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전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은 위대한 문학작품에 얽힌 탄생비화!

고전 작품을 읽는 재미만큼이나 흥미로운 영감의 순간들!

 

 

 

   모든 예술 작품은 탄생 그 이전에 번뜩이는 어떤 순간과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창조적인 일의 계기가 되는 기발한 착상이나 자극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는 이를 ‘영감’이라 일컫는다. 단언컨대 수많은 창작자들이 자신에게 찾아올 이 한 순간의 강렬한 영감에 도취되기를 열망하며 그 원천이 되는 소재들을 찾아 헤맨다. 우리 시대 이전의 예술가, 즉 위대한 문학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단 하나의 구체적인 아이디어, 혹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치열한 주제의식을 얻기 위해 그들 또한 문학적 영감이 스치는 찰나와 상상 속의 무한한 가능성을 샅샅이 뒤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의 저자 실리어 블루 존슨은 어느 추운 겨울날, 《댈러웨이 부인》을 여러 번 완독한 후 이 이야기의 첫 줄이 탄생하기 이전의 일을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이 우아한 사교계 명사를 창조하기 위해 밟았던 절차들을 되짚어 따라가 보았는데, 현실세계에도 ‘댈러웨이 부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 속의 댈러웨이 부인처럼 복잡 미묘한 인물이 실존했다니. 덕분에 저자는 평소 좋아하는 작품들의 탄생배경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위대한 작가들로 하여금 펜을 들고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문학작품을 쓰게 만든 그들의 반짝이는 영감과 그 근원을 캐내기 시작했다. 출발은 이렇듯 사소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지만 위대한 작품의 탄생비화와 영감을 발견해낸 순간과의 조우는 작품 속 이야기 못지않게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도로 위를 달리던 가운데 떠오른 생생한 문장 하나가 가던 길을 되돌리게 하고, 잠자리에 든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지어 들려준 이야기가 위대한 작품이 되며, 헤밍웨이 소설의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을 자처하는 가짜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해프닝 등 한 작품에 얽힌 갖가지 사연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책은 작가들에게 영감이 번쩍하고 스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비롯하여 삶의 현장이 곧 이야기가 된 순간까지 총 50편의 작품을 따라가본다. 1장인 “번쩍 스치는 황홀한 순간” 편에서는 톨스토이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불쑥 스쳐지나간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 이미지로 《안나 카레리나》를 탄생시킨 일화와 가족여행을 갔다가 무료함에 그린 지도 그림 한 장이 《보물섬》이란 모험 소설을 탄생시킨 사연,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다 《호빗》을 탄생시킨 톨킨, 한 신문 기사에 난 여행사 광고 문구에서 착안하여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완성시킨 쥘 베른의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하나의 개념, 단순한 환영, 한 줄의 문장 등 환하고 커다란 빛이 시커먼 어둠을 뚫고 번쩍 비치는 듯했던 이 순간들은 형태야 어떻든 이 위대한 작가들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한 번의 반짝임이 활활 타오르는 창작욕으로 이어져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 걸 보면 때로는 영감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캐치-22》의 작가 조지프 헬러 역시 “내가 일부러 짜내는 게 아니다. 하늘이 정한 몽상의 길을 따라 저절로 나에게 오는 것이다.”고 했을 정도니까. 물론 그들 스스로 이미 훌륭한 이야기꾼이었으며, 단순한 이야깃거리 하나를 두고도 어떻게 비틀고 매만져야 흥미로운 작품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그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경험이 나에게 귀중한 교훈을 안겨주었다. 특히 민주국가의 진보한 국민들조차 전체주의의 선전활동에 너무나 쉽게 휘둘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오웰이 소련과 사회주의에 관한 환상을 단호히 내팽개치기로 마음먹었을 무렵, 채찍질하며 말을 모는 소년의 모습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간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고자 하던 오웰의 의도를 정확히 담을 수 있는 비유적 소재를 비로소 찾아낸 것이다. / 조지 오웰, 《동물농장》 중에서 53p

 

 

 

 

 

   2장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낳고” 편에서는 자유로운 말하기에 매력을 느끼고, 거기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은 작가들이 등장한다. 휴가지에서 ‘갈바니즘’을 주제로 한 어떤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광기에 사로잡힌 의사와 그가 생명을 부여한 괴물에 관한 공포소설을 완성해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창 말하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오즈라는 세계에 닿은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만들기 놀이가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마찬가지로 아들의 침대 맡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곰돌이 푸우가 탄생하게 된 A. A. 밀른의 《곰돌이 푸우는 아무도 못 말려》가 바로 그것이다. 문득, 케네스 그레이엄과 A. A. 밀른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꾼은 바로 부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아이의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하나, 꿈을 키우게 하는 이야기 하나가 그 어떤 동화 못지않은 상상의 세계를 펼쳐줄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 이거 정말로 지금 막 지어낸 이야기 맞아?”

캐럴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응. 얘기하면서도 계속 지어내는 중이야.”

그로부터 25년 후, 캐럴은 자신의 이야기 중 상당수가 “햇살이 눈부신 황금빛 오후를 제 나름대로 화려하게 장식하며 살다가 덧없이 죽는 여름철의 꼬마벌레들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는 작은 친구들 중 하나가 그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겠다고 청했다.”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109p

 

 

그레이엄은 미국 출판사인 스크리브너와도 출판계약을 맺고 싶어 했지만, 스크리브너는 이 원고에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부족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레이엄에겐 스크리브너가 절대 무시할 수없는 열혈 독자가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그의 전작을 읽고 열렬한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떠올린 그레이엄은 잽싸게 원고를 복사하여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레이엄의 출판 에이전트인 커티스 브라운의 회고에 따르면, 이 원고를 읽은 루즈벨트는 “굉장히 아름답고 훌륭한 소설이므로 스크리브너가 ‘반드시’ 출판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스크리브너는 기존의 결정을 뒤엎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책으로 만들어냈다. / 케네스 그레이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중에서 125p

 

 

 

   3장인 “현실 속, 그와 그녀의 이야기” 편에서는 실존하는 현실의 인물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소설 속 세계로 유인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유년시절의 친구가 소설 속 반항아 ‘허클베리 핀’으로 되살아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자신이 열광했던 교수님을 소설 작품에 옮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일찍 여읜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키워주고 상류층 사교계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해 준 키티를 모델로 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의 작품이 그러하다.

 

 

 

   여기서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서 남겨보고자 하는데, 피츠제럴드는 일찌감치 소설의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로 정해 놓고서도 결코 그 제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골칫덩어리 주인공 이름을 굳이 제목에 올리기는 싫었을 것이다. <거지와 백만장자 사이에서>, <웨스트 에그의 트리말키오>, <웨스트 에그로 가는 길>, <황금 모자를 쓴 개츠비>, <인생역전을 이룬 남자의 사랑> 등 수많은 제목안이 있었지만, 편집자인 퍼킨스는 한사코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만을 고집했다고 한다. 퍼킨스의 고집대로 책이 출간되기 직전, 피츠제럴드가 급하게 전보를 쳤다. <붉고 희고 푸른 깃발 아래>라는 제목에 꽂혔으니 당장 진행을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미 인쇄된 제목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었다. 책은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 그래도 출간되었고, 피츠제럴드는 ‘제목이 그저 그래서, 솔직히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에 가깝기 때문에’ 책이 잘 팔리지 않을 거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개츠비》란 제목을 두고 왜 ‘위대한’이란 표현을 썼을까 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저마다 다른데, 책이 잘 팔리지 않을 거라던 작가의 우려와 달리 어찌 보면 제목 때문에 작품이 더 화제가 된 셈이기도 하니 억울할 것은 없지 않을까 싶다.

 

 

 

배리는 꽤 어릴 적부터 불로불사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가 여섯 살이던 해에 형 데이비스가 스케이트를 타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배리의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어린 배리가 형의 옷을 입고 형을 흉내 내면서까지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그는 결코 데이비드가 될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의 형은 가족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완벽한 아이의 모습으로 남았던 것 같다. 이렇게 비극적인 사연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된 배리는 어릴 적에 잃어버린 형을 글로나마 되살리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터팬이 작가의 형처럼 영원히 유년기에 갇혀버렸는지도. / J. M. 배리, 《피터팬》 중에서 181p

 

 

 

 

 

  이 외에도 4장 “어둠 속 저편, 영감이 떠오르다” 편에서는 누추한 감옥이나 어둡고 위험한 세계, 비열한 거리에서 무한한 창조적 영감이 탄생하는 순간을 만나보고, 5장 “영감을 찾아 떠난 위대한 여정” 편에서는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스스로 아이디어를 찾아 나선 작가들을 따라가본다. 끝으로 6장 “내 삶의 현장이 곧 이야기다” 편에서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작가들과 그 현장에서도 번뜩이는 문학적 영감을 포착한 순간들을 만나본다. 일반인이라면 결코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을 법한 어둡고 위험한 세계에 과감히 몸을 던지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생생한 경험을 쫓으려한 작가들의 열망과 노력이 있었기에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오하라의 아내 메리가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다가 갑자기 발칵 성을 내며 끼어들었다. 그녀는 두 남자가 전쟁 중에 겪은 일들을 일종의 화려한 무용담으로 기억하는 것에 진저리를 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완전무결한 영웅들의 싸움이 아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어나간 이들은 고작 열 몇 살, 끽해야 스무 살 초반의 어린애들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말이었다. 보네거트는 “메리의 발언으로 나는 주관적인 기억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이렇게 얻은 새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참전 당시의 진짜 우리들, 즉 열일곱 살, 열 여덟 살, 열아홉, 스물, 스물한 살 애송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중에서 252p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대사는 이제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신비로운 매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이 이름이 탄생한 배경은 의외로 좀 시시한 면이 있다. 플레밍은 진짜 첩보원에게 번지르르한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지노 로얄》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등에 적힌 저자명을 쭉 훑던 그의 시선이 《서인도 제도의 새들》에서 멎었다. 책의 저자는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 짧고 단순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이름-플레밍이 찾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 이언 플레밍, 《카지노 로얄》 중에서 355p 

 

 

 

 

 

   편식 없이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간 고전 문학은 생각보다 많이 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다. 그래서 작품의 탄생비화를 즐기는 재미도 있지만, 몰랐던 고전 문학을 상당수 알게 되었다는 점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를 테면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윌리엄 S.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 등은 탄생 비화 덕에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미 읽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 책 덕분에 또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읽는 게 기대되는 것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 작품에 얽힌 갖가지 사연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수록 작품을 미리 읽어보지 않았어도 재미있게 잘 읽혔다. 물론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보다는 탄생 배경이나 출간 전후에 있었던 특별한 일화에 주목하다보니 가볍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을 읽기 전에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본다면 등장인물이나 배경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고전 문학과 친해지는 책읽기의 좋은 방법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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