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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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희생으로 자식의 인생을 채워준 이 세상 모든 부모에게 바치는 이야기!

결국 나의 이야기이며 나의 부모 이야기기도 했던 가슴 벅찬 고백들! 

 

 

 

   누군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나는 늘 한결같이 “아빠”라고 답했다. 유년시절부터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세상모르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마치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정확한 해답을 내놓았고, 곤란한 일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술이나 담배와 같은 것도 하지 않아 평생 흐트러진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다 내가 대학교에 진학했을 무렵, 아빠가 하던 사업이 문을 닫고 가계가 기울면서 아빠의 삶도 급격하게 힘을 잃어갔다. 그러는 동안에 엄마는 두 번의 암과 싸워야했고, 나는 학자금 대출에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했다. 마침내 취직을 하고 내 생활을 하기에 바빠서 우리 가족에게 닥친 그늘을 적당히 눈감아버리는 데 익숙해져있었다. 그렇게 내가 침묵하는 사이, 아빠와 엄마는 자식의 눈치만 살피느라 더 깊이 침묵했으리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아빠와 엄마의 젊음과 희생을 배불리 먹고 내가 이만큼 컸음을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속의 이야기가, 고백이 어느 하나 낯선 것이 없었고 그래서 몇 번이나 나의 부모와 나를 들여다보느라 읽는 내내 주춤거려야 했다.

 

 

 

 

 

 

내가 이렇게 잘 자라난 것으로 당신들의 삶은 증명되었다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검색 사이트에 ‘임희정 아나운서’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이 같은 제목의 고백이 등장한다. 그녀의 책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에도 등장하는 말이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 막노동이 변변치 않은 직업인 것도 절대 아니지만, 그간 수많은 말들을 내뱉으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던 내밀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더러 노동이라는 단어에 ‘막’을 기어코 붙여가며 “할 일 없으면 공사장에 가서 막노동이라도 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들먹이고, 막노동을 일의 막장으로 치부한다. 무지하고 가난해서 몸으로 하는 노동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몸을 써가며 해온 막노동이 평생 직업이자 유일한 직업이 된 아버지를 둔 딸은, 그래서 한때는 부끄러웠고 때로는 이기적이었던 순간들을 고백한다. 자발적 배경세탁. 드러내는 용기보다 숨기는 비겁을 선택해왔던 그녀는 이제 아빠의 시간과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고, 창피했던 건 아빠의 직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아빠의 노동을 글로 꾹꾹 눌러쓰고, 엄마가 최선을 다했던 영역들을 더듬어봄으로써 그렇게 누구에게도 좀처럼 꺼낼 보일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자 마침내 보이지 않았던, 혹은 외면했던 것들이 차츰 보이기 시작한다.

 

 

 

기준을 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도 잘못됐지만, 그 기대치에 맞춰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나의 마침표도 잘못됐다. 겉모습을 보고 ‘이럴 것이다’ 틀을 씌우는 생각들은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범하는 가장 큰 결례가 아닐까. 보통의 무례 속에 우리는 서로에게 잘못된 질문과 답을 하며 누군가에게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도 그 틀에 맞춰 아버지와 어머니를 숨기고 부끄러워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나 죄송스럽고 후회스러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내 부모의 배경을 남들에게 다 말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말 못 할 이유도 없었는데 그 말이 참 쉽지 않았다. / 18p

 

 

아빠는 밥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밥 먹었냐”였고, 가끔 술 한잔을 하고 전화를 할 때면 “밥 많이 먹었냐”였다. 취한 정도만큼 밥 뒤에 ‘많이’가 붙었다. 어쩌면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 생의 목적이었을 아빠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렇게나 중요한 밥을 많이 챙겨 먹었음에도 가장 무거웠던 몸무게는 58kg. 아무리 많이 먹어도 노동의 양보다는 적었나 보다. / 35p

 

 

 

   일흔이 된 아버지, 평생 노동을 습관처럼 한 아빠. 이제 공사장에서는 더 이상 아빠를 부르지 않고, 몸에 밴 부지런한 습관만 남았다. 손에 종이와 펜을 쥔 날보다 못과 망치를 쥔 날이 훨씬 많았고, 수첩에는 오늘의 노동을 숫자로 적어놓은 삶의 숫자들로만 가득하며, 번듯한 옷 한 벌 없이 시장에서 3만원도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여러 벌의 작업복을 사 입으셨던 아빠. 보청기를 세 번이나 바꿨지만 공사장의 소음 앞에선 거추장스러운 것이었기에 소음을 확장시키는 보청기는 아빠의 귀가 되어주지 못했다. ‘안 그래도 말수 적은 아빠는 그렇게 점점 더 조용히 살고 계셨다’는 그녀의 고백은 얼마 전, 보청기를 구입했다던 나의 아빠를 떠올리게 해서 괜스레 눈물이 밀려나왔다. 손자의 재롱 섞인 말을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웃음만 지어보였던 나의 아빠. 고작 이 작은 보청기에 의지해야 할 나이가 되셨다니, 늘 건강하고 커다랬던 아빠의 몸이 이제 하나둘씩 기울어져가고 있음을 나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일까.

 

 

 

아빠가 장애가 있는 건 슬픈 일이 아니다. 다만 조금의 품이 드는 일이다. 아빠도 그리고 엄마와 나에게도. 이제 그 품을 잘 들여서 서로의 말을 조금 더 잘 들어주면 될 일이다. 조금 더 이해해주면 될 일이다. 원래 ‘이해’는 시간이 드는 일이라 하려면 먼저 기다려줘야 한다. 내가 아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아빠를 아빠의 말을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빠가 보청기를 세 번 맞추는 동안 나는, 이해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웠다. / 51p

 

 

아빠는 이제 나와 마주하고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면 대답보다 그저 웃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내가 아빠 걱정을 해도, 아빠에게 소리를 쳐도, 그저 대답은 웃음뿐이다. 그 웃음 속에는 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생기는 미안함과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허망함, 늙어버린 채 맞아야 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걱정과 같은 수많은 할 말들이 묵인되어 있을 것이다. / 156p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걸 잘 견뎌?”

   뜨거운 그릇을 손으로 척척 옮기는 엄마를 보면 곧잘 하는 말이다. 나는 실리콘 냄비손잡이에 장갑을 껴도 뜨겁다 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드는 것을 볼 때면 그게 엄마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견디고, 견디다보니 무뎌진 일상의 무게들.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본인의 이름 석 자 위에 덧대어진 엄마라는 이름은 여자 그리고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을 지우게 했을 것이고, 먹어야 자식이고 먹여야 부모라고 그 아깝고 긴 시간을 자식 먹이는 일에만 쏟아 부었을 것이다. 삶의 범위라고 해봐야 고작 가족일 뿐일 텐데 또 내내 그럴 것 같아서, 엄마를 엄마로 만든 원인인 나는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란, 엄마처럼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픈 것도 잘 참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엄마는 엄마라고 이름 짓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지어진 엄마라는 이름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고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내주었다. 그 이름값으로 평생 밥을 짓고, 반찬을 하고, 집 안을 쓸고 닦고, 혼자 남편과 세 자식 총 네 명분의 삶을 지불했다. 나는 안다. 아빠가 벌어온 돈만큼이나 엄마가 아낀 돈이 있었기에 그 네 명분의 인생에 빚이 없었다. / 68p

 

 

엄마가 엄마로 애써온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되지 않았다. 어김없이 반복되었고 티 나지 않았으니까. 계속한다고 줄어들거나 나아지는 게 아니라, 그 상태를 유지하거나 그대로였으니까. 집안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있게 하기 위해 엄마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먼지는 쌓이지 않았고, 옷은 항상 깨끗해졌고, 냉장고는 언제나 채워져 있었다. 어떤 것이 보호되거나 지탱될 때, 어떤 이는 축이 나고 지쳐간다.

엄마가 평생 해낸 집안일과 엄마가 평생 만든 음식들은 한 끼의 식사가 끝나거나 하루가 끝나고 나면 다 잊혀졌다. 그것은 자식이 한 가장 큰 망각이자 잘못이었다. / 189p

 

 

 

   돌이켜보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란 줄 알았던 지난 내 삶은 알고 보니 부모의 사랑으로 차고 넘치는 날들이었다. 저자는 아빠의 노동이야말로 자신을 정직하게 키워냈음을 안다. 바르게 살라는 훈계 한마디 없이 저절로 그 가르침을 배웠다. 평생 첫차를 타고 출근했던 아빠의 시작을 따라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고 체득된 것이었다. 또 엄마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영역, 그것은 마땅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최선을 다했던 영역이라는 것도. 덕분에 나 역시 왜 엄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먹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답답해하기보다 엄마가 담당하는 대화의 영역, 삶의 영역 안에서 오래오래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서러운 것은 부모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명랑 쾌활한 것도 부모님 덕분이었다. 충분히 사랑받으면 결핍이 없어진다 했던가. 나는 나의 결여가 부모의 사랑으로 채워졌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내가 완성됐음을 너무나 잘 알겠다. 나는 많이 사랑받았다. 아버지는 자기 목숨을 걸고 나를 위해 노동했고, 어머니는 자기를 희생해 나를 위해 밥을 지었다. 그 노동과 밥은 가난과 무지를 넘기 위한 부모의 피나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지나온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부모가 아니라 나’라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혼자 크고 혼자 이뤘다 느꼈다. 부모는 걸림돌이 아니다. 걸림돌은 내가 주워오는 것이다. / 132p

 

 

사실 부모의 마음은 통역이 필요 없다. 내가 어른이 되니 저절로 이해가 된다. 시간이 통역사다. 앞으로의 나의 시간들은 부모를 이해하는 날들만 남아 있다. 다행이다. 그 이해에는 통역이 필요 없어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건 그 처지가 되어보면 될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뒤늦게 이해하며 자식은 부모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 160p

 

 

 

 

 

 

   문득, 결혼을 하고 신혼집에 들어오기 전에 엄마와 아빠가 친정에 두었던 몇 가지 짐을 챙겨 오셨던 날이 생각난다. 아빠는 딸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훑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리고 집을 나서며 “네 책 속에 아빠가 편지를 끼워뒀는데, 무슨 책인지 모르겠다. 네가 찾아봐.” 하셨다. “이 많은 책 중에 어떻게 찾아?” 나는 그렇게 웃어넘긴 뒤 아직까지도 편지를 찾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찾고 싶은 마음을 미뤄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무슨 글이 쓰여 있을 것인지 알고 있기에, 차마 펼쳐서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으며 나는 그 편지를 계속 생각했다. 이제 그 편지를 찾아 나도 아빠에게 답장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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