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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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계엄군에 맞선 광주 거리 속 생생한 기록이 펼쳐진다!

평범한 시민의 힘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했던 그 위대한 시간들!

 

 

   지난 3월 11일, 전두환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하는 장면이 그날 하루 내내 뉴스를 장식했다. 사가에서 나와 광주지방법원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 중에서 나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붙든 것은 초등학생들이 학교 복도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참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아이들이 전두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차치하고라도 광주의 미래가 1980년 5월 18일에서 그리 멀어지지 않았음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하필 광주였을까?’, ‘그날 발포 명령은 누가 내렸나?’ 우리는 여전히 5.18과 관련된 질문들 중에서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다. 최근 39년 만에 주한미군 501여단 소속 정보요원 출신의 증언 역시 사실이다, 엉터리 주장이다 양측 의견 대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진상 규명의 길은 멀기만 한 것 같다. 그런 가운데 5.18이란 이 항쟁의 역사를 특정 광주 지역 혹은 유공자의 문제로만 국한시키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 1984년생에 대구에서 태어난 나만 하더라도 5.18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일에 불과한데,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채 이대로 시간만 흘러간다면 내 아이와 또 그 다음 세대 때에는 그들만의 역사와 상처로 남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다 더 생생한 육성들이, 보다 더 진실한 기록들을 남기려는 노력들이 매우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1980년 오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담긴 책 <녹두서점의 오월>은 이제서라도 출간되어서 다행이고, 잊히고 지워져서는 안 될 소중한 기록들이다. 그날의 항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외침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

 

 

우리 가족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 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5.18항쟁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상황이 두 가지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을 현재까지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군부독재부터 이어져 온 지역 모순과 차별을 끈질기게 부추기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이 기록을 쓰게 만든 이유다. / 6p

 

 

 

   1980년의 대한민국은 모든 정보를 국가가 틀어쥐고 있었던 유신체제 하에서 모두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에 재갈을 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녹두서점은 정보가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전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새로운 정보와 시대정신으로 목말라있던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전남 운동권 정보의 통로 역할을 한 곳이었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바로 1980년 오월의 거리, 항쟁의 중심에서 서점을 운영했던 가족이 쓴 기록이다. 전남대 학생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다 제적을 당한 뒤 당시 금서로 지정된 인문사회과학서를 학생과 시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서점을 연 김상윤을 중심으로 그의 아내 정현애, 남동생 김상집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구현하고, 5.18민주항쟁을 온몸으로 겪었던 이들의 사투를 위로하는 헌사이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제각기 다른 이 세 사람의 시선에서 5.18민중항쟁의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5월, 전국 대학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대학 밖으로 시위를 확장해 갈 즈음 전남대 역시 5월 14일부터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학생들의 거센 시위가 3일간 계속되었고, 횃불 시위에 이어 5.16화형식까지 거행하며 박정희 독재정권의 잔당들에게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기에 신군부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결국 5월 17일 자정이 다 된 시간, 서점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대공과 형사들에 의해 녹두서점의 주인인 김상윤은 505보안부대로 끌려가고 만다. 아내인 정현애는 ‘사람 하나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니!’ 하고 막막했던 당시의 순간을 회고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로 조작되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인 1980년 5월 15일 낮, 특전사 출신 군인들이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끌려가거나 병원에 실려 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학생들이 조금만 모이면 군인들이 마구 때리거나 잡아가고 항의하는 시민들도 때리는 것은 물론, 여학생들도 옷을 벗기고 때려서 잡아가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다.

 

 

 

계엄군은 시민과 학생들을 완전히 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무자비한 진압은 시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더욱 자극하기 위한 도발 같다.

시민과 학생들은 혼란과 공포 속에서도 상황에 맞는 대책을 제시하고 적절히 잘 대응하고 있다. 젊은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이 동참해야 하고, 반드시 학생지도부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현재 유언비어가 지나치게 난무하고 있고, 이 상태로 가면 분노한 시민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학생지도부가 전면에 나서야 하고, 평상시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도 나와서 일반 시민을 대표하는 지도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전남대 총학생회는 일부 연행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피신했다. 게다가 운동권 일선에 있던 사람들도 예비검속되었거나 피신한 상태에서 어떻게 지도부를 만들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 혼란의 책임을 결국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뒤집어씌울 것이 뻔하지 않은가? / 69p

 

 

어제부터 시외전화선이 끊겨서 우리는 외부와 더 이상 연락할 수가 없었다. 이런 조치는 광주시민들에게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나 역시 더 이상 전화로 광주 상황을 다른 곳에 알릴 수 없었고, 다른 지역의 소식도 알 수 없었다. 자식들을 광주의 학교로 보냈던 부모들은 광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전화도 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분은 자식의 목숨이라도 살려야겠다며 광주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그야말로 군인들은 광주를 고립시켜 자중지란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서울은 그냥 조용히 있는가? 국민연합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을까?’ 모든 소식이 단절되니 고립감과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 113p

 

 

 

 

  남편이 대공과 형사들에게 붙잡혀 갔지만 아내인 정현애는 정신을 가다듬고 녹두서점을 지키며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학생과 시민, 부인들, 광주 내 민주인사들에게 당시 상황을 공유하고 상황일지를 기록하는 등 최대한 의연히 상황을 대처해간다. 대공과에서 광주사태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의 짓’이고 ‘그 지령을 받은 곳이 녹두서점’이라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이 항쟁을 지도할 인사들이 대부분 검거되거나 도피한 상황에서 그녀는 녹두서점에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어떻게 해서든 항쟁을 이어나가는 데 최선을 다한다.

 

 

 

   김상윤의 동생 김상집 역시 군 제대 후, 형이 합동수사부로 잡혀가자 윤상원의 당부로 녹두서점에서 이곳저곳 연락을 맡으며 항쟁을 지원한다. 시민들에게 알릴 가장 정확한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전남대 스쿨버스를 이용해 공수들의 만행을 알리는 가두방송을 이어나간다. 그 가운데 자신들을 진압하기 위해 서 있는 전경들 사이로 윤상원의 후배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을 말리는 아버지를 뿌리쳐야 하는 슬픔을 짓누르기도 하며, 공수들이 보이는 사람마다 조준사격을 하는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에서 끝까지 저항한다.

 

 

갑자기 ‘탕!’ 소리가 나면서 머리 위로 흙가루가 쏟아졌다. 우리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시민군이 총기를 만지다 오발을 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총구가 위로 향해 있어 총알은 천장에 박혔고, 그 여파로 천정 흙이 부스러져 내린 것이었다. 총을 다룰 줄도 모르는 어린 사람들이 정예 부대 중 정예라는 공수특전단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킨다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더욱 아팠다. 이런 시민들을 적으로 삼는 군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인가? / 128p

 

 

계엄군은 총기를 회수하지 않으면 어떠한 협상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수습대책위원회는 협상을 명분으로 100여 정의 총기를 반납한 뒤 시위 도중 연행된 일부 학생들을 석방시켰다고 자랑했다. 24일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반면 텔레비전에서는 ‘간첩이 광주에 침투하여 무장 폭동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을 잡았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협상을 위해서라도 총기 회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총기를 회수하고 시민군의 무장이 해제되면 계엄군들은 또다시 피의 살육을 자행할 것이고,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억울하게 숨진 모든 사람이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수습대책위원회에 기대를 걸지 않기로 했다. 궐기대회를 통해 시민군을 새롭게 조직하여 결사 항전을 결행하기로 했다. / 200p

 

 

 

 

 

 

   책을 읽다보면 5.18민중항쟁의 중심에 누가 있었는지를 우리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항쟁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들의 물건을 싼 값에 팔거나 더 챙겨주기도 하는 상인들, 부패하는 시신의 악취 속에서도 죽은 자들을 돌보는 사람들, 최루탄으로 고통 받는 시위대를 위해 대야에 물을 길러오는 유흥업소 여성들, 자신들이 먹을 쌀을 기꺼이 시위대들의 배고픔을 위해 사용한 여성들, 계엄군의 구타에 이빨이 빠지고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도 열심히 싸웠던 이들, 바로 시민들이었다. 빨갱이와 폭도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언제 사형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항쟁을 이어나갔던 이들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민중의 힘을 믿지 않았다던 김상윤이 바로 옆에 있는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했고, 책 줄이나 읽고 운동가라고 여겼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나 역시 울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들은 낮에는 고문에 시달렸고, 밤에는 옆 사람의 신음과 울음소리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치장은 점점 수감자가 늘어나 잠잘 때 옆으로 누워서 아침까지 칼잠을 자야 했고, 밤은 꽁보리밥에 노란 물감이 묻어 있는 단무지 두세 조각이 전부였다. 그중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사실 속옷과 생리대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생리대는 한 사람에게 하루에 하나씩 제공되었고, 그 이상을 요구하면 모욕적인 언사가 따라왔다. 날마다 수사받으러 상무대로 들락날락하면서 여성들은 무지하게 맞고 돌아왔다. 얼마나 맞았는지 엉덩이 전체가 시퍼렇다 못해 까맣게 변해 있었다. 특히 항쟁 당시 방송했던 여성들은 고문으로 수시로 하혈했고, 하혈을 멈추기 위해 국군통합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신체적 고통보다 간첩 행위자로 조사받는 일이 더 두렵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 264p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항쟁 최후의 날, 그 애절한 방송을 듣고서도 뛰쳐나가지 못했던 많은 광주시민은 여전히 마음에 큰 병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글을 읽으며 왜, 어째서 서로가 서로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지 사람답게 사는 삶, 민주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이들이었는데, 그날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년 열리는 5.18기념식조차 위로가 되지 않으리라. 그나마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자 쓴 이 책이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덕분에 우리 모두가 잊지 않을 수 있기를, 5.18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39년이 지난 지금 모든 국민들에게 국가와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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