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편의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마음을 두드리는 그
시절의 추억!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을 법한 아름다운 유년의 향수가
담긴 따뜻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고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추억 한 편쯤은 있다. 흔들리는 이빨에 실을 걸어 불시에 나의 이마를 탁- 쳐내 큰 고통
없이 이빨을 빼주었던 아빠의 손길, 일일 급식 도우미로 와준 엄마를 보고 친구들이 “너희 엄마 예쁘다” 하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순간,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무대를 상상하며 동네 앞 피아노 학원의 열린 문틈 사이로 내내 안을 기웃거렸던 수줍고 설레었던
마음까지. 그렇게 추억을 거름 삼아 나는 이만큼 자라났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너무나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유년의
이야기는 한참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나의 가장 아름다운 의미가 된다. 그러니 모두들 잊지 마시길. 오롯이 추억하시길.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추억의 꽃은 그렇게 피어난다
『마음에 심는 꽃』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며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안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님의 책이다. 데뷔작이기는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기에 자칫 잊힐 뻔했던 이야기가 무려 2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도시에서 이사 온 소년의 순수한
우정을 담은 이야기가 푸릇하고 정감어린 시골을 배경으로 한 편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따뜻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과
은은하게 수놓아진 그림을 가만가만 읽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곱게 물드는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유년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는 가운데, 어느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던 수현이 역시 친구 미정이와 공장으로 일하러 간 삼촌을 보낸
뒤였다. 이제 학생도 얼마 없고 선생님마저 둘 뿐인 분교라 적적했지만, 수현은 삼촌과 미정이가 함께 씨를 뿌린 ‘인동집’의 꽃밭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위안삼아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동집으로 도시에서 살던 가족이 이사를 온다. 시골로 이사 오는 사람을 워낙 드문 까닭에
수현이네 가족은 이사 오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궁금해 하는 반면, 수현이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간 자신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던 인동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니, 삼촌과 미정이와의 추억이 깃든 꽃밭이 내심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들에서 일할 때 수현이와 미정이는 동생을 돌보며 인동집에서 지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인동집으로 갔습니다. 흙을 부수고, 돌을 고르고, 고랑을 만들었습니다. 맨 앞줄에는 앉은뱅이 채송화 씨를 뿌렸습니다. 까만 콩 같은 분꽃
씨를 다음 줄에 묻었습니다. 봉숭화 씨와 과꽃 씨도 뿌렸습니다. 맨드라미, 백일홍, 족두리 꽃씨를 흙속에 잘 감추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 30p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바퀴 자국이 깊게 남아 있는 마당을 지나 꽃밭에 가보니 어른의 발자국에 제법 자란 과꽃 줄기가 밟혀 있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농사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부부와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였는데, 남자아이의 방 안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던 노란 붓꽃이 얼핏 보이자 화가 난 수현이는 남자아이에게 눈을 흘기고 분한 마음을 토해낸다. 도시 소년인 민우와 같은 반이 되어 짝이
되기까지 했지만, 수현은 민우를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하고, 민우 역시 수현이에게 까칠하게 군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이는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들었다가 민우에게 무거운 속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우가 병에
걸려 공기가 좋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인데, 그간 병원비를 대느라 집도 팔고 이래저래 집안 사정이 곤란해진 것이었다. 이제야 수현이는 민우가
잦은 결석을 하고, 여느 친구들처럼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으며 아빠가 데리러 올 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다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민우의 집을 찾아간 수현이는 마침 마루에 놓여 있는 민우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되고, 그 모습을 민우에게 들킨 수현이는 빨리
가버리라고 소리치는 민우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린다.
“뭘 갖고 싶은데?”
“예쁜 옷이랑, 머리띠 그리고 동화책.”
“나라면 그런 건 안 갖는다.”
“더 좋은 게 있어?”
수현이가 궁금해하자 민우는 다시 살짝 웃었습니다.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 / 103p

두 아이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다. 꽃밭을 가꾸면 삼촌이 상을 주기로 했다는
수현이의 말에 민우가 그럼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으니 “예쁜 옷이랑, 머리띠 그리고 동화책”이 갖고 싶다고 대답한다. 소소하지만 참 아이 다운
풋풋한 대답이다. 그러자 민우가 나라면 그런 것 안 갖는다며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라고 말한다. 욕심 없이, 그저 자연의 섭리를 따랐을 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민우 역시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신이라는 삶의 꽃을 피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훗날 민우가 건강하게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마당에 어떤 꽃들이 자라나고 있을까. 수현이는 민우가 돌아와 마당에 가득
피어난 꽃을 보고 행복해할 것을 상상하며 오늘도 매일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 이렇듯 『마음에 심는 꽃』은 아이들의 꿈과 우정으로
풍성하게 자라나는 꽃밭을 기대하게 되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런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품고 있듯 나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나의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이 책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날을 상상해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