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 모든 어른 아이에게 띄우는 노부부의 그림편지
안경자 지음, 이찬재 그림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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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랑하는 세 손자에게 전하는 마음이 담긴 편지!

불안하고 답답한 세상에 큰 어른이 전하는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인스타그램에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이란 계정을 검색하면 한 노부부의 피드가 나온다. 77세의 나이로 할머니가 글을 쓰고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며 자신들의 세 손자들을 위해 일상의 단편과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중에는 할아버지가 손자 아로에게 자신이 생애 가장 크게 화가 났던 일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로의 아빠가 두 살 정도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하나 둘 사서 모아두었던 레코드판을 아무렇게나 꺼내놓고 마구 장난을 치는 바람에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적이 있다며 웃지 못 할 지난날을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일상의 정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과 손자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려주는 글들은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나의 부모님이 손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미소가 슬쩍 번지다가도 이내 마음이 뭉클해져서 아련해진다.

 

 

 

땅을 내려다보지 말고 별을 올려다보렴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전 세계 35만 팔로워가 사랑하는 인스타그램의 주인공 이찬재, 안경자 부부의 글과 그림이 담긴 따뜻한 그림에세이다. 스물여섯의 나이로 결혼해 1남 1녀를 둔 그들은 1981년에 브라질로 이민을 간 뒤 함께 살던 손주들이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가자 허전함과 그리운 마음을 담아 그림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를 멀리 떨어져 있는 손주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BBC, NBC, <가디언>과 같은 해외 유력 매체들이 극찬을 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몰론 컴퓨터와 휴대폰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나이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손주들에게 세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바람을 소박하지만 큰 마음으로 담아놓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이에게

 

아로가 엄마랑 놀이방에서 놀고 있다. 지금 아로는 참 행복할 거야. 함께 노는 걸 좋아하니까. 엄마랑 있으니 더욱 즐거워 보인다. 아니, 그림 속 아이가 아로가 아니어도 좋다. 어떤 아인들 엄마랑 놀 때 행복하지 않을까.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데.

 

아! 이 그림을 세상의 모든 일하는 엄마에게 주고 싶다. 몇십 년 전 나도 일하는 엄마였지. 오랜 기간 동안 일하는 엄마였어. 그래. 아이가 늘 걱정되는 모든 일하는 엄마에게 바치련다. 그리고 엄마가 일하러 가서 조금은 쓸쓸한 모든 아이에게도. / 25p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이 사계절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계절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의 그림과 함께 할머니의 따듯하고 애틋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가 가만가만 실려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거창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다. 손주와의 소중한 순간들, 가난과 고난의 시절을 겪었던 지날 날에 대한 회상,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예찬과 동시에 훼손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이민자로서의 삶과 시선으로 바라본 낯선 땅의 이미지 등 사계절이라는 계절을 수없이 겪었을 그들의 시선으로 기억하고 기록해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할아버지처럼, 나의 할머니처럼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해서 그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보다 큰 울림을 전한다.

 

 

 

너의 세계

 

아로야,

네가 태어난 지 5개월이 되었을 때 넌 종일 옹알이를 했다.

버둥버둥, 손과 발도 허공에서 열심히 말했지.

먼 데 있는 할머니에게도 들리는 듯했어.

너만의 생각, 너만의 이야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겠지?

보이지 않는 아로의 세계가. / 77p

 

 

코, 코, 코

 

할아버지에게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아로.

“코, 코, 코~ 입!”

“코, 코, 코~ 귀!”

“코, 코, 코~ 이마!”

집게손가락으로 코를 계속 두드리다가

갑자기 귀에다 갖다 대며 “입!” 한다.

이때 덩달아 귀를 잡으면 안 되는 거야.

얼른 입을 가리켜야지.

옛날부터 내라오는 말 배우기 놀이! / 251p 

 

 

  유독 세 손주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글들이 가슴을 두드린다. 아로가 아플 때 “할아버지가 호오- 해주면 안 아파.” 하고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과, 꺄르르 웃으며 그것도 맨발로 달리는 아로를 보고 조마조마해지는 마음 하며, ‘꼭꼭 숨어라’ 놀이를 하자고 해놓고서는 자기를 찾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내며 금세 얼굴을 내미는 아이의 모습들까지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마지막 코뿔소

 

아프리카 대륙 한복판에서 살던 마지막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읽었어. 동물의 멸종 위기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마지막 한 마리라니! 힘이 넘치는 얼굴로 묵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수간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너희에게는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니?” / 71p

 

 

해바라기

 

(중략) 영화. 1970년대 한국에서는 상영되지 않아 전혀 몰랐던 유명한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흘러간 영화. 대사 한 마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자막 한 글자 읽지도 못하면서 펑펑 울고 흐느끼며 끝까지 본 영화, <해바라기>. 이제 내게는 잊지 못할 영화가 되었단다. 그날 그렇게 울어버린 건, 영화 속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의 숨죽인 통곡이 이민자의 외로움을 대신해주어서였을까? / 191p

 

 

 

   책을 읽으면서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득 기억하고 싶고 되새기고 싶은 것이 생길 때면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보았던 것, 혹은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것을 상상해가며 그림으로 그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다정하다. 그 마음이 그림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것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페이지 곳곳에 담긴 소박한 그림들이 더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책에 실린 마지막 글귀에 “우리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고 보니 문득 지나온 인생이 보이더라. 어떤 때는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무척 힘들고, 벅차고, 피곤하기만 했을 때가 있었지. 그런데 여기 서서 돌아보니까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더라. 찬란했더라. 참으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었더라. 너희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어.” 라고 써 있다. 살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더 많고, 숨이 차고,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종종 찾아온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싶을 만큼 잘 견뎌냈고, 또 힘을 내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노부부의 이야기는 이처럼 모든 순간을 잘 견뎌내고 힘내서 살아온 어른들의 삶이 담겨져 있어서 더 아련하고 애틋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 아이들이 힘들고 지탱할 것이 없고 외로운 순간이 찾아올 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의지가 될 수 있도록 나와 나의 남편 역시 많이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이 아름다운 부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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