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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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삶에서 우리 모두의 인생을 마주하다!

쓸쓸하고도 고독한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그늘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아름다운 고전!

 

 

 

   프랑스 고전 작가들의 판매 부수를 집계한 《르 피가로 리테리르》지에 따르면 8년이라는 자료 조사 기간 동안 장르에 상관없이 가장 많이 팔린 작가로 모파상을 꼽았다고 한다. 몰리에르, 에밀 졸라, 알베르 카뮈, 빅토르 위고 등을 제치고 말이다. 모파상이라는 이름의 유명세에 비하면 아직 그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것이 다소 부끄러워지는 결과다.

 

 

 

   특히 모파상은 10년이라는 짧은 문단 생활에서 단편소설을 무려 300여 편이나 쓰며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이 가운데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은 작품이 ‘Une vie’, 즉 ‘어느 인생’ 혹은 ‘일생’을 의미하는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한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번역본이『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처음 출간된 판본의 번역이 영어 번역본 제목 ‘A woman's life’를 그대로 옮긴 일본어판을 번역한 데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니, 이 작품을 단순히 여성의 일대기로 단정 짓지 않으려는 역자의 시도가 남달리 다가온다. 사실 단편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한 여성의 불운과 불행으로 점철된 기구한 삶’으로 읽힐 수 있을 법하지만, 그것을 한 개인에게 닥친 어떤 특정된 서사로만 바라볼 수도 없는 것은 일종의 연대 의식과 세대적 공감에 따라 보다 입체적으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덕분에 우리는 ‘그녀’가 아니라, ‘여성’을,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답니다.” / 380p     

 

 

 

   『어느 인생』은 주인공인 잔느의 시점에서 시기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전개로 나눌 수 있다. 수녀원 생활을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잔느가 푀플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몽상하며 사랑에 대한 달콤한 꿈을 꾸는 시기가 바로 첫 번째다. 딸을 행복하고, 착하고, 바르고 다정한 여자로 만들고 싶었던 남작은 딸을 사크레쾨르 수녀원으로 보냈고, 엄격히 유폐되어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잔느는 열일곱 살이 되자 마침내 오로지 자신을 위해 마련된 아름다운 성에서 자유와 무한한 희망에 흠뻑 도취된다. 그녀는 긴긴 밤 동안 자신의 마음이 속삭임으로 가득 차 넓어지고, 욕망이 별안간 마음에 우글거리는 것을 느낀다. 밤의 말랑한 흰 빛 가운데 초인적인 전율이 질주하고, 붙들 수 없는 희망이, 행복의 숨결 같은 무엇이 펄떡이기까지 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녀는 손을 맞잡고, 몸을 기댄 채, 서로의 심장이 펄떡이는 소리를 듣고, 어깨의 체온을 느끼며, 달콤한 여름밤의 소박함에 둘의 사랑을 섞으며 걸을 테고, 그렇게 오직 사랑의 힘으로 서로의 비밀스러운 생각까지 쉽게 꿰뚫어 볼 정도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랑을 상상하고, 꿈꾼다. 누구나 꿈꾸는 운명 같은 사랑을.

 

 

 

 

 

 

   그러던 어느 날, 사제를 통해 작년에 죽은 장 드 라마르 자작의 자제가 에투방 마을에서 작은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아버지의 빚을 청산하고 소박한 거처에서 성실히 돈을 모은 데다 사교계에서도 좋은 평판을 쌓아 꽤 괜찮은 조건의 남편감이었다. 마침 미사를 갔던 남작 부인과 잔느는 그곳에서 쥘리앵을 만나고, 그들이 멀게는 친분이 있는 사이임을 알게 되면서 자주 교류를 하기 시작한다. 자작은 잔느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그의 검은 벨벳 같은 눈이 잔느의 파란 눈과 마주치곤 했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무엇인지 채 분별하기도 전에, 사랑에 빠지고 싶었던 잔느의 소망과 점차 적극적으로 변하는 쥘리앵의 구애, 사랑하는 딸을 곁에 두면서 데릴사위까지 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남작 부부의 뜻이 모두 더해져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소설은 열일곱 살 무렵의 잔느를 통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결혼으로 하여금 사랑을 완성하려는 여성의 통속적인 애정관과 사랑관을 섬세한 배경묘사와 심리묘사로 표현함과 동시에 귀족들의 관습과 세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암시를 예고하기도 한다.

 

 

 

그들은 검소하게 생활했기에 그 정도 수입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집안에 항상 뚫려 있는 밑 빠진 독인 선량함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 선량함은 태양이 늪의 물을 말리듯이 그들 수중의 돈을 말렸다. 돈은 흐르고, 새고, 사라졌다. 어떻게? 누구도 알지 못했다. / 23p

 

 

가끔은 잔느가 로잘리를 대신해 어머니를 산책시켰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딸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얘기했다. 잔느는 그 오래전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두 사람의 생각과 욕구가 유사함에 놀라곤 했다.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감동을 느끼며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먼저 전율했다고 상상하는데, 사실 똑같은 감동이 이미 최초 피조물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으며, 최후의 남녀들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이다. / 47p

 

 

어느 날 저녁, 스무 살이었던 리즈가 물에 뛰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삶에서, 그녀의 태도에서 그 무엇도 그런 광기를 예감하게 하는 건 없었다. 그녀는 반쯤 죽은 상태로 건져졌다. 그녀의 부모는 그 행동의 불가사의한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성이 나서 두 팔을 치켜들고 얼마 전에 말 ‘코코’가 구덩이에 빠지면서 발이 부러져 도살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에 대해 말하듯이 그저 “경솔한 짓”이라고만 말했다. / 80p

 

 

 

 

 

 

   잔느와 쥘리앵,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될까? 그들이 함께 시작한 삶은 어떠할까? 결혼이라는, 파기할 수 없는 이 긴 대면에서 서로에게 어떤 기쁨, 어떤 행복, 혹은 어떤 환멸을 마련해 두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서로 진지한 물음과 답변이 없이 돌입한 그들의 결혼은 첫날부터 삐걱거리고 만다. 잔느로서는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고 마치 그녀를 소유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듯 난폭하게 구는 쥘리앵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내라면 마땅히 남편에게 기꺼이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한다고 믿는 쥘리앵으로서는 그녀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신혼여행지인 코르시카에서는 낯선 이국의 매력이 혐오감과 모욕감을 잠시 덜어주었지만, 돌아와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그로인해 그녀는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만다. 심지어 쥘리앵이 잔느와 자매나 다름없는 하녀 로잘리와 간통을 했다는 사실이 들통이 나고, 그의 사생아까지 낳은 사건은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뿐만 아니라, 평소 마음을 나누며 가까이 지냈던 백작 부인과 쥘리앵이 내연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걸어 닫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오로지 자신의 아들인 폴을 향한 집착만 커져갈 뿐이었다. 이렇게 불안한 결혼 생활의 서막과 함께 불행으로 점철된 결혼 생활의 연속으로 고통을 겪는 시기가 바로 두 번째에 해당한다.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에 씌워진 베일을 걷는 건 그 남자의 몫이란다. 그런데 여자아이들이 어떤 의문도 품어 본 적이 없다면 꿈 뒤에 감춰진, 조금은 난폭한 현실 앞에서 종종 반항하곤 한단다. 영혼에 상처 입고, 몸까지 상처 입고서 법이, 인간의 법과 자연의 법이 절대적 권리로 허용하는 일을 남편에게 거부하곤 하지. 더 이상은 말해 줄 수가 없구나.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라는 점 말이다.” / 94p

 

 

그녀는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자신이 알던 모든 것, 자신이 사랑한 모든 것과 헤어져, 다른 땅으로 떠나온 것만 같았다. 자신의 삶과 생각 속 모든 것이 전복된 것 같았다. 심지어 이런 이상한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걸까?’ 문득 남편이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석 달 전만 해도 그녀는 그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어떻게 된 걸까? 어째서 발밑에 팬 구멍 속에 떨어지듯 결혼 속으로 이렇게 빨리 떨어졌을까? / 96p

 

 

하녀가 바로 같은 침대 발치에서 다리 사이로 아이를, 이토록 잔인하게 자신의 내장을 찢고 있는 어린 존재의 형제가 되는 아이를 떨어뜨렸던 날을 떠올리자 다른 통증이, 영혼의 고통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는 쓰러진 하녀 앞에서 남편이 보인 행동을, 던진 눈길을, 했던 말을 그림자 한 점 없이 생생하게 떠올렸다. 이제 그녀는 마치 그의 생각이 그의 몸짓에 기록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행동에서 하녀에게 보였던 것과 똑같은 권태를, 똑같은 무심함을 읽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성가신 이기적인 남자의 똑같은 무심함이었다. / 200p

 

 

 

 

 

 

   끝으로 소설은 매우 가파르게 잔느의 삶이 내리막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아들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치유했던 잔느가 번번이 폴의 사업 실패와 늘어난 빚을 갚아주느라 급격하게 가계가 기울고 마침내 그녀의 성까지 팔아 작은 오두막집으로 가게 되는 장면은 서글프다 못해 애처롭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낭만적인 연애와 결혼을 꿈꾸었던 그녀의 결말이 이토록 초라한 삶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폴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그렇게 자신을 모든 것을 잃어가면서도 갓난아이를 부탁한다는 폴의 편지에 또 한 번 기꺼이 손을 내미는 그녀의 맹목적이고 무모한 사랑은 읽는 사람의 억장까지 무너지게 만든다. 하지만 여린 생명체의 온기가 전하는 그 무한한 감동에 기뻐하는 로잘리와 잔느를 보며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가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답니다.” 라는 마지막 대사는 그 어떤 말보다 우리의 가슴을 명징하게 꿰뚫는다.

 

 

 

   『어느 인생』을 읽으며 모파상이 여자였던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만큼 섬세한 감정 묘사와 유려한 문체가 유독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공을 넘어 당대 여성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해내고자 한 작가의 통찰력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다양한 관습과 결혼, 종교, 가치관의 문제들까지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삶은 그렇고, 그런 것. 별 거 없는 듯하지만 또 어찌 보면 별 거 있는 듯한 이 복잡한 인생살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또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지, 다른 분들도 이 책을 통해 해답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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