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2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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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대한 발명인 금속활자의 전파에 관한 실체를 파헤치다!

직지에서 한글, 쿠텐베르크의 성경, 반도체로 이어진 위대한 여정을 아우르는 상상력의 힘!

 

 

 

   앞서 <직지> 1권에서 전형우 교수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던 기자 기연은 교수가 로마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때 쓴 논문의 이름이 <바티칸 수장고 공개의 제문제-계량서지학적 관점에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전 교수가 바티칸 교황청의 비밀수장고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카레나라는 이름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다 이와 관련된 교황청 수장고의 어떤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추리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한때 전형우 교수와 같은 신학부에 다녔으며 현재 바티칸 수장고 관리신부로 있는 파블리오 인데르노로부터 카레나가 조선 세종 때 유럽으로 건너간 여성이었으며 그녀가 금속활자를 유럽에 가져갔고,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추기경인 쿠자누스가 그녀로부터 코리의 군주가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일까지 이르는 놀라운 정보를 얻게 된다.

 

 

 

   대체 카레나, 그녀는 누구인가. 기연은 이 이야기의 출발점인 전 교수의 살해사건은 관심 밖으로 두고, 이제 자신에게 허용된 모든 시간을 카레나와 쿠자누스 두 이름을 추적하는 데 바치면서 이들이 펼친 1400년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직지> 2권의 초점은 자연스레 카레나가 살았던, 즉 조선의 세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은수라는 여성과 마주하게 된다.

 

 

 

직지와 한글 그리고 쿠텐베르크의 성경에 이르기까지

 

 

   세종은 글자가 완성되면 바로 금속활자를 이용해 대대적으로 인쇄에 돌입하여 온 세상에 책이 넘쳐나게 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활자 주조를 맡은 양승락과 그의 여식인 은수는 편안하면서 세종의 정신을 담아 당당한 글자체를 만들어 그의 뜻을 보필하려 했다. 그런데 세종이 한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명나라 사신이 이를 반역으로 몰아세우면서 양승락과 은수의 목숨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끝내 양승락은 자객의 손에 비명횡사하고, 은수는 선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구하게 되지만 원에 끌려가 온갖 위험과 고초를 겪게 되고, 운이 좋게도 베르나르 신부를 만나 바티칸에 이를 수 있었다. 워낙에 총명한 그녀인지라 로마의 감옥에서 필경사들의 실수나 고의에 의해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죽고 살아서는 안 되는 이들이 사는 폐해를 발견해냈고, 이를 지적한 공로로 교황을 만나 아버지로부터 배운 금속활자의 제조를 시연해보일 기회를 얻었다.

 

 

 

   교황은 제 눈앞에서 본 이 어마어마한 기술에 당연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은수를 칭찬하며 필사업이 가장 성행하는 마인츠로 그녀를 보냈다. 여기에서도 은수는 조선에서 백성을 위해 글자를 퍼뜨리는 게 의미가 있다면 여기서도 글자를 퍼뜨리는 건 똑같이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순박한 청년 폴츠의 도움을 받아 금속활자를 재현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교황이 ‘사람들이 쉽게 글자를 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궤변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더 그녀가 금속활자를 만들려고 한다면 바로 제거해 교회의 신성함과 사제의 권능을 지키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조선이 그러했던 것처럼.

 

 

 

글자체를 빼앗긴 건 억울했지만 이 사건은 은수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세상 어디에나 권력과 탐욕이 결탁한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고, 이 힘은 턱없는 억지를 약자들에게 강요하고 있으며, 약자는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은수는 확실히 깨달았다. / 131p

 

 

 

 

 

  그렇게 이제 죽을 일만을 앞두고 있는 은수 앞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철학자이며 유럽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진 쿠자누스 대사가 나타났다. 그는 은수를 구하고 아비뇽의 고르드 수녀원에 맡기기로 하면서 그녀의 안전을 도모해주기까지 했다. 이에 은수는 쿠자누스를 비롯하여 자신을 양녀로 받아들이고 도피시켜준 유겸, 객주에서 불한당을 제지하던 이름 모를 노인과 손님들, 모두 자신이 힘들어지더라도 남을 위해 나선 거룩한 이들을 생각하며 할아버지가 준 목걸이에 새겨진 글귀를 되뇌었다. “템푸스 푸지트, 아모르 마네트.”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는 뜻이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제 그녀가 전할 차례였다. 은수는 쿠자누스로부터 ‘코리에서 온 미인’이라는 뜻으로 카레나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금속활자로 하여금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쿠텐베르크라는 이에게 금속활자의 기술을 전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침잠의 방으로 들어가 아주 오랜 기간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철학자로서 그는 권력을 야만성과 피지배층의 고통에 고뇌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권력을 따라가기만 하는 자신의 무력함과 비겁함에 고심했을 터였다. 그런 중에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다는 세종대왕의 초파격은 그에게 정신사적 개벽으로 다가갔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어떤 현군도 한 적이 없었던 일이란 사실은 차치하고, 글자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자연 발생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로서는 세종대왕을 알고 난 뒤 존재론적 충격에 휩싸였을 법한 일이었다. / 13p

 

 

“상감께서 성공하셔서 조선의 백성들이 금속활자로 찍은 새 글자를 보고 있는 걸 그리며 잠들곤 했어요. 이제 당신이 이 땅에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급해주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물을 마시듯 책을 볼 거예요. 그건 상감의 꿈이고, 제 아버지의 꿈이고, 저의 꿈이에요. 지금 기도하신 대로 꼭 당신이 이루어주셔야 해요.” / 182p

 

 

 

 

 

 

   훗날 기연은 엘트빌레 수도원 측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필사방에서 자연스럽게 카레나를 떠올린다. 거의 모든 수도원에서 노동의 일환으로 필사를 하던 시절, 혼잣몸으로 이 낯선 세계에 들어와 금속활자를 퍼뜨렸던 카레나. 세낭크 수도원 앞 라벤더 꽃밭에서 한평생 참아온 한마디를 터뜨리고 산화한 그녀는 기연의 마음속 싶은 곳에 또 하나의 자아로 자리 잡았다. 이제 기연은 전 교수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직지로 이어지고 유럽에 금속활자의 기술을 전수한 카레나라는 조선 여성에게까지 가 닿은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사건의 시작이자 온갖 비밀로 점철된 엘트빌레 수도원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지금 나는 성경 180부를 완성했고 이걸 팔면 돈을 다 갚고도 한참 남습니다. 하지만 재판관은 성경 180부와 인쇄기를 넘겨주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재판소가 돈 많은 푸스트와 결탁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와 결탁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우리의 후손은 다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법전을 인쇄할 것입니다. 역사를 인쇄하고 철학을 인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힘없고 가난해 무시당하고 착취당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저들은 내게서 기계와 인쇄물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인류의 위대한 동행이라는 인쇄의 정신은 빼앗지 못합니다.” / 222p

 

 

“언어학자들은 앞으로 지구상에 여섯 개의 언어만 남을 거라 예측합니다. 바로 영어와 중국어, 아랍어와 스페인어, 불어입니다. 이 언어들은 쓰는 사람이 워낙 많아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한글인데, 쓰는 사람은 적지만 한글이 꼽히는 건 오로지 글의 우수함 때문입니다. 이처럼 직지와 한글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기 이전에 인간 지능의 금자탑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직지와 한글은 그 존재 자체가 소수의 독점으로부터 지식을 해방시켜 온 인류가 손잡고 동행하자는 지식혁명입니다. 이기심에서 벗어나 이타심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위대한 메시지가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 262p

 

 

 

   이렇듯 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직지’를 환기시키고 나아가 한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반도체로 사슬처럼 이어지는 이 어마어마한 전개 스케일(너무 광대해서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을 듯하지만)은 그냥 압도적이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직지와 과거에서 시작된 직지를 한 쾌에 관통해내는 것은 물론 유럽으로 시선을 옮겨 직지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내는 완성도 역시 탁월하다. 직지냐 쿠텐베르크냐의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전하는 가치와 정신을 오롯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메시지 또한 묵직하다. 늘 그러했듯 김진명의 소설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 이르면 가슴이 벅차면서도 한편으로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떠안은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이것이 그의 소설을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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