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변화해온 매너의 역사를 탐구한 흥미로운 책!
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매너의 통념을 철저히
깨부수는 놀라운 반전 같은 이야기!
영화 <킹스맨>으로 널리 알려진 이 대사, 바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문명화된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다움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행동이야 말로 ‘매너’임을 역설한다. 매너가 있다는 것은 곧 적절하게 처신한다는 뜻이며 상황에 맞는 몸짓으로 정해진 때에
정해진 말을 한다는 의미와 같은데, 이는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로도 작용된다. 실제 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공통의 언어와
공동의 민족적 상징, 표기 방식, 민담, 민족성 그리고 공통의 행동 경향과 행동습관, 공통의 매너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유럽인들은 다문화성으로
인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가 훼손될까 염려한 나머지 그들 고유의 풍습과 다른 풍습을 분명하게 구별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들의 기준으로
‘적절하게’ 행동하고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예절 규칙, 즉 매너를 따르게 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상에서 매너라고 생각하는 행동 중 상당 부분이 중세 유럽의 궁정 귀족과 교육 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귀족
계급이 자신들을 일반 민중과 구별하기 위한 도구이자 사회 계급의 경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매너에 능숙하다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는 이 책의 제기가 상당히 흥미롭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매너의 문화사』는 그간 유럽인의 미덕이라 여겨져 온 매너의
다른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매너가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는 매우 지적이고 유쾌한 탐구서다. 매너의 시작에서부터
몸가짐과 식사예절, 성생활과 지금의 SNS 문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매너가 어떻게 변화하여 정착하였는지 유럽의 역사와 함께 차근차근
훑어보는 이 여정은 우리를 놀라운 지적 유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매너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진실의
역사
엘리아스의 문명화 이론은 인간이, 특히 유럽의 인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엄격한 행위 규범을
발달시켜온 과정을 다룬다.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은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데에 있어서 위험을 일으키는 요소로 판명됐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기 위해 자연적 욕구와 신체 기능을 지배하는 행동 규범을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의 폭력성과 성욕, 식사 방법은 물론이고
눈물을 비롯한 각종 신체 분비물까지 끊임없는 감시 아래 놓이게 되었다. / 24p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화가 다른 집단의 문화보다 낫다는 생각의 뿌리는 매우 깊다. 인간은 자신들의 행동이 야생동물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때문에 매너는 인간들이 자신과 동물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민족 국가가
발생하고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기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유럽의 사람들은 행동을 규제하면서 그들의 공격성과 두려움을 통제해왔다. 예를 들어,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몸으로 하는 인사법들은 모두 상대에게 적대적인 의도가 없거나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났다.
다시 말해,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 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다. 이러한 규칙들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기 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에서 비롯됐다. 모두가 친구 아니면 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를 행동과 몸짓을 통해 정확하게
나타내야만 했다.
사실 태도 혹은 행동거지라는 개념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등장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전투에 출전하는 군인들의 고압적인 이미지를
본보기삼아 힘찬 발걸음을 미덕으로 여겼다. 기준점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기원전 6세기경부터였다. 느리고 조용한 발걸음이 이상형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테네의 민주화로 군인 계급이 선도적 위치를 잃은 데서 비롯되었다. 또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맨바닥에 앉으면 거지 취급을 받았다.
손바닥을 보이거나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은 유약함의 증거로 여겨졌다. 이는 신에게 무기가 없음을 알리는 제스처로 남성성의 상실과 직결되었고,
스파르타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손을 옷으로 가리고 다니기까지 했다. 심지어 남자들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녀야했고, 눈을 자주 깜박이면 간사한
음모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두리번거리는 것은 동성애자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책에서는 예의범절 즉 매너가 시대에 따라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잘 드러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시대마다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제스처나 자세의 형태가 얼마나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영국에서는 17세기까지 포옹이나 키스가 ‘촌뜨기의 풍습’으로 여겨졌다. 프랑스에서도 인사로 포옹이나 볼
키스를 하는 것은 농부들의 풍속으로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 농촌의 인력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도시화 과정에서 볼
키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농촌에서는 볼 키스를 할 때 나는 ‘쪽’ 소리가 얼마나 큰지에 따라 인사하는 사람들 간의 정서적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소리를 내며 키스했다가는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대신 도시에서는 키스를 몇 번 하는가에서 정서적 관계가 드러났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볼 키스 풍습이 도시 인근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문명화’된 것이다. / 55p



겉으로 보기에 문명인의 예절처럼 보이는 행위에는 문명이라고 말하기 힘든 역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첫째로 술자리에서 자주
나누는 건배 문화가 그 중 하나다. 원래 건배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즉 술자리에서 사람들을 잔뜩 취하도록 만드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건배를
하고 나면 술잔이 경쟁적으로 비워지기 때문이었다. 잔을 부딪치는 것은 중세 음주문화와 사회적 행동의 한 부분이었는데, 건강을 위해 건배하고 나면
그 술잔을 비우고 우애를 위한 건배로 화답하는 것이 의무였다. 이렇게 번갈아 가며 술 마시기 경쟁을 벌이는 것이 당시에는 관례였으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고 한다. 또 18세기 에든버러의 행인들은 반드시 모자를 써야했다고 한다. 어느 집이나 하루에 한 번은 창문을 열고 길에다
요강을 비웠기 때문이다. 요강을 비우기 전 행인들을 향해 피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배설물은 밤새도록 길에 떨어져
있었다. 시의 청소원들은 이튿날 아침에서야 길을 치웠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걸 새삼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대목이다.
식기 사용에 대한 규정, 그중에서도 칼에 대한 규정은 일종의 무장 해제를 의미했다. 국가는 치안 유지
능력이 없었고, 삶이 충동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중세에는 각자가 무기로 쓰던 칼을 식탁에서도 사용했다. 그런데 17세기 프랑스 왕이 귀족들을 모두
베르사유에 소집한 후, 종잡을 수 없던 기사도를 단 한순간에 해체시켜버렸다. 그러자 귀족들은 다른 방식으로 다툼을 벌였다. 무기를 휘두르며
다투는 대신, 박식함이나 훌륭한 매너를 경쟁적으로 갖추는 것으로 교양 전쟁을 벌였다. / 83p
아이와 어른을 사회적으로 정의된 경계로 구분하는 것은 문명화의 주된 방식이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방귀를 비롯한 다른 신체의 자연적 기능을 두려움과 수치심에 연결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고리는 점점 강해진다. 이는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이다. 자연적 욕구와 연결된 행복감은 지극히 비밀스럽고 사적인 공간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역겨움이나 부끄러움처럼 부정적 인식이 포함된 감정들이
자연적 욕구에 적합한 감정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아이이기 때문에 ‘비정상’이라던가, ‘병이 있다’는 판정을 받진
않는다. / 112p


이외에도 과거에 포크가 ‘악마의 삼지창’으로 불리어 서유럽 교회가 오랫동안 사용을 금지하기까지 했다는 사실, 다른 사람 앞에서 울 수
있는 연민과 품위의 증거였으며 눈물이야말로 엘리트 계층이 ‘감정적일 수 있는 특권’을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였다는 점, 특정 신체
부위는 가리고 있어야 하며 절대 노출해선 안 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앞에서는 예외였으며 신분이 높은 신사는 하인들이나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친구 앞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드러낼 수 있었는데, 이는 무례라기보다는 특별한 애정과 우정의 증표였다는 것 역시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놀라울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17세기 이후부터 웃음이 ‘도덕적으로’ 통제되고, 중세의 예의범절이 여자들의 튀는
행동을 강압적으로 금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점에 비해 남자들의 충동적인 행동에 대한 통제는 미미했으며, 심지어 기사들에게 여자는 상류층
여자를 제외하고 육체적 욕망을 해소하는 수단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 관습처럼 굳어진 매너의 당위성에 대해 의심해볼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또한
의미가 깊다.
15세기 벨기에와 프랑스 국경 지역 도시 몽스의 주민들은 돈을 모아 강도 한 명을 보석으로 꺼냈다.
그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동시대인의 증언에 따르면, 민중들은 이 사건을 너무 즐거워한 나머지 “마치 죽은 예수가
다시 깨어난 것보다 더 기뻐했다”고 한다. 벨기에 도시 브뤼헤의 주민들은 한 고위관기가 반역 혐의로 고문을 당하는 것을 흥미롭게 구경하기도
했다. 관중들은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했는데, 이는 고통받는 모습을 계속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141p
군중의 공격적인 성향은 집단으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던 시대의 유산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공동체
일원들이 모두 돌을 던져 죄인을 죽였던 투석형의 관습이 그 뒤를 이었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사형 집행이 공동체에 의해 자행된 살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는 사형이 실행되도록 뜻을 모은 군중 모두가 사형 집행인인 셈이다. / 174p

끝으로 책은 인터넷의 발달에 의해 가상세계 안에서 새로운 ‘디지털 중세기’가 열린 것에 우려를 표하며 마무리한다. 우리는 새로운
공격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비록 말에 지나지 않는 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미 손에 쥔 칼로 대화 상대를 내리치고 있진 않는가? 우리는 이제
맞대응과 비아냥거림, 공격과 연민의 상실이 일상화되어 버린 디지털 중세기의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마주하고 극복해야나가야 할지 그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앞서 매너의 역사와 그늘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어쩌면 매너란 ‘적절한’ 어떤 특정 행동이나 자세를 떠나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까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개인 스스로 고민하고 실천해보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인터넷 문화 혹은 사회적인 매너를 완성시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매너의 문화사』는 매너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매너와 우리 사회의 매너 문화를 점검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을 내는 만큼 유쾌하게 읽으면서 여러 사회적인 고민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