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1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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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살인에서 시작된 ‘직지’ 미스터리!

역사 미스터리의 대가 김진명이 세상에 던지는 또 하나의 놀라운 메시지!

 

 

마음을 바로 보면 그곳에 길이 있다

 

 

   직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이른바 ‘직지심체요절’이라 불리며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고려 말에 국사를 지냈던 백운이라는 스님이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으로,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사서로 있던 박병선 박사가 발견해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으며,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 문화유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우리 조상이 인류 역사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은 민족의 위대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훌륭한 산물임에 틀림없다.

 

 

 

   일단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며, 또 그렇게 배워왔다. 그런데 그 이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완성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대 사건’의 1위에 손꼽힐 만큼 인류의 역사에 공헌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되었다. 전 미국 대통령인 앨 고어 역시 “한국은 금속활자 발명과 디지털 기술로 인류에 큰 선물을 줬다”고 하면서도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다.”고 말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을 인정은 하되 인류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라는 것이다. 그동안 ‘최초’라는 명예에 자긍심을 느끼며 우리의 금속활자를 자랑스럽게 여겨왔지만, 오로지 ‘최초’라는 프레임에 갇혀있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문제다. 또 우리의 금속활자가 정말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준 것인지, 혹은 우연의 산물인지에 관한 논의가 뜨겁게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중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기만 하니, 학술적인 관점과 교과서적인 프레임을 넘어 대중적인 관심 역시 필요해 보인다.

 

 

 

   바로 이러한 때에 역사 미스터리의 대가인 김진명 작가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금속활자가 우리의 직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이란 화두를 내걸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제목 역시 에두르는 법 없이 <직지>다. <황태자비 납치사건>, <천년의 금서>, <싸드>, <고구려>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역사적 문제 앞에서도 특유의 상상력과 뚝심을 발휘해 역사를 되돌아보고 민족의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 서왔던 그인 만큼 이번 작품 역시 예사롭지 않다.

 

 

 

피살된 교수가 해석해낸 중세 교황의 편지에 담긴 진실은?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시신의 것으로 보이는 귀가 바닥에 핏덩어리처럼 잘려 나와 있고, 마치 드라큘라에게 물린 것처럼 목에는 송곳니 자국이 선명하다. 결정적인 사인으로 그의 등을 관통한 것이 있었으니 믿기지 않게도 중세시대 무기인 철창이다. 라틴어를 가르쳤던 전직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참혹한 모습이다. 현장 취재를 나선 기연과 사건 반장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완벽하게 현장을 처리한 프로의 솜씨에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다.

 

 

 

상징살인이란 사람을 죽일 때 살인현장에 장미꽃잎을 뿌리거나 물고기 표시를 하는 등의 상징적 행위로 행위자의 목적과 의지를 분명히 알리는 걸 말한다. 징벌과 경고가 본질이지만, 한편으로는 엘리트 살인자들이 살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죄의식을 희석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 상징살인은 역사적으로 개인보다는 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진 비밀단체에 의해 자행되며 수백 년 이상 베일에 싸인 채 계승되어 오기도 하는데, 각종 종교의 암살단에 의해 행해지는 살인이 그중 하나로 꼽힌다. / 75p

 

 

 

   평소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전 교수 부인의 말에 기연은 교수의 차 내비게이션을 검색하게 되었고, 그러다 그가 청주에 있는 서원대학교에 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서원대학교의 김정진 교수와 전 교수가 왕래가 있었다는 정보를 얻게 된 그녀는 그에게 직접 찾아가 전 교수의 죽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아낸다. 김정진 교수의 말에 의하면 서원대학교와 청주시는 함께 직지 알리기 운동을 같이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간 직지가 최초라는 것만 인정받지 세계사에서는 이렇다 할 인정을 받지 못하자 직지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뿌리라는 증거를 찾고 있었고, 마침내 바티칸 비밀수장고에서 이에 해당하는 의문의 편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란 고려로 추정되는 ‘코럼’이라는 나라의 왕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로, 이에 대한 해석을 라틴어에 능통한 전 교수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직지 연구자들의 기대와 달리 전 교수는 이 편지가 고려 충숙왕에게 보낸 것이란 점을 부정하는 해석을 내놓았고, 이에 연구자들은 그에게 분노했다고 한다.

 

 

 

“의외로 직지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냉담해요. 그래, 인정한다, 직지가 가장 오래됐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

“가장 오래됐다는 사실만 인정받지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지식혁명의 주인공으로 대접을 못 받는다는 거군요.”

“그래요. 직지를 어떻게 감히 구텐베르크의 위대한 인쇄혁명에 견주려는 거냐? 직지가 가장 오래된 건 맞지만 조야하기 짝이 없고 어디 절간에 처박혀 있었을 뿐 도대체 한 게 뭐냐? 직지가 정말 쓸모 있는 거라면 당신네 한국인들이 위대한 지식혁명을 이루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당신네 한국인들이 책을 인쇄하고 신문을 제작하는 모든 기술조차 직지에서 뽑은 게 아니지 않느냐? 그게 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수입한 거 아니냐 하고 묻는 거예요.” / 50p

 

“현대인의 가장 큰 오류는 과거를 함부로 무시한다는 사실이에요. 세상에는 현대의 기술이나 지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과거의 유산이 얼마든지 있어요.” / 82p

 

 

“책은 최고의 문화국만이 수출하는 거예요. 팔만대장경만 봐도 고려가 엄청난 문화국임을 알 수 있지만, 당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잠견지를 만들고 책을 수출하던 나라가 바로 고려예요. 조선에 뭉개졌지만 고려는 정신도 문화도 대단했던 나라예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걸 얘기하고 있잖아요.”

“갑자기 안타까워지네요. 고려라는 우리의 나라가.”

“그러니 고려 최고의 유산인 직지를 잘 살려야 해요.” / 85p

 

 

 

 

 

 

   기연은 전 교수가 고의로 무엇을 왜곡하거나 진실과 동떨어진 해석을 내놓은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듦과 동시에, 당당히 자신의 학문적 소견을 밝힌 그를 살해한 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한다. 그러다 <살인의 역사>를 쓴 저자 이안 펨블턴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용의자가 외국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전 교수의 서재를 뒤지다 남프랑스 여행책과 스트라스부르대학의 피셔 교수, 아비뇽의 카레나라는 의문의 두 이름을 발견하고야 만다. 이는 곧, 전 교수가 프랑스로 날아가려 했다는 건 비밀의 단서가 거기 있다는 것이고, 이 두 사람은 비밀에 다가서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 결국 기연은 김정진 교수와 함께 비밀의 단서를 파헤치기 위해 프랑스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피셔 교수를 만나거나 세낭크 수도원을 찾아가는 등 의문의 여인인 카레나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사실과 신변의 위협까지 마주하게 된다.

 

 

 

“본래 귀를 자르는 행위는 1542년 교황 파울루스 3세가 로마에 종교재판소를 만든 이후에 시작되었소. 말이 재판이지 사실은 무자비한 고문과 극형이 수시로 자행되었던 그 종교재판소에서는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의 목소리 대신 사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이유를 붙여 귀를 자르는 형벌을 가했소.”/ 231p

 

 

 

   이렇게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직지>의 1권은 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직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기자가 점점 비밀의 단서와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쫓아간다. 여기에서는 우리의 금속활자로 대표되는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간의 대립 구도가 눈에 띄는데, 직지의 의미와 가치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기연이 느낀 것들을 학자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녀는 마치 월드컵 축구처럼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독일과 한국 양국이 무엇을 얘기해도 학문적 진전이 없음을 지적하며, 과학적으로 비교한 결과 직지에 나타난 활자의 자국과 구텐베르크 성경에 나타난 활자의 자국이 일치하는 바,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경에 기여했음을 인정하되 구텐베르크의 업적 또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며 합리적이고 진전 있는 접근을 제시한다. 즉, 독일은 직지의 씨앗을 인정하고 한국은 독일의 열매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직지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미래를 제안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구텐베르크가 했든 그 누가 했든, 1455년에 독일의 마인츠에서는 180부의 성경이 금속활자로 찍혀 나왔습니다. 1,300페이지에 가까워 그 당시까지 조선에서 인쇄한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데다 색깔과 무늬가 다양하고 아름다워 마치 예술품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기계로 찍혀 나왔고 인쇄용 유성잉크도 개발되었습니다. 1500년 무렵에는 유럽의 250개 도시에 1,500곳 가량의 인쇄소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단 하나의 인쇄소가 있었고, 그것마저 나라에서 관리했으며, 한 번에 수십 권, 많아야 200권씩 1년에 몇 번 찍는게 다였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의 인쇄가 유치원생이라면 독일의 인쇄는 대학원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독일은 직지의 씨앗을 인정하고 한국은 독일의 열매를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 207p

 

 

 

 

 

  이제 기연은 전 교수의 사건이 범인을 잡는 것보다 왜 그런 범행이 일어났는가를 규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2권에서는 향방이 달라질 것을 예고하며 마무리된다. 과연 전 교수를 죽인 자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직지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까닭에 얼른 갈무리하고 2권으로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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