는데, 나이를 따지는 건 불공평하다고 말이예요. 덕분에 송아지똥은 자신이 길어야 한 계절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송아지똥은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며 내 짧은 똥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평이로부터 ‘똥또로동’이라는 이름도 얻지요.


태어나 하루를 보내며 똥또로동은 노을, 밤, 별, 달, 아침, 구름 그리고 좋은 친구까지.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목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앞으로는 하늘을 실컷 올려다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울적해지고 맙니다. 바로 그때, 고맙게도 리듬감이 떨구어준 감잎 덕분에 모자가 생긴 똥또로동은 마음껏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누군가를 도와주고 또 도움을 받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도 느끼게 되었지요. 하지만 참새가 똥도로동에게 “송아지가 싸고 간 똥”이라며 약을 올리고 부리로 콕콕 쪼으며 괴롭히자 자신은 그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에 금세 속상해졌습니다. 때마침 평화를 사랑하는 질경이가 벌레들에게 소리쳐 마당법을 어긴 참새를 쫓아내자고 소리친 덕분에 참새는 사라졌지만, 똥도로동은 참새가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똥또로동, 송아지는 싸고 갔을지 몰라도 말이야. 너는 귀하게 태어난 거야. 마당법 제1조에도 나와 있는 걸. ‘이 마당에서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귀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렇게.”
리듬감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데 온통 마음을 쏟았던 ‘전설의 강아지똥’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이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강아지똥은 자디잘게 부서져 흙으로 스며들었고, 고스란히 민들레 몸속으로 녹아들어가 더욱 빛나는 민들레꽃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똥또로동은 자신 역시 전설의 강아지똥처럼 꽃 거름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자신은 시멘트 위에서 태어났기에 아무리 잘게 부서져도 흙으로 스며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됩니다.



보름 후, 하늘이 잿빛 구름으로 덮이더니 비가 내렸습니다. 이제 몸이 많이 굳어버린 똥도로동은 빗소리, 비 냄새, 빗물의 감촉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만끽합니다. 비록 쓸모 있는 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태어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내 비가 그치고 가뭄이 들어 똥도로동의 몸은 바짝 말라붙었고, 똥도로동은 리듬감으로부터 “이야, 네 똥생 참 근사하다.” 라는 말을 들으며 세상과 작별합니다. 그렇게 똥도로동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평이와 리듬감이 있는 한 의미 있는 삶이었지 않았을까요? 비록 어디에 쓰이지는 못했더라도 태어남의 값진 의미와 세상이 준 선물을 품은 똥도로동의 마음은 하늘나라에서 따스하게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송아지똥』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 『강아지똥』을 오마주한 작품입니다. 자신이 쓸모 있기를 바랐던 강아지똥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의미 있게 다가오지만, 『송아지똥』에서는 비록 쓸모 있는 일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며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임을 전하려는 시도가 더욱 엿보입니다. 덕분에 오늘날 의미와 가치 있는 것만을 쫓는 게 세상을 사는 데 중요한 것이 아님을 우리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송아지똥이 속상하겠다” “송아지똥은 그럼 어디로 갔을까?” 하고 아이도 몰입해서 반응해주었는데요, 많은 아이들이 『송아지똥』을 읽고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