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애플을 누가 이끌어갈
것인가!
새로운 리더십과 경영 철학으로 애플의 새 미래를 연 팀 쿡을
주목하라!
나는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가 출간된 날이다. 당시 대형서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가 막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직원 모두가 고무되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책이 포장된 박스를 연
순간, 새하얀 양장에 스티브 잡스의 얼굴이 흑백으로 찍힌 표지를 보자마자 와, 하고 경탄했던 그 순간을 말이다. 정말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답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꼭 가져야만 한다, 정말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이 지닌 가치는
애플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가치와 맞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당시 누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가 없으니
애플은 더 이상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머지않아 애플이 퇴보하거나 시장에서 곤두박질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지 수 년이 지난 지금, 몰락을 점쳐왔던 사람들의 우려와 수많은 경쟁 기업의 강세에도 애플은 변함없이 건재하다. 애플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파워는 여전하고,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특유의 감각적인 광고는 이번에는 또 어떤 변화를 이루어냈을까 기대감으로 설레게 한다. 스티브 잡스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체 누가 이런 일을 해내고 있는 걸까?
애플은 연못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하나의 자갈이 되어야
한다
애플의 아이콘이자 CEO인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잡스는 갑작스레 쿡을 불러 앉혀놓고 애플의 CEO 자리를 맡아달라고 말했다.
자신은 비상근으로 물러나 애플의 이사회 의장직을 맡겠다고 밝히면서 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두 사람은 잡스의 병세가 위중했으나 점점 호전되어가는
것처럼 보였기에 그가 앞으로 더 일정 기간 이상 애플과 함께할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잡스의 후계자 선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적잖은
시간 동안 배후에 CEO 직무를 대행해오던 팀 쿡은 잡스의 자연스러운 후계자였다. 하지만 잡스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그는 모두가 애플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온 유형의 리더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을 ‘디자인이 주도하는 조직’으로 이끈 조너선 아이브나 ‘미니 스티브’라고 알려진
스콧 포스톨을 유력한 차기 CEO 후보로 점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팀 쿡이 CEO가 되었을 때는 ‘종말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하지만 잡스가 병으로 자리를 비운 두 차례 모두 팀 쿡은 잡스를 대신해 애플을 진두지휘했고,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CEO가 될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쿡이 CEO직을 넘겨받은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기사 중 2011년 5월 《허핑턴포스트》의 사설 제목 「왜 애플은 비운에 처할 운명인가?」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해당
사설에서 타이 후지무라는 ‘잡스가 사망하면 애플이 그 여파를 극복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애플의 성공을 이끌어낸 그 탁월한 취향과
감각만큼은 결코 차기 지도부가 재현하지도, 필적할 만한 수준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월등하게 우월한 제품이 없다면 누가 그들의
오만한 마케팅에 귀를 기울이겠느냐고 말이다. 잡스가 워낙 독보적인 리더였기에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쿡은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다. 그를 곁에서 지켜봤던 조스위악은 쿡은 임기 초기에 부당한 비판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말하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스티브에 비유하고 싶어 했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 스티브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실제 쿡은 잡스의 유산을
보전하며 ‘내 안의 모든 것,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회사에 쏟아붓고자’ 노력하겠지만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던 그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잡스 사후에 애플이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그가 결코 스티브 잡스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기도 합니다.” MIT
슬로안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쿠수마노 교수가 《파이낸셜타임스》에서 한 말이다.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잡스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고,
조직은 전보다 덜 대립적이며 온화한 문화를 창출하면서 결집하고 있습니다. 팀 쿡의 공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요.” / 328p
책 <팀 쿡>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소박한 남부 시골 도시에서 자란 쿡이 어떠한 성장 과정을 통해 지금의 애플에 입사하게
되었는지 순차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IBM에 이어 컴팩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쿡이 잡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어 애플에 오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당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쿡이 컴팩을 떠나 애플에 들어간다면 바보 중에서도 상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애플에 가라고 권한
사람은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쿡은 잡스를 만난 자리에서 그의 신선하고 흥미로운 관점에 빠져들었고, 잡스가 꿈꾸던 애플에
대한 전략과 비전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도 그의 사명에 동참해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잡스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전설과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이 ‘일생일대의 특권’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쿡은 제조와 유통을 총체적으로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때, 회사는 비용관리도 안 되고 재고관리도 엉망이고 고객 계정관리도 제때 이뤄지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쿡은 오자마자 생산 공정의 모든 세부사항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짧은 시간에 사업 운영 시스템을 완전히 정비했다. 조립 공장과 공급 업체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하여 애플의 부품 조달 속도와 빈도가 늘어 JIT프로세스를 훨씬 더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게도 했다. 또 외부의 파트너
기업에 생산을 위탁함으로써 재고 누적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애플의 사업 운영 개선뿐만 아니라 기술 업계 전반의 생산 프로세스 관리와 해당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까지도 바꿔놓았다. 이렇듯 쿡이 사업 운영 방식에 단행한 개혁과 모든 비즈니스 측면을 향한 깊은 이해는 애플이 극적으로
회생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그도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CEO 재임 첫 해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스티브 잡스를 대체할 수 없다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의 압박감, 갤럭시의 성공에 힘입어 상당수 시장에 애플을 앞서 나가고 있는 삼성과의 경쟁, 실망스러운 아이폰 판매 실적 부진, 2명의
고위 임원 해고, 애플맵의 실패, 폭스콘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 탈세 혐의와 주가 하락까지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팀 쿡이 이끄는 애플은 이전에 잡스가 이끌던 시절에 보여주지 못했던 상당부분을 수정하고 잘못된 것은 기꺼이 사과하면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선 활동을 확대하고 업계 최초로 재생 에너지와 지속가능한 제조 분야에 막대한 수준의 투자를 감행했으며,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의 주가가 떨어졌을 때 스스로 급여는 회사의 성과와 연계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자진 삭감하는
행동력까지 보여주었다. 심지어 기업 최초로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하여 소수자들의 인권과 입장에 앞장서기까지 하는 모습은 놀라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나는 내가 현실세계에 살며 내 스스로 얻은 것에만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나는 노동과 노력의
가치를 인정한다.
나는 교육의 가치를 믿는다. 교육은 내게 현명하게 일할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하고 능숙하게 일하도록 나의
정신과 손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정직과 진실을 믿는다. 그것이 없으면 내가 동료로부터 존중과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
71p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은 우리가 함께 정립하는 가치관입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기 원하고
정직함과 솔직함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나가는 용기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사내 정치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 행위를
경멸합니다. 회사라는 조직에는 그런 게 들어설 여지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런 것까지 다룰 수 있을 만큼 저의 삶이 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료주의도 용인할 수 없습니다. 회사가 사내 정치나 사적인 어젠다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러면 빠르게
움직이는 조직이 될 수 없습니다.” / 174p
“쿡이 지닌 원대한 비전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이 큰 기업을 선한 힘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기업이 가진 규모와 영향력으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쿡은 궁극적으로 세 가지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노력에 동참하고, 친환경 재료를 제품에 사용하며, 지구의 자원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그 세 가지다. / 258p


아이폰 시리즈, 애플워치, 에어팟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애플은 쿡의 지휘 아래 세계에서 최초로 1조 달러짜리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애플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잘하면서 동시에 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을 스스로 입증하면서 새로운 혁신의 시대를
열어나가려 한다. 여전히 혹자들은 팀 쿡의 애플을 불안해하고 미래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애플의 미래는 아직 성장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스티브 잡스라는 이름과 정신이 여전히 강력하게 뿌리박혀 있는 애플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윤리관과 가치관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 팀 쿡의 모습은 경영에 몸담고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어쩌면
머지않아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팀 쿡을 기억해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