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제왕의 업을 이룰 것인가!
대륙을 아우르는 장엄한 스케일과 궁중의 치열한 암투를
섬세하게 그린 대작의 서막!
한때 <측천무후>, <황제의 딸>과 같이 중국 황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을 비롯해 『삼국지』와 같은 중국의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특유의 호방하고 장엄한 스케일에 궁중 내의 치열한 암투까지 섬세하게 다룬 『제왕업』을 접하는 순간 단 몇
페이지만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권력의 비정함과 안팎으로 끊임없이 생사의 위협에 시달리는 왕현과 패업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기의 위험천만한
사랑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서 나는 내내 초조한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달음질치느라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상권과 하권으로 나눈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드라마 한 편을 정주행하는 마음으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읽었던지라 2020년에 개봉될 드라마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것
또한 나뿐만이 아닐 듯하다.

가문의 영예와 책임, 그 풍랑 속의 중심에 선 여인
어머니가 황제의 누이요, 고모가 황후이며, 아버지가 조정 최고의 권력자이자 낭야왕씨 가문의 수장인 진국공의 딸로 자라 그야말로
금지옥엽, 구중궁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자라난 왕현이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최고 권력층이 드나드는 궁에서 살다시피 하며 권력의 비정함과
무심함을 어렴풋이 겪긴 했으나 이제까지는 그저 밝고 귀하게 자라온 그녀였다. 오랫동안 황제가 총애하는 사씨 가문 출신의 사 귀비
소생이자 3황자인 자담을 연모하여 당연히 그와 정인이 되리라 믿었고, 자담 또한 그녀를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귀하게 여겼으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방 변경의 오랑캐와 반군의 결탁을 몰아내고 나라의 위대한 공을 세운 예장왕의 혼처로 왕현이 정해지고 만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황후인 고모와 아버지인 진국공이 이 혼사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도 무척 사랑한 사람이 있었단다. 한때 그는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또 슬픔이었지. 그 기쁨과
슬픔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그것을 얻든 잃든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했단다. 그러나 또 다른 얻음과 잃음은 나 혼자만의 기쁨과 슬픔보다 훨씬
깊고 중하며, 살아 있는 한 거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었지. 그것은 바로 가문의 영예와 책임이었어.”
가문의 영예와 책임. / 57p


가문의 영예와 책임을 등에 업고 예장왕과 혼례를 치른 첫날, 뜻밖의 변고가 일어나 첫날밤은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북방 변경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여 새신랑이 첫날밤을 치르기는커녕 신부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떠난 것이다. 왕현은 대국과 가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대가가 이런
치욕이었다니 울분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아직도 얼굴을 내비추지 않는 남편에게 마음에도 없는 감정을 애써
꾸며낼 필요 없이 이렇게 저렇게 한평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체념하려는 찰나에 느닷없이 괴한들이 들이닥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렇게 예장왕 소기의 부대에 의해 일족이 몰살당한 것을 복수하려는 하란잠에 의해 납치를 당했건만, 열흘이 지나도록 자신을 구하러 와줄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왕현은 이내 실망한다. 심지어 탈출 시도도 번번이 가로막힌다. 나는 이 같은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지금 그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에 대한 원망이 더더욱 강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한 회색 옷을 입은 사내로부터 소기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하지만 진즉에 자신을 구해낼 수 있었음에도 잠자코 기다린 데다 자신의 안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적의 수중에서 이토록
곤경을 겪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그에게 더욱 몸서리쳐질 뿐이었다.
어디 하란잠뿐이겠는가……. 전쟁으로 고통을 받은 백성들 가운데 부모 형제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처량하게 홀로 남아 분노를 터뜨리던 그 소년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마 유일한 행복이자 근심이었을 것이다.
상처투성이인 그가 가엾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원한을 품은 대상은 내 낭군, 내 나라였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의 복수를 위한 장기짝이 되어 있었다. / 153p
이윽고 운명의 날이 닥치고, 소기를 노리는 하란잠과 그런 하란잠을 노리는 소기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며 왕현의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 극적으로 소기가 왕현을 구출해낸다. 그렇게 생사의 위험을 건너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고, 그간에 서로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던 상처와 오해들을 마침내 풀 수 있게 된다. 비록 시작은 어긋났지만,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코 하나로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마음도 서로에게 가 닿기 시작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은
없소.”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사랑 역시 바람 앞의 등불인 가운데, 왕현은 소기와 자신의 혼인 뒤에 숨겨진 충격적인 비밀과 마주하게 되고, 또
자신이 이들의 운명을 쥐고 흔들 거대한 피바람의 중심에 서게 되었음을 직감한다. 특히 자신의 두 손으로 소기에게 보내기 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든 것을 주었던 아버지와 고모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들이 가문과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왕현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지난날의 보호막이 사라진 뒤에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덕분에 그녀는 소기의 여인이자, 이
나라를 이끌 제왕의 여인으로 점차 변모하기 시작한다.
그 아름다운 모든 것은 이미 풍진세상에 떨어져 내려 잿더미로 화해버렸다. 그때 나는 기꺼이,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버지가 가리키는 길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순간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버려졌다는
절망감이 마음속에 뿌리내렸을 뿐이다.
숱한 고난을 겪고 생가의 기로에 서보기도 하면서 마침내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 것인지 깨달았다. 누구의
곁에 서야 비바람을 피하고 맑은 하늘을 가질 수 있을까? 지난날의 보호막이 사라진 지금, 어디에 몸을 의탁해야 할까?
아버지, 내가 충성을 바치는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3년 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충성을 바쳤으니, 이번에는 내 낭군의 곁에 서렵니다. / 390p
시든 꽃은 미인처럼 박명했다.
팔자를 잘못 타고났고, 길을 잘못 택했고, 사람을 잘못 만났다.
팔자를 잘못 타고나도 운명에 순응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며 일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가장
가엾은 것은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품은 뜻은 높지만 타고난 팔자가 더없이 기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걸음마다 가시밭길이 펼쳐져 뚫고 나가지 못하면 그 자리에 갇혀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238p





난세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 다툼과 궁중 암투,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가족조차 믿을 수 없고 자칫 잘못 내딛으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과연 왕현과 소기는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내며 제왕의 위업까지 달성할 수 있을까. 한겨울 서릿발처럼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덩달아 이리저리 나부끼는 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채로 하권으로 달려가기 위해 여기서 일단락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